18시의 음악욕
운노 주자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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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의 음악욕


 먼 미래의 지구. 미루키국에서는 18시마다 음악욕을 하는 규정이 있다. 음악욕은 두뇌와 신체를 잠시동안 초인적으로 올려주며 동시에 반사상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줘서 대통령은 이 음악을 매일 틀게 하려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음악욕의 제작자인 코하쿠 박사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입장인데...

 미래 독제체제가 배경이지만, 자유에 대한 염원과 통제에서의 해방보다는 과학기술을 만드는 과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가,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게는 과학이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과학자하면 역사 속의 다양한 위인들이 떠올려지고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아니 과학기술이 학문이 아닌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매개체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잘못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에 대한 하등대우가 대표적인 예인데, 특히나 이공계열이 천대받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 나오는 음악이라는 요소는 일종의 대중매체고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자극적인 대중매체의 위험성을 나타낸 것 같았다. 마약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면역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결국에 정상적인 사고회로는 망가지고 만다. 이게 자의적으로 노출된 것이라면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진행된 보편화라면 이건 태생적인 문제라 볼 수 밖에 없다.


 투명 고양이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러 가던 세이지는 어딘가에서 들리는 고양이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가 난 곳에서는 분명 고양이가 있었지만, 눈을 제외한 형체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고양이었다. 세이지는 신기한 나머지 몰래 집에 데려왔다가 자신이 투명해지는 일을 겪게 되는데...

 허버트 조지 웰즈의 투명인간이 생각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는 투명에 관한 작가만의 이론이 나오는데, 제법 그럴싸해서 실제로 투명 기술이 개발되다 보면 이런 예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론 때문인지 투명에 관한 내용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전염병 아포칼립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장기 재생 실험


 의대생 후키야 다카시는 교도소 외과원장 쿠마모토 박사로부터 죄수의 장기를 부탁해 얻어낸다. 그는 장기가 공기 중에 혼자서 살아움직일 수 있는지 실험을 할 계획인데...

 과학기술로 생명체를 살려낸다는 점에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러브크래프트의 허버트 웨스트와 유사하지만, 이 둘에 비하면 상당히 엽기적인 발상이라 금단의 영역을 넘어선 과학의 공포가 어디까지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로봇 박사의 죽음


 젊은 과학자이자 탐정인 호무라는 길거리에서 한 남녀의 밀정을 목격한다. 호기심에 뒤를 쫓던 호무라는 여자가 자택에서 무언가를 목격하고 도망치는 걸 목격한다. 그 집은 로봇연구로 유명한 타케다 박사의 집이었고, 타케타 박사는 침대 위에서 머리가 박살난 채로 죽어있었다. 경찰은 방에 있는 피범벅이 된 로봇이 박사를 죽인 것으로 짐작하는데...

 SF와 추리 모두를 만족시켜서 SF 추리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적인 탐정의 이미지는 많이 보았는데, 아예 직업이 과학자인 경우는 처음 보았다. 일단 살인사건이긴 했지만, 얼핏보면 밀실 아닌 밀실 살인사건으로 보이기도 했다. 로봇이 범인이라 가정한다면 그냥 살인사건이지만, 인공지능도 아니고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취급하는 작중 분위기로 본다면 밀실이었다. 작가가 이런 것까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얼핏보면 그냥 과학기술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보이지만, 결말에 남겨진 여운을 보면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런 계획적인 살인이 발생하지 않아도 오작동 같은 사고로 사람이 죽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걸 바로 과학의 양날성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계 전송


 약혼녀 에리코의 소식이 끊긴 나머지 그녀가 일하는 연구소로 찾아간 나. 연구소장 마카오 박사는 에리코가 어디 있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최근에 나타났다는 백색의 괴생명체를 보여주는데...

 스티븐 킹의 단편 '조운트' 가 생각나는 내용이었다. 둘 다 공간이동이 주제이고, 이 공간이동의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끔찍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다만 각각의 작품에서 나타난 공간이동 기술 묘사에 차이가 있고, 조운트는 과학기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소시민인 반면, 외계 전송은 과학기술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과학자 관련됐다는 점에서 검증되지 않은 과학기술의 남용이 얼마나 위험한지 더 크게 다가온다.


