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알라딘 특별판, 양장)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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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순간이 종종 있다. 좋은 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대체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다. 어떤 선택이든 쉽지 않지만, 삶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한 선택으로 인해 더 큰 일을 벌이게 되고 만다. 그때 되서야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서원은 세령호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 때문에 모두에게 버려지고 예전에 같은 방을 쓰던 아저씨인 승환과 숨어살아간다. 하지만 어디를 가던 당시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가 주변사람들에게 배달되면서 새출발은 자꾸 좌절된다. 그렇게 또 다시 새로운 장소인 등대마을에서 지내던 서원과 승환은 인근에서 발생한 잠수사고로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문제의 신문기사를 또 배달받게 된다. 그런데 신문기사와 함께 도착한 또 다른 택배 안에서 세령호 사건의 전말이 담긴 소설원고를 발견하는데...

 현재 진행형인 한편으로 과거부터 되짚어가는 전개 형식이라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긴장감 있게 만든다.

 안개에 뒤덮이는 세령호와 서원의 아빠인 최현수의 행적으로 인해 섬뜩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댐 주변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불안정한 정신을 나타낸 것이겠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그림자가 기어나오는 모습이 자꾸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내제되어 쌓인 불안이 내면 속에서 표출된 것치고는 꽤 무서운 분위기다.

 이것만해도 벌써 서늘한데 여기에 도저히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마 같은 인물이 사건 속을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이건 환상 같은 비현실적인 게 아닌 실존하는 위협이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기중심적 사고가 어디까지 도달해야 이런 인물이 나올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함 그 자체다.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심리는 세령호의 안개만큼이나 짙으면서 답답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가 누가 되든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감내하기 쉽지 않다. 특히 혼자라면 몰라도 가족이 있으면 더 힘들다. 나의 선택이 곧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니까. 이런 엄청난 부담까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만큼 제 정신을 붙잡는 것도 힘에 부치질지 모르겠다.

 이런 탓에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실이 두드러진다.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다 해야겠다. 한 순간에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어떻든 책임이라는 걸 피해가기 어렵다. 또,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가족까지 같이 말려들 수 있어 과거의 그림자는 한 없이 크게 느껴지게 된다. 때로는 거대한 거인, 때로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물처럼.

 시점이 다소 난잡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 중간중간 읽는게 더디기도 했다. 인물이 옛기억을 떠올리는 구석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이 점도 확실하게 인지하지 않는 이상, 과거시점으로 넘어가는 건지 구분 못할 때도 있었다.) 이게 지금 날짜에 일어난 일인지, 과거에 있던 일인지, 며칠 전 인지, 아니면 몇 시간 전에 있던 일인지 살짝 구분이 되지 않기도 했다.

 과거는 흘러가도 그 밑의 잔재물은 언제든지 남아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걸 털어내느냐, 같이 썩어가며 망가지느냐의 선택이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잔재물이 어디에 얘기하기 힘든 거라든가, 자신과 관련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신에게 붙은 것은 자신 만이 털어 낼 수 있으니까. 그 어떤 파장이 일어난다해도 후회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건 오직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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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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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도 들어가기 전, 첫 페이지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그 유명한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작가가 언급된다는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니발의 잔혹성도 상당하지만, 스티븐 킹의 메르세데스 살인마 역시 장난아니다. 킹이 한니발 작가를 언급할 정도면 도대체 빌 호지스에게 어떤 잔혹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지. 또, 그 만큼 얼마나 고생의 길이 열린 것일지. 결말 다운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 정도 크기의 판이 준비되어 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약간이나마 예상할 수 있는 걸로는 표지에 나타난 피바다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빌 호지스는 2009년에 메르세데스 살인마로 인해 전신마비가 된 여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경찰과 빌은 단순 자살로 판단하는 가운데, 홀리 기브니는 자살동기를 전혀 찾을 수 없다면서 빌에게 현장에서 발견한 미니게임기를 보여준다. 그 게임기는 이어지는 여러 자살사건과 연관성을 가지면서 빌 호지스는 점차 6년 전의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있는 메르세데스 살인마의 그림자를 느끼는데...

 빌 호지스 트릴로지의 첫 발단이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시작된 퇴직형사와 천재 사이코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번 시작된 대결은 제대로 결판이 나지 않는 이상 끝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사건 역시 확실하게 종료되야 임무종료인 것이다. 곳곳에서 마지막이 강조되듯이 퇴직형사와 천재 살인마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한쪽은 죽을 힘을 다해, 또 다른 쪽은 최대한 잔혹하게.

