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일본환상문학선집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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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오래 전부터 각종 소설 장르를 접해왔다. 에도가와 란포를 시작으로 추리장르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예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추리로 유명한 에도가와 란포는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특히 후기 작품군으로 갈 수록 괴기, 환상적인 색체가 강해진 걸로 알려진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와는 다르게 과거에는 이 괴기, 환상 소설 쪽이 더 인기 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이길래 그렇게 유명했을까?

 에도가와 란포의 환상 소설은 대체로 당시 서양문명과 일본 전통적인 요소가 결합된 형태로 보인다. 동양 특유의 미신적인 요소가 신기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서양문명은 신기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면 란포가 만들어낸 소설 속 환상은 이렇다는 생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실존하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라고. 이런 느낌이 란포가 살던 시대에 어느 정도 공감과 함께 색다른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추리의 거장이 쓴 환상 소설이라 그런지 곳곳에서 약간의 추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물론 환상소설답게 범인이 누구인가가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압화와 여행하는 남자


 나는 우오즈에서 신기루를 보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환상적인 일을 겪는다. 동승객인 어떤 노인이 가진 기이한 그림을 보게 되고, 그 노인의 형에 대한 얘기를 듣는데...

 그림은 오래전 부터 환상소설에 소재로 유명하다. 때로는 무서운 것으로, 때로는 환상적인 것으로. 서양권은 물론이고, 동양권 각지에도 비슷한 얘기가 많아 옛날부터 그림은 여러모로 예술작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흔한 소재이긴 하지만 압화가 어떤 형태의 그림인지 보고서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림은 화법과 재료에 따라 느낌이 다른 만큼, 소설 속에서도 그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와 내용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시점이 꽤 과거다 보니, 서구식으로 변모하는 세상과 서양 문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우리에게는 흔한 것들이 과거 사람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자연의 경이로움과 미신으로 그것들을 해석하는 모습이 현존하는 환상 세계 같아 보였다.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


 나는 탐정소설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자주가던 우에노의 동물원에서 누추한 차림의 청년과 만난다. 그 청년은 흉내의 무서운 점을 강조하며 거울처럼 똑같은 쌍둥이 빌딩에서 벌어진 기이한 자살 사건 얘기를 들려주는데...

 제목만 보면 추리단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환상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내용이다. 환상과 범죄가 한끗 차이로 나누어지는 점이 이 단편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도시를 숲처럼 묘사하는 부분에서 묘하게 무섭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시를 건물의 숲이라 하는 묘사는 많이 봤어도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보인다고 확실하게 나타내는 걸 보니 상당히 기괴한 느낌이다. 자연과 문명의 차이점을 특정한 시각으로 보면 당연한 사실도 또 다르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현실성만 놓고 보면 개연성 없는 일이겠지만, 이건 엄연히 환상소설이다. 환상 세계에서의 범죄 추적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걸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파노라마 섬 기담


 어느 지방의 외딴 섬을 재력가 고모다 가문이 매입하고 엄청난 공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는 중단되고 섬은 폐허 상태로 방치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고모다 가문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일의 전말이 밝혀지는데...

 상당한 분량에 세세한 묘사가 많은 편이다. 간혹 너무 세세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약간 읽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 만큼 작중에 나타난 환상적인 부분은 방대하다. 환상을 넘어서 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현실적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여기에 나오는 요소들이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렇다. 환상을 실제로 구현하는 시도가 지금도 있지만, 의도가 좋지 않다면 그건 괴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처럼 역시 추리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 범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도드라지다보니 도치서술형 추리로 볼 수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펼쳐지는 거대한 환상 세계가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요소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일인이역


 지루한 걸 참지 못해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를 수시로 만나러 다니는 T. 그러던 그가 갑자기 재미있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이 다른남자로 변장해서 아내와 사귀어 보는 것인데...

 가장 평범한 내용으로 점점 기묘한 색채가 띄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나왔던 환상들이 시각적으로 나타낸게 많았다면, 이것은 심리적인 면이 강하다. 모든 게 그대로이면서 다르다는 인식이라 실제로도 이런 기분을 겪어본 경우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보통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거나, 환상적인 걸 넘어 기괴한 부분이 없이 나름 훈훈한 분위기라 어딘지 모르게 교훈적이라는 느낌이다.


 목마는 돈다


 회전목마 안에서 연주를 하는 악단의 나팔수는 매표원인 어린 여성에게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낀다. 자신의 처지와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로 점점 매표원에게 집착하던 나팔수는 어느 날, 회전목마에 탄 한 청년의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는데...