 1000년 후의 세계


 냉동수면 기술로 1000년 후의 세상에서 눈을 뜬 후루하타 박사. 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어줘야 나갈 수 있어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슬슬 불안감을 느낄 쯤, 한 여인이 문을 열어줘서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미래의 모습은 이럴 것이다라는 가정은 옛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옛날의 상상도와 현재를 비교하면 맞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틀린 것이 많은 경우도 있다. 이 1000년 후의 세계도 이와 비슷하다. 환상적으로 발전한 경이로운 세상이 되긴 했지만, 예상과는 다른 점 역시 존재한다. 현재의 환경오염이나 지구 온난화 문제보다 더 예상 밖의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사차원의 남자


 어느 날, 밤거리를 지나던 중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는 걸 느끼된 나. 그냥 우연이라 생각하며 넘기려 했으나, 같은 일이 반복되고 변함없이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옆집 관상가에게 가보기로 하는데...

 한 인물을 통해서 차원에 대한 개념을 알 수 있었다. 좀 독특한 점이라면 관상가가 사차원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분명 과학적인 요소가 나와도 운명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중 묘지


 탐정 쿠리토는 한 의뢰를 받는다. 의뢰자는 20년 전 세계일주를 떠났다 실종된 항공기와 관련해서 조사를 부탁한다. 다름이 아니라 그 항공기의 조종사가 두 사람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도쿄에 나타났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상당히 엄청난 트릭에 놀라고, 거기에 반전까지 탁월해서 두 번 놀랐다. 여기에 묘사된 우주이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게 더 놀라운 점이다. 이 엄청난 걸 계획한 범인이 상당히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될만도 했다. 거리가 엄청 멀고, 그 누군가에게 발견될 일이 없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어딜가든 그 장소가 있는 방향을 볼 수 밖에 없기에 모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주 밀항


 노년의 탐정 소로쿠는 한 여인의 의뢰를 받는다. 여인은 화성 탐험대에서 영웅적인 활약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카리 에이지의 부인으로 어떤 괴상한 남자에게 스토킹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쿠는 조카 하치바와 문제의 남자를 뒤쫓는다. 하지만 소로쿠의 돌발행동에 하치바는 당황하고 마는데...

 작은 사건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는 대사건이 되는 내용이다. 소로쿠 탐정의 수사방법에서 남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보여서 특이한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 원래 스토킹 상대를 만났을 때 했을 법한 행동들은 조카 하치바가 하려고 해서 역할이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큰 트릭 같은 것은 없었지만, 작게 시작된 사건의 전말이 예상보다 커다란 형태였기에 충격이 상당하다. 비록 누가 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원래 알려진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여러모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여기서도 공간이동 기술의 문제점이 나온다. 다만, 외계 전송 때와는 달리 전송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다소 희망적이다 할 수 있다.


 꿈 속의 살인


 토모에다는 꿈 속에서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자신의 부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이후 같은 꿈을 꾸지만 어딘가 약간씩 다른 것이 느껴져서 잠시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총으로 여자를 쏴 죽이게 된다. 문제는 그 여자가 친구의 부인이었다는 것인데...

 꿈과 현실의 경계가 혼선을 겪는 내용이라 정답이 있어도 정답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애매모호하다면 모를까, 확실한 배경과 확실한 인물, 확실한 사건이 있음에도 현실과 환상이 한끗 차이로 나뉜다는 것이 소름 돋을 정도였다.


 지구 도난


 숲 속으로 딱정벌레를 잡으러간 도키오와 미요. 그런데 갑자기 괴생명체가 나타나고 도키오는 실종된다. 마을의 과학선생인 오오스미는 도키오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는데...

 중편이며 SF 미스터리, 모험, 활극이라 해도 될 정도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상당히 설계적인 외계 침공물이라 할 수도 있는데, 보통 생각하는 침공과는 차원이 다른 방법에 상당히 독특한 외계인이라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흥미진진한 내용임에도 약간 아쉬운게 있다면 지구 쪽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해가 가지만, 외계인 측의 의견이 제대로 나온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말이 안 통하는 외계생명체라면 모를까, 이런 상당한 설계를 한 것들인데 모습과 약간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나온 게 없어서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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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종가의 색목인들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 1
표창원.손선영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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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 시리즈를 끝내고자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홈즈가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 것은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이후 셜록 홈즈의 귀환에 수록된 <빈 집의 모험>을 시작으로 시리즈를 재개했을때, 꽤 주목받던 것이 사라진 3년 동안의 행적이었다. 작중에는 동양의 특정 지명을 언급하며 방황했다고 나오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홈즈 팬들의 상상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재료였다. 과연 언급한 그곳에 간 것이 진짜 맞는지, 동양인지도 확실한지, 또 동양은 맞고 언급한 곳이 거짓이라면 동양의 어디를 갔었을지. 그 후보 중, 당시 개화기를 맞이해 혼란을 겪는 조선도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1891년 조선 제물포 항으로 죽어가던 영국인 아편 중독자가 들어온다. 아버지 이제마의 뜻에 따라 미국에서 신문물을 접한 의녀 이와선은 그 영국인을 돌보던 중, 이 영국인의 이름이 셜록 홈즈라는 걸 알게 된 대리공사 알렌의 뜻에 따라 그를 살려낸다. 그때, 한양의 강석중이 자택에서 기이하게 사망한 채로 발견되고 내부윤의 요청으로 부검을 하러 간 알렌은 이 사건을 홈즈에게 가져가는데...