 그런데 이번 작품을 보면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에서 자주 보이던 장치를 볼 수 있다. 이 요소로 인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작가는 과도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활용해서 나름 현실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현실과 초자연적인 부분이 경계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분위기랄까. 어떻게 보면 스티븐 킹 식 추리로 볼 수도 있고, 책 뒷편에 적힌 평가대로 기발한 방식의 장르 파괴일 수도 있다.

 문득 작가의 이전 작품 중에서 <그린 마일>을 나쁜 방향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의 차이지만, 그 하나 만으로도 엄청나게 다른 전개를 보여서 삶과 죽음은 진짜 한끝 차이로 보였다.

 갈수록 진화하는 천재 사이코의 모습을 보며 앞서 작가가 토머스 해리스를 언급한 이유를 점차 알 수 있게 된다.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만 해도 그냥 불우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한낯 천재 사이코가 점점 거의 한니발 렉터와 비슷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간다. 공포소설적인 장치가 사용된 것도 이걸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살과 게임중독이 주 소재로 나와서 새삼스럽지 않게 보였다. 국내에서도 여러모로 꽤 문제로 지적되는 점이니까. 특히 자살, 그 중에서 부각되게 다룬 청소년 자살은 전세계 어디든 예외가 아닐 것이다. 비록 작중에 나오는 상황은 현실과 다를지 몰라도, 자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 순식간이라 자살예방과 상담이 왜 필요한지 느끼게 만든다.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끝내려고 했을 때,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으로 상당한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다. 빌 호지스 역시 그런 아쉬움이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군거더기 하나 보이지 않고 진짜 끝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임무 종료였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아쉽다고 해도 빌 호지스 본인에게는 나름 만족스럽게 끝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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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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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진 시간이 오면 사라지는 밤이지만, 밤이 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둡고 깊은 느낌을 받는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어둠이고 해가 뜬다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간혹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기도 할까. 아니면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에 속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릴까봐 그러는 걸까. 생각해보면 낮 시간이 활동적인 시간이라면, 밤은 정적에 휩싸이는 시간이다. 밤의 정적은 어딘지 모르게 세상이 더욱 크게 느껴지게 만들고, 혼자 외딴 곳에 떨어진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오하시는 예전에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과 교토의 축제를 보러가게 된다. 그러나 곧 10년 전 실종된 한 하세가와라는 여자를 떠올리게 되고 오하시가 역 근처 회랑에서 본 동판화를 언급하면서 각자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늘어 놓는데...

 밤과 연관된 괴담 같은 일화 속에서 기척은 있지만 윤곽은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잊고 있던 무언가를 찾아내면서 나타나는 그리움이 인상적이었다. 섬뜩하면서도 어딘지 익숙한. 낯선 것이지만 알고보니 내가 알던 것이라는 점은 밤이라는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작중 나타나는 밤은 인물들을 고립시킨다. 그저 밤이 늦어 모두가 돌아간 한적한 느낌과는 다른, 진짜 나 혼자 또는 우리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어린 시절 간혹 느꼈을 법한 밤의 어두운 세상에 대한 기묘하고 어쩐지 무서운 인상과 비슷했다. 고립이라하면 어딘가 갇혀 있다는 인상 때문에 공포스러움이 먼저 떠오르지만, 작중 상황이 여행으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어딘지 모를 쓸쓸함 속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현재의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민에 빠진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던 건 아닌지,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던 건 아닌지, 또 내가 나를 잊고 있던 건 아닌지. 그들이 떠올린 과거는 하나 같이 밤의 세계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나타나 섬뜩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알아봐 달라는 듯한 인상도 보였다. 동판화에 나타난 손을 흔드는 여자처럼.