 <일인이역>과 함께 평범한 내용으로 인생의 일탈을 환상적으로 나타낸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들이 가끔 꿈꾸는 게 일탈인데, 아마 그게 가장 현실적인 환상이지 않을까 한다. 특별한 요소 없이 환상적인 색체라 더욱 기묘하게 보인다는 인상이다.

 이래저래 신경쓰는 일 없이 내키는대로 즐기는 것, 단 한 순간일지 몰라도 이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환상이라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목마는 돈다고 하는 걸까. 그 화려한 한 순간이 영원히 돌았으면 하는 염원일까? 


 거울지옥


 친구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던 중, K라는 친구가 한 이야기다.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렌즈와 거울에 광적인 집착을 가졌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개인 작업실에 틀어박힌 친구는 기괴한 거울 세계를 만들어 놓는데...

 거울 역시 전통적인 공포, 환상적인 소재다. 대체로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 대한 부분이 서서히 확장되면서 공포를 이루고는 한다. 여기서 나타낸 거울은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기반이 됐는데 그래서였을까, 환상을 넘어서 괴기스럽기까지 한다. 실존하는 금단의 영역이라 지칭되는 만큼, 그 어떤 기술과 발견이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 소설에 나온 거울을 실제로 나타낸 시뮬레이터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교토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일그러지다 못해 굴곡을 타고 흘러내리고 떠다니고 겹치는 게 잘못보면 멀미가 날 정도다. 이걸 진짜 사람으로 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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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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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의 의의는 무엇에 달려 있는 가는 복잡하다. 잘 그렸나, 색감이 좋은가, 구도가 좋은가, 무엇을 소재로 했냐, 어떤 재료를 썼는가, 어디에 그렸는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기 분분하지만 정답을 말해주는 예술가는 없다. 자신이 무엇을 나타냈든, 그것을 통해 많은 이들이 어떤 형태든 간의 의미를 찾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예술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힘이 있으니까.
 파블로 피카소는 말했다.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적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라고.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큐레이터 요코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반대하는 의미로 게르니카를 메인으로 한 피카소 전시회를 기획한다. 문제는 게르니카 원본 대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기자 카일의 생각대로 뉴욕 UN본부에 전시되어 있는 게르니카 복제품 대여를 염두하지만, UN에서 열린 기자회견 화면에서 전시된 게르니카가 검은 천에 가려진 상태라는 걸 보게 되는데...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 바탕이 되었고,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 반전주의를 표방하는 걸로 유명하다는 점까지. 소설은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렸던 당시와 현대의 시점이 교차되면서,이 세기의 걸작이 지금도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예술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까지.
 큐레이터가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꽤 복잡한 직업으로 보였다. 미술 전시회가 기획되는 과정과 전시 작품이 정해지는 과정을 보며 여러모로 꽤 준비가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시회가 그냥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까지. 그림 하나로 예술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예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 전시회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르니카가 제작될 당시의 피카소를 나타낸 부분도 꽤 인상적이었다. 시대적 상황에서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예술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피카소는 개인이면서 모두의 예술가였다. 그 어떤 위협에서도 지키고, 아무리 위험한 때라도 같이 따라가게 되는. 이 당시의 모습과 현대 시점을 번갈아 보면서 그가 게르니카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보고 분노한 게르니카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 있을 테니까.
 전반적으로 반복되는 설명과 구절이 많아서 살짝 거슬리게 보이긴 했다. 중요한 순간에 반복하는 건 좋지만, 시도 때도 없이 같은 구절이 나오면 솔직히 지겹게 느껴진다. 아마 반복되는 문장만 뺐어도 책 분량이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용 면에서도 살짝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시점은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요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시점이다. 겉으로는 엄청난 게 있다는 듯이 분위는 깔려있는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이다. 서스펜스라면 긴장감을 줘야 하는데, 생각보다는 너무 잔잔하다는 느낌이다. 보통은 추격전이나 두뇌싸움 같은 요소로 긴장을 발생시키는 요소와 역할이 거의 없고 후반부에 살짝 나오는 정도다. 게다가 그 살짝 나오는 곳도 금방 상황이 정리되기 때문에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인상이다. 오히려 피카소 파트가 더 서스펜스처럼 보일 정도라 도대체 어느 파트를 메인으로 둔 것인지 해깔리기도 하다.
 예술가는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작품만이 남게 된다. 이 작품들을 지켜야하는 건 특정 인물들이 아니라 모두라는 구절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특정 계층만 취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 피카소가 말하는 진정한 예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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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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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록은 당사자의 체험 및 관찰에 독자의 상상력이 합쳐지면서 실체하게 된다. 원래부터 뜻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상상력이라는 해석이 필요없겠지만, 의미부여와 관련없이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것도 글이라는 문자로된 기록이 아닌 소리로 기록된 녹음내용이면. 글은 나타난 묘사만으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정도다. 반면, 녹음 기록은 일종의 살아숨쉬는 기록이나 다름없다. 녹음된 장소를 가늠하게 할 주변 소리, 녹음된 목소리로 전해지는 순간순간의 감정과 주변 묘사까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소리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기록된 내용의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없는 건 글과 똑같기 때문에 역시 상상력이 합쳐질 수 밖에 없다.
 살아있는 기록에 상상력이 더해진다...
 만약 녹음기록이 무서운 내용이라면 공포가 그 만큼 더해질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기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가 섞이면서 말 그대로 살아있는 공포가 되고 마니까.