 실제 역사와 셜록 홈즈의 시간대를 적절히 섞어놓아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작중 이미지와 평가는 좀 다르지만, 실제로 당시 조선에 있었던 호러스 뉴턴 알렌이 등장하고, 당대 서민의 생활상 중심으로 전개되어 조선 후기 개항시기의 모습에 셜록 홈즈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아직 막 시작한 시리즈라 크게 시작하는 분위기는 없지만, 앞으로 진행된다면 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범인이 그 희대의 영국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라는 점은 약간 개인적인 호불호가 있었다.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잭 더 리퍼는 셜록 홈즈가 연재되던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이고, 실제로 코난 도일이 사건에 대한 자문을 한 적이 있고, 후대에도 끊임없이 셜록 홈즈와 잭 더 리퍼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 나온 만큼 유명한 소재거리다. 거기에 개연성도 나쁘지 않고, 냉혹한 살인귀의 면모도 충분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잭 더 리퍼라는 이미지에 모리아티 교수를 약간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라 독창적인 면에서 약간 아쉬웠다.

 홈즈에 대해 보자면 코난 도일의 홈즈와 차이가 있어서 이게 홈즈냐고 비판할 수도 있을 법했다. 그러나 작중 배경과 홈즈의 상태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될 법하다. 홈즈는 런던 사람이고, 심각한 아편 중독에서 치료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니. 그래도 추리가 좀 산만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마지막 정리가 잘 되서 추리 자체는 틀리거나 허점이 없는 건 다행이지만 분명 하나의 사건인데, 논점은 여러 갈래고 수사방법도 따로 놀고 정리도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서술에서 불만있는 게, 틈만 나면 앞의 상황을 암시하는 구절이 자주 나와서 좀 거슬렸다. 다른 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앞의 내용이 어떻게 된다, 이렇게 될지 몰랐다, 라는 형식은 결과를 미리 예고하는 거라 그 다음 내용을 보는데 흥미진진해진다기 보다 김빠진다. 한 두 개라면 모를까, 연속적으로 암시가 계속나오면 그것만큼 집중을 방해하는 건 없다. 영화 스포일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결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중간 사건의 결과를 알고 보는 것도 상당히 신경쓰이게 만들기 충분하다.

 에필로그까지 보면 셜록 홈즈가 3년 간 조선에 있었다는 판을 제대로 짜 놓은 게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손선영 작가와 표창원 선생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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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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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 사진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한정된 분량에서 한정된 장면을 잘 찍으려 노력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사진관은 정겨운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다양한 카메라들로 무한정으로 찍을 수 있게 된 지금, 점차 축소되는 사진관 만큼 그때의 정겨움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멋진 사진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한장 한장에 담긴 여운이 깊게 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옛날 사진일 수록 뭔가 깊은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쓰라기 마유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사진관을 정리하러 고향 섬을 방문한다. 카메라하면 진절머리가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하던 마유는 인화를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 속에는 몇 십 년 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찍힌 남자가 있었고 마침 사진 속 남자가 사진을 찾으러 방문하는데...