 밤의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간간히 언급되는 동판화의 존재 역시 눈여겨볼 점이다. 작중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반영하는 듯한 그림은 작중 세계를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동판화의 작가인 기시다 미치오의 기이한 행적까지 더해져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보이기에 이른다. 그림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 떠오를 정도로 동판화의 신비로움은 환상 그 자체였다. 책 표지도 동판화 스타일로 되어 있어 간접적으로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섬뜩하고 기이한 분위기지만, 야행은 여느 괴담 같이 그렇게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밤의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놀라는 한편으로, 그 곳에 남겨진 무언가에 대한 쓸쓸함으로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기회가 남아 있다. 이 곳을 벗어나길 바라는 희망고문이라든지,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곧 나타날 아침의 모습을 기다리며 일출을 지켜볼 때의 기대감이랄까. 밤의 어둠에 머무르면 곧 절망이겠지만 그걸 누가 바라겠는가. 밤은 어쨌든 끝난다는 현실을 믿으며 밤을 거닐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야행 열차의 야행, 백귀야행의 야행 말고 또 다른 야행의 의미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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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그림자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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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디서 다가올지 모를 칠흑같은 어둠은 물론이고, 안전하다 여겨지는 빛이 있는 곳에서도 그림자를 드리우며 덮친다. 보통은 이런 걸 예기치 못한 일이거나 갑작스러운 비극이라 하지만, 애초에 모든 걸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경우라면 말이 다르다. 그건 곧 우연하게 나타나는 그림자가 아닌, 가까이에서 숨어있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살인마 L이 보내온 분리된 권총 하나. 이것은 D시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L의 게임규칙 변경에 모삼과 무즈선은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어지는 사건 속에서도 L의 직접적인 개입이 발견되면서 모삼은 L이라는 존재 자체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를 만나러 프랑스를 방문했던 무즈선에게 큰일이 닥쳤다는데...

 사신의 술래잡기에 이어 탐정 모삼과 법의관 무즈선의 추리가 이어진다. 전작에서 강조되던 게 알려지지 않은 미제사건이라면, 이번에는 알게 모르게 가까이 있던 범죄의 그림자다. 그래서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거나 연관성 있는 인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이 의외성은 반전 같은 건 아니고 겉으로 볼 때는 범죄를 저지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사람의 겉과 다른 추악한 모습이 숨어있는 게 많았다. 이번 사건에 나오는 범인들은 술래잡기에 나온 범인들 만큼의 잔혹성을 보여주면서 각종 이중적인 모습이 보였다. 직업, 빈부격차, 심리, 지역개발, 정체성. 반대되는 경우가 있거나, 깊고 커다란 어두운 면이 있는 경우다. 근본적으로 악인인 경우도 있지만,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복잡한 상황이나 감정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살의로 현실에 나타나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몇몇 사건의 범인은 살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평범한 모습이라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중국에서만 한정된 문제들이 아니라서 세삼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사신의 격려 파트에서 나오는 부동산, 재개발 문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나라의 재개발지역과 서울 용산 문제가 떠오를 정도로 재개발 과정에서의 원거주민들이 입는 피해와 무산되었을 때의 무책임함이 보였다. 중국은 개발 스케일이 더 크기에 그만큼 피해자가 많이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난개발이 얼마나 고위층 멋대로 벌어지고 거주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지 잘 알 수 있기도 하다.

 살인마 L의 돌발행동도 눈여겨볼 점 중 하나다. 사신의 술래잡기에서 과거경력과 모삼과 무즈선의 증언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정도였던 그가 이번에 사건 속에 직접 개입한다. 그 동안 말로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누군가를 죽일 것이라 공헌하던더라, 그의 변칙적인 개입은 긴박함을 불러오는 동시에 수수께끼 같은 그의 존재와 행동을 탐구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그 역시 이번 사건들의 주제인 그림자에 속하기에 더 관심있게 볼 수 밖에 없다.

 그냥 미치광이 살인마 정도였던 전작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면이 많았다. 사건이 이어질수록 점점 사회적 부조리에 관해서 다소 과격하지만 날카롭게 지적하는 면이 있어 어딘지 모르게 모삼과 무즈선이 생각하는 것과 다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악의 편이라는 확고한 차별성을 보이긴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제프 린제이의 덱스터 시리즈에 나오는 덱스터 모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덱스터는 보통 사람 코스프레와 멀쩡한 직업을 가진 동시에 범죄자를 죽이는 살인마이지만, 살인마 L의 경우는 아예 대놓고 누구나 죽일 수 있다고 공헌하는 미치광이 범죄자 인증을 하고 다닌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그 동안 궁금증을 유발하던 살인마 L의 정체와 연관성을 보여 다소 윤곽이 잡히고 확실해진다는 느낌이다. 과연 살인마 L의 정체는?
 마무리가 확실하면서도 좀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모삼과 L의 악연은 확실히 정리된 듯하다. 이걸로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말이다. 직접적인 범죄가 아닌 잠재적인 그림자는 언제 어디에서 또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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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음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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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데의 손