죽은 자의 테이프녹취록

 편집자 시절 나는 호러 관련 출판 기획을 준비하던 중에 기류 히사히코라는 작가를 소개받는다. 다소 붙임성이 없던 그는 자살하기 직전에 녹음된 테이프 내용을 적어서 출판하는 걸 제안한다. 꺼림직하지만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믿고, 나는 문제의 샘플 원고를 받게 되는데...
 보통 호러소설하면 생각하는 첫 문장이나 배경과는 다르게 시작하기 때문에 편집자를 주인공으로한 단편 출판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런 점을 편견으로 여기고 이런 전개로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굳이 이상한 곳에 가지 않아도, 무언가 쫓아오거나 위협하는 상황을 연출하지 않아도 호러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편집자의 시점을 이용한 것도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녹취테이프, 그것도 자살 직전에 녹음된 테이프의 내용을 기술하는 것부터 섬뜩한 일이다. 애초에 그런걸 녹음한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시 상황을 소리에만 의존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 은근히 공포스럽게 한다. 특히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청각으로 간접적인 판단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지의 공포를 자극하게 된다.
 여기에 듣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은 개인의 상상에 맡기겠다.
 
빈집을 지키던 밤

 몇 명의 후배와 술자리를 가지던 나는 한 후배의 여자 선배가 겪은 일을 듣게 된다. 그 선배는 어느 날, 빈 집을 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기업회장 부부가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고급 저택이었다. 다소 기묘한 분위기의 저택에서 할 일을 알려주던 부인은 그녀에게 노모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주는데...
 집이 고전적이면서 아직도 여전한 호러스팟이라는 건 웬만하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집은 호러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고급저택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호러는 그 어떤 예외인 곳에서도 덮치기 마련이다.
 흔히 하우스 호러하면 귀신 나오는 집이 대표적이지만, 마이클 마이어스로 유명한 할로윈 시리즈처럼 살인마라는 현실적인 공포도 존재한다. 뭐, 이 분야까지 가게되면 하우스 호러라기 보다는 슬래셔에 더 가깝게 되긴 하지만. 이 단편의 경우는 앞에서부터 왜 할로윈 영화 얘기를 하면서 강조를 하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다가오는 공포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호러 분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생각하면, 이번 단편은 그 동안의 괴이한 호러라는 패턴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허를 찌르는 호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

 아르바이트 동료인 가쿠 마사노부의 제안으로 네가히 산 하이킹에 가게 된 오쿠야마 가쓰야. 그런데 정작 대표인 가쿠가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오쿠야마는 같은 일행인 가쿠의 또 다른 지인 셋을 이끌게 된다. 유독 조용한 일행의 틈에서 겨우 얘기를 이어 하던 중, 가쿠가 약속날 이전에 네가히 산을 방문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낯선 사람들끼리 모였다가 무슨 일이 발생하는 내용은 추리나 호러 쪽에서 흔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이 발생함으로서 분위기와 인물들 간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기에 이른다. 이 단편의 경우는 앞서 설명한 경우와 비교하면 완전 다르다. 하지만 역시 이 구조를 이용해 허를 찌르는 공포는 상당하다.
 솔직히 이 공포 단편의 구조는 어디서 들어본 무서운 이야기의 형태와 약간은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일행이 문제가 아니라 산 자체가 문제로 다가오면 그건 또 얘기가 다를 것이다. 산은 한정된 공간이면서 넓은 곳이라는 걸 떠올려 보라. 또, 옛부터 사람들이 자연을 두려워했다는 점도.