 비블리아 고서당 작가다운 소소한 분위기와 쓸쓸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사실, 사진관이 폐업한 분위기에 인물들 사이에서 크게 밝은 분위기가 없기 때문에 쓸쓸함에 더 크다 할 수 있다. 사진 하면 좋은 기억이 남고는 한다만, 니시우라 사진관의 사진에서는 좋은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로 의문의 사진을 가지고 사연을 알아내는 과정이 주 내용이다. 사진과 관련된 전문 지식이 나와서 설명을 보충하고, 주인공의 관찰력이 대단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사진을 가지고 추리하는 과정이 주인공의 머리 속에서만 전개되서 자세히 서술되지 않고 그냥 결론만 도출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싱거울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남모르게 자만심을 가진 적이 있어서 마유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나에게 특출난 점이나 자랑할만한 이력이 있다고 한들, 그걸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함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자만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말실수 하지 않기 위해 묵언으로 생활한 때가 작중 마유의 상태와 거의 비슷했다. 지금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어디에선가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생각하는 게 많다. 내가 알고 판단하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인지, 의도가 없었지만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건 아닌지.

 현대의 필름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까지만 접해본 입장에서 오래된 사진기의 원리와 암실의 이용, 그리고 옛날의 사진기술을 보면서 상당히 신기했다. 옛날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과정이나 나오는 과정을 생각하면 그 가치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그냥 필름이 없으면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희귀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장면을 찍을 때의 과정까지 담겨 추억 자체라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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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술래잡기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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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추억은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좋은 기억이 현재의 나를 심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 같은 힘겨운 때에서 벗어나 차라리 옛날,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던가. 어린 시절이 더 행복했던가. 이런 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 좋은 추억이 있으면 차라리 낮겠지만 나쁜 기억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현재에 재앙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 과거의 그림자는 기억 속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니시도쿄 구의 전화상담센터로 자살시도 중인 남자의 연락이 온다. 그는 일종의 전화게임으로 하루마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고 알린다. 상담원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느끼고 정부기관에 연락을 취하지만, 현장에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밧줄과 그 뒤에 있는 절벽에 남은 투신 흔적 밖에 남은 건 없었다. 한편, 호러미스터리 작가로 활동 중인 하야미 고이치는 얼마 전 옛 친구인 다몬 에이스케의 심상치 않은 전화를 생각하던 중 경찰이 찾아와 에이스케가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게 게 되고 옛 친구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데...

 민속학적인 괴기스러움이나 옛스러운 분위기가 특징인 다른 작품과 달리 현대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물론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인 민속적인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현대에 남은 옛날의 흔적에 불과하고 작중 인물 중에서 이러한 요소와 가까운 인물이 없기에 깊은 해석은 없었다.

 현대의 부조리한 면이 상당히 많이 나타나 있어 그 중 몇 개는 작가가 실제로 경험했거나 들은 얘기가 아닌 가 싶을 정도였다. 그냥 경제가 어렵다, 실업율이 높다, 라는 식으로 전체적인 설명이 아닌 개개인의 삶을 자세히 비추며 그 속에 있는 부조리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상당히 많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호러 미스터리 구성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조리함이 넘처나는 현대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공포스러운 요소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 자체를 무섭게 만드는 느낌이 있었다. 대체로 미지라는 불특정적인 공포지만, '다레마가 죽였다'로 불리는 놀이가 만드는 기묘한 분위기가 모든 공포를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뭔가 익숙한 분위기이기는 한데, 어딘가 이질적인 게 있다. 그리고 그게 익숙한 것을 왜곡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공포가 시작된다는 생각이다.

 추리적인 면을 보면 도조 겐야 시리즈 같은 특별한 트릭 같은 게 전무하다. 그저 과거의 기억과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 속에서 단서를 찾는 것 밖에 없다. 거기에 연쇄살인 자체에서도 별게 없어서 알맹이만 크고 속은 텅비었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나름 현실적인 전개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를 가장한 탐정역할은 작가의 다른 시리즈의 도조 겐야를 비롯한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도 많이 있지만, 여기에 나오는 작가 하야미는 괴짜스럽지도 않고 천재적인 기믹도 없는 평범한 축에 속한다. 게다가 어딘가 어설픈 면까지 있어서 보통 사람이 탐정 코스프레 하는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런 인물이 엄청난 추리력이나 해석을 보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후반부 들어서 어딘가 급하게 전개가 되는 듯한 부분과 좀 지나치다 싶은 우연, 그리고 완전한 미스터리로 남기고 싶은 의도였겠지만 어떻게 보면 상당히 설명이 부족하게 보이게 만든 부분이 좀 흠이긴 하지만.