 아이들이 무서워 교직을 그만둔 남자가 옆집 소녀를 알게 되면서 겪는 기괴한 이야기이다. 아무런 열정없이 지내는 교사의 심리가 많이 들어나 보였다. 파탄난 가정의 모습에서 무능력한 가장의 절망적인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구성원의 조합이 이상해서 가족으로 보이지 않는 옆집 사람들의 등장은 삭막한 이웃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라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태어난 소녀는 뒤틀린 가족상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쪽 집은 어떻게 보면 똑같았다. 다만, 소녀 쪽은 남들의 눈을 의도치 않게 숨긴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자와 소녀는 파탄난 가정이라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지지만, 그것은 또 다른 공포의 시작점이 되었다. 가족이 떠나고 방치된 집에 남아있는 옷. 끼워질 팔이 없는 옷에 남의 팔이 끼워져도 문제될 일이 없을 것이다. 비록 살아 있지 않더라도.
 
후구루마요비

 자신을 관찰하는 '작은 여자'를 환시하는 병약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 겪는 자괴감이나, 주위 시선에 대한 평가를 볼 수 있었다. 아픈 몸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에 대한 선망과 질투,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해야하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모두가 자신을 동정하는 것 뒤에 경멸이 숨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을 보면서 장기투병 환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점 집안에서 짐만 되어가는 여자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였다. 거기에 동생은 자신과 반대로 잘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자신이 끔찍하게 보였을지.
 점점 무너지고 있는 가족의 경계는 완전히 무너지고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상황까지 오게 된다.
 몸이 아픈자는 마음도 아프다고 하듯이 병약한 여자도 마음의 병이 생겨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무언가 기억하려면 두통이 오는데, 혹시 요괴의 짓이 아니었을까?
 
모쿠모쿠렌

 방안에서 시선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장인의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특히 시선과 물체를 보는 것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흔히 우리는 눈으로 본다고 하지만, 작가는 우리는 의지로 보고 있는게 아니라서 본다는 게 아니라, 보이고 있다고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장인은 특이하게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지만 혼자, 그것도 집안에 있을 때 시선을 느낀다. 많은 이들의 시선은 거북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있을 때 시선을 느낀다고 하니 누가 훔쳐본다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이버시 침해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남을 훔쳐본 사람이 더 시선에 민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남을 훔쳐봤으니, 분명 다른 사람도 나를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되면 자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오니히토쿠치

 도깨비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인쇄공이 겪은 기괴한 이야기이다. 주로 도깨비에 대한 여러 관점에 대해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우리나라 도깨비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는 뿔에 관한 것부터, 도깨비라는 존재의 근원과 정체성에 대한 고찰이 나와 있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작가가 요괴나 괴담이 만들어지고, 어느 고장의 정착되는 순환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명 괴담 순환론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종전이 선언된 이후의 군인들이 겪은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타국 전선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시체를 전부 방치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나, 전투에서 지면 자결하라고 하던 고위층의 태도 변화를 보면서 최악의 상황에서 생존을 갈구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느꼈다. 전쟁이 수 많은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는 것을 여기서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크게 영향이 끼쳤던 것으로 보였다. 작품 속에서는 한 가정이 파탄나는 것만 나왔지만,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사례가 많았던 것 같다.
 종전 후의 재앙으로 변해버린 사회를 도깨비의 출현에 비유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엔엔라

 연기에 각별하게 집착하는 소방관의 이야기이다. 에도시대 부터 있던 일본 소방관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도 흥미로웠지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기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보여주었다. 엔엔라라는 요괴가 연기와 관련되어 있다보니 작가가 자연스럽게 소방관과 연관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체가 불타고나면 발생하는 연기는 단순히 찌거기에 불과하다지만, 여기서는 사물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 연기가 본연의 모습이고 육체가 찌거기라는 것이다. 어쩌면 형체있는 유령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연기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신기한 구석이 있다고 본다. 단순히 기둥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가지만 때때로 특이한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옛날 사람들이 목격해서 엔엔라가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집요한 집착이라는 것은 가질 수 없는 이상향의 환상을 끝 없이 뒤쫓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환상이 어떤 형체로 나타난다면, 그 사람의 집착이 만들어낸 환영일 것이다. 
 