시체와 잠들지마라

 중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K로부터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온 노인 환자가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있던 노인은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K로부터 받은 노인의 말을 재구성해보면서, 그것이 어린 시절의 체험담으로 추정하는데...
 무서운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해석하려는 부분이 강해서,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보던 공포추리적인 면이 돋보였다. 추리에서 미스터리가 불가능 해보이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라면, 호러에서 미스터리는 공포의 실체를 들추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왜, 무섭냐를 고찰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면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이 단편은 해석이 되지 않은 이야기부터 불길하고 기묘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무섭게 보이지 않은 내용에서 공포를 찾아내기 보다는, 이미 공포가 흘러나오고 있는 내용 속에서 보이지 않게 봉인된 부분을 찾아 공포의 본질을 쏟아지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문제의 노인이 겪은 어린 시절 체험담은 불길함으로 가득찬 느낌이었다. 분명 현실이라 생각되는 분위기에서 어느 순간 다른 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노인과 체험담 속의 아이와 어딘가 매치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어 더욱 이해하기 힘든 공포로 말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해석, 즉 공포를 추리한다는 건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증폭이 되고만다. 보통 미스터리가 해결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가는 것과 반대로 작용한다니 참으로 기이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바로 호러라는 것의 매력일지도.

기우메: 노란우비의 여자

 외진 곳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로부터 기이한 얘기를 듣게 된다. 비도 오지 않은 날인데 노란색 우산을 들고 노란 우비를 입은 여자를 목격했다고.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지만, 노란우비의 여자가 남자친구를 주시하면서부터 일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주변 환경과 맞지 않은 모습의 존재는 언제나 무섭기 마련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더더욱. 보통 이런 무서운 이야기는 공포의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기우메는 조금 특이한 경우로 보였다. 어딘가 어중간하다고 할까, 아니면 불분명하다고 할까. 분명 불길하게 보이면서도 확실한 무언가를 보이지 않아서 시시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이 시시하다면 무서운게 되질 않는다는 걸 생각해 둬야 한다.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걸 생각하면 기우메 역시 죽음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고, 알 수 없게 다가오는 것이니까. 또, 노란우비에서 연상되는 비는 음기를 나타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

 직장인 후지사키 유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길의 철도 건널목 건너편에서 검은 형체의 사람을 목격한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 같지 않은 기분이 들던 그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로 여긴다. 그런데다음 날 출근길에도 검은 형체는 철도 건널목에서 나타났고, 점점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걸 알게 되는데...
 앞선 단편인 기우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다. 길에서 낯선 존재와 마주치는 것까지는 비슷한데 분위기면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기우메가 불길한 기운이 점점 퍼지는 느낌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점점 좁혀오는 공포다. 좁혀오는 공포라면 말 그대로 긴장감을 극에 다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좋지 않은 것은 밖에서부터 들어온다고 하지 않은가. 그것도 당사자가 모르게 천천히.
 공포가 다가오는 한편으로 곳곳에서 주인공이 갈등하게 되는 현대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직장문제라든지, 괴이한 존재에 대한 논의라든지. 솔직히 이런 무서운 상황을 현대 도시에서 어떻게 알려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른 소설에서는 영능력자라든지, 그런 게 나오기라도 하지만 이 단편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발생하는 괴이한 공포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인상을 준다.
 여담으로 작가의 다른 신간 소설이 언급되기 때문에 소소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각 단편들을 보다보면 녹음기록 및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한 단편집으로 보일 것이다. 만약 진짜 그렇게 보인다면 책 맨 앞의 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 한다. 이 책은 단편집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다. 분명 책을 읽기 전에 표지를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장편소설이라는 자각없이 읽었다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한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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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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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공정함 보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대가성을 먼저 따지고, 제대로된 논의도 않고 끼워 맞출 생각만 한다. 잘못된 판결이라도 그걸 증명하는데만 몇 년의 세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거꾸로 따지고 들어가면 대부분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나 판단을 잘못한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렇다는 건, 나 또한 어딘가에서 잘못 걸려들면 말려들 수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잡혀들어가 무고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피해자 역시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것일테고.

 야마나시 현의 재력가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 미카가 납치 당한다. 범인은 몸값 1억엔을 요구하지만, 경찰의 판단 아래 전해지지 못하고 결국 미카는 시체로 발견된다. 범인 검거에 총력을 다한 경찰은 가방에서 발견된 지문을 토대로 인근에 사는 무고한 청년을 체포한다. 청년은 무죄를 주장할 틈도 없이 경찰의 묻지마 식 수사로 범인으로 확정되어 가는데...