 민속학 요소로 과거의 흔적을 분석하던 걸 생각하면,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작가의 눈과 귀로 현대를 분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민속학 요소를 볼 때는 도조 겐야처럼 봤다면, 현대를 볼 때는 작중 인물들처럼 평범한 위치에서 담담하게 보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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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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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고는 한다. 일상적인 것에서는 스토킹, 납치, 소매치기,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가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이는 테러나 허용치를 넘어선 검열과 감시가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위협을 부르는 인물이 정말 미친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하지만, 정작 잡힌 범인은 일상에서 전혀 문제없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있다. 단순히 사이코페스라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그냥 은퇴 형사와 미제 사건의 범인이 벌이는 대결로 볼 수도 있지만, 현대에 산재된 각종 문제가 결국 어떻게 터져 나오고 보이지 않는 위협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은퇴한 형사 빌 호지스 앞으로 발송지가 미상인 여러 개의 편지가 배달된다. 발신자는 다름아닌 2009년 취업박람회장에 메르세데스로 돌진해 수 많은 사상자를 내고 도주한 일명 메르세데스 살인마였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명명된 이 살인마는 호지스를 향해 온갖 자만심을 들어내며, 대화를 하고 싶으면 편지에 적힌 사이트로 접속해 보라고 하는데...
 스티븐 킹이 쓴 추리소설이라는 것만 보고 읽기에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몇몇 독자의 기대와 다를 지도 모른다. 일단, 알아두어야 할 점이 스티븐 킹의 일상적인 스타일과 하드보일드라는 탐정소설의 특성이다. 하드보일드는 기존 추리소설에서 나오는 트릭이나 암호 같은 것이 나오지 않고, 흔히 말하는 뒷조사나 하는 현실적인 탐정 모습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셜록 홈즈나 일본 추리소설에 많이 나오는 천재 탐정 같은 것과 거리가 멀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대실 해밋, 요즘 작가로는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의 하라 료가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여기에 스티븐 킹 식의 잔잔하면서 자세한 일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범인과 대결 구도인 상황에서 뭔가 확확 진행되고 치열한 대결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좀 답답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빌 호지스에 대해 보자면, 하드보일드 주인공 답게 누추하게 시작하지만 점자 의욕이 생겨 움직이는 걸 보면서 마치 삶의 원동력이라는 열쇠를 잃어버려 방치된 차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에 최신기기에 까막눈이어서 종이와 펜으로 조사하는 모습이, 레이먼드 챈들러 시절의 하드보일드 탐정이 노년이 되어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퇴직 형사라는 위치에서 오는 일종의 죄책감이 많이 보여서 편견을 버리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무심코 넘겼다가 나중에 큰일이 터지는 것만큼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건 없을 것이다. 막을 수 있었던 것을 방치했다는 죄책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건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른다.
 호지스의 상대, 메르세데스 살인마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냥 세상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사이코에 가까우면서, 1995년에 일어난 오클라호마 테러 사건의 백인극우주의 테러범과 비슷하게 보였다. 그의 심리상태와 일생이 자세히 나오다보니, 한 살인마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굴곡과 사건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정의 붕괴와 절망 속에서 도저히 희망을 찾아볼 수 없으니 결국 할 수 있는 건 남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비난하는 것밖에 남는 게 없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잔인해 진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누구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되버리고 이 잔인성이 무차별 테러나 대량살인으로 표출되는 걸까? 그 이유를 모르니까 메르세데스 살인범 같은 이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을 표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는 미치도록 힘든데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니,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절대적인 악이고 미친 것이나 다름없게 보이는 것이다.
 앞서 말한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직접적인 면도 있긴 있었지만, 간접적인 면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컴퓨터, 인터넷과 관련된 부분인데 해킹이나 사생활 침해, 불법매매 같은 사이버 범죄가 도를 넘어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먼 미래에는 컴퓨터를 통해 범죄자가 집에 침입하 일이 벌어지고, 손 쉽게 엄청난 범행도구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름 발전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빌 호지스의 시선으로 보다보면 여러모로 답답한 구석이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물론 호지스가 컴맹에 현대기기에 까막눈인 옛날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긴급상황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쓸때 없는 과정이 줄줄이 이어져 있고 거기에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속이 터지는 건 컴맹의 유무와는 상관없는 문제이다.
 제목이 미스터 메르세데스이면서 왜 표지에 피로 범벅이된 메르세데스는 없고, 핏줄기 속에 파란 우산이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읽어봤다면 작중에 나오는 어떤 특정요소와 범인을 연결지어 나타낸 것이나 대량살인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저 핏줄기 속의 우산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핏줄기가 쏟아지는 외부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우산 아래로 왔지만, 그건 가까이에서 덮칠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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