 케라케라온나

 웃음에 대한 고민이 많은 여교사의 이야기이다. 흔히 웃음은 즐거움에 상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웃음이 가지는 다양한 관점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웃음은 기쁠 때도 나오지만, 남을 헐뜯거나 비하할 때도 나온다. 웃음의 이런 점을 보면 웃음이 반드시 즐거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유모를 웃음이 주위에서 들릴 때는 사람들이 경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으로 보아 웃음에도 빛과 어둠이 존재하는 것 같다.
 웃음 말고도 여성문제에 관한 점도 나왔다. 여성 운동가들은 남성적인 권위를 차용했다는 작가의 주장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현재 남성주의 사회틀에서 성별만 바꾸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여성운동의 방식이 전혀 여성적이지 않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주장과 행동이 일치하는 운동을 해야한다는 것 같다.
 여기서 웃음은 태초에 공격하겠다는 신호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인가? 화가 극도로 치솟은 사람을 보면 실소를 터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그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히마무시뉴도
 
 귀찮음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형사의 이야기이다. 끈적끈적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인해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무기력함이나 나태, 우울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로 전후의 일본 경찰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민주경찰을 표방하고 있지만 남의 일을 가로채서라도 승진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계급이 엄격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당히 성공에 대한 이기주의가 만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주위의 시선과 질타로 인해 하고 있다 주장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가끔씩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단순히 일하기 귀찮아서 만든 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작가는 무슨 일을 해도 남의 탓만 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는 나태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것 같다. 여기서 표현된 것 만큼 사람의 우울함이나 나태함은 한 번 붙으면 떨쳐내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리타테고로모
 
 교주인 아버지를 깊이 미워하는 승려의 이야기이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불교계 전반적인 상황이 들어나 보였다. 일본 불교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서열화 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 종교인들 사이의 차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주는 신통한 능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는다. 그런데 이 신통한 능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곡예사와 종교인의 차이가 교만이라고 나타나 있다. 즉, 재주를 부리는데 만족하면 곡예사고, 거기에 교만이 있다면 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종교라는 것의 이면이 들어난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르게 신에 가깝게 지낸다고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교만에 불과하면 특별할 것이 없어지고 그저 남을 무시하는 인간일 것이다. 이 교만이 무서운 것은 많은 이들에게 외면 받고 비난 받아도 꿋꿋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인간의 교만, 그것이 '에리타테고로모'라는 실체일지도.
 
게로조
 
 자살한 숙모의 기억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형사의 이야기이다. 주로 일본의 매춘에 관해 다루고 있었다. 전후의 피폐한 경제 상황에 많은 여자들이 매춘을 했을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경찰들의 단속을 해서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흔히 일본하면 매춘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도 마찬가지로 매춘을 하면 인간 취급 못받고 비난 받는 것이 보였다.
 무서움과 싫어함의 차이를 주로 말하고 있다. 작가는 사람들이 무서움과 싫어함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는 것 같다. 벌레로 예를 들고 있다. 징그러운 벌레가 나타나서 비명을 지르는 것은 낯선 것의 등장으로 일시적으로 놀란 것일 뿐,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벌레를 싫어한다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예로는 폭력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겁쟁이라고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싫어해서 무서워하는 경우는 없지만, 무서워서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 둘의 차이는 너무 복잡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이 싫어함과 무서움은 다른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것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애매모호 하다고 생각한다.
 
가와아카고
 
 무언가를 잊는 다는 불안감과 바다에 강한 혐오감을 갖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주로 이 작품은 축축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었다.
 현실에서 작가가 느끼는 마음의 부담이 나와 있었다. 뭐든지 써야 한다는 강박감, 써도 재미없는 것만 써져서 느끼는 허탈감, 자신이 세상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같은 복잡한 심정이 한꺼번에 오다보니,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아마도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여기에 나온 부담감을 느꼈을 것 같다.
 부담감으로 머릿속이 정신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든 자연스럽게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람을 정말 불안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듣고 잊어버리거나, 말다툼한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잊어버리면 자신 안에서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것에서 불안이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무언가를 잊는 것이야 말로 불안의 원천일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과 바다에 대한 혐오가 겹치면서 요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듣자 하니 소설가는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애초에 정상적인 정신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 정말로 그렇다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4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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