 형사사건 변호사가 직업인 작가답게 곳곳에서 경찰 수사 및 사법체계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뒷바침 되어 있다. 뉴스나 관련된 부분이 나오는 소설에서 많이 나오던 장면이라도 전문가적인 코멘트로 실제현장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짚어준다.

 시사프로그램에서 사건을 다루는 듯한 르포형식이다 보니 앞에서 한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그 상황에 대한 평가가 같이 기술된다. 각종 보고서 관련 부분까지 어느 정도 상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조작이 이루어졌는지 확연히 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다고 할까.

 무고 사건으로 진행되다보니 보통 여러 논의가 되야할 부분 상당 부분이 답답하게 넘어간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생각을 해보지만, 소설 속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생각 밖의 실수를 저지르는 걸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도 그걸 책임지기 싫어 밀어붙이는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중단할 수 있을 시기를 넘겨 계속 폭주하는 모습은 국내에서도 있었던 각종 누명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게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었다. 경찰의 강압수사, 허위자백 등등,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인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항소과정에서 변호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 수도 있었다. 간혹 보게 되는 법정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 또는 변호사와 변호사끼리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장면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여러 기관을 돌면서 절차에 필요 서류, 또 맡은 사건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활동까지. 변호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바쁘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과정만으로도 힘들텐데 의뢰인 또는 피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까지 한다면 그 만한 좋은 변호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역시나 예외가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렇듯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쓴 사건을 통해 법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면서,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더 중요한 사실도 알려줌으로서 사건수사와 법정공판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게 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명백한 증거도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진술조서가 임의로 아무렇게나 작성될 수도 있다. 또, 이것도. 누명하나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박살나고도 그 누가 책임을 질 수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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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죽음을 앞에두고도 삶을 생각하는 것은 역시 미련 때문일까? 그래서 귀신이나 유령으로도 불리는 죽은 사람의 혼이 떠돌아 다니고, 귀신이 씌인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진 탓에 무서운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죽어서 떠도는 영혼도 어쨌든 사람이었다. 말 못할 사연이 있던, 꿈이 있던, 누군가를 사랑하던, 힘들어도 살아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옛 고문헌이나 고전문학에서도 다루어지는 영혼을 봐도 요즘 공포영화에서 볼 법한 악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죽고 싶어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기점일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 쫓기는 자매와 이들의 관계 파악에 나선 약사,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사는 재일교포, 죽은 형의 영혼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남자. 이들을 하나의 관계로 연결시키는 연결고리를 보며 일상에서 전혀 보지 못하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들여다 본다.

 인생을 게임처럼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면, 가장 그럴사한 경우가 이 소설에 나오는 경우로 보였다. 하지만 리셋이라기 보다는 해킹에 가깝고 이로 인해 다른 누군가는 죽는 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섬뜩하다. 이렇게 까지 가면 심각한 전개로 엑소시스트 같은 경우까지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정도까지의 선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 소설은 사람이었던 자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초자연적인 악의가 아닌 사람으로서 소망하는 간절함으로 가득찬.

 살고 싶은데도 죽을 수 밖에 없고, 예상치 못하게 죽고, 죽지 못해서 살고, 늘 죽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일종의 역학관계가 성립하지 않나 싶다. 겉은 변함없이 혼의 상태만 죽고 싶은 사람은 나가고, 아직 살고 싶은 사람은 돌아오는. 무섭게 다가와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운 건 왜일까. 죽었더라도 결국은 같은 사람이라 그럴까.

 빠른 전개 속에서 누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쫓는 과정은 여러모로 색다른 미스터리였다. 인과관계에 대한 미스터리와 혼의 실체라는 금기에 다가가려는 시도라는 두 가지 구도가 있다. 얼핏보면 이 두 가지 구도는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결국에는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 혼에 대해 다가가는 부분과 금단의 영역이라는 점이 어딘지 모르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 노트>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타나토 노트>가 멀리서 찾는 죽음이라면, <부유하는 혼>은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죽음으로 보였다.

 혼을 중심으로 죽음이 많이 나오는 내용이지만, 그 반대인 삶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죽어서까지 다시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은 왜 쉽게 죽음을 선택할까.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의미 있는 걸 놓치지 않기 위해 시도를 해본 적 있을까. 삶을 너무 좁고 한정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오래 전, 죽음 너머를 들여다볼 생각을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현실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결과로 생각된다.

 살고자 부유하는 혼, 죽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

 서로 다른 세계이지만, 어떤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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