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7
윤동주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국내 시인 중에서 윤동주하면 다들 알아주는 인물이라는 걸 꽤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학창시절 누구나 다 그렇듯이 윤동주는 결코 좋게 볼 수만은 없었다.

 분명 그의 시는 가치로서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윤동주 시인이 생각한 바 그대로의 풀이인지 아니면 비평가들이 만들어낸 풀이를 윤동주의 뜻이라며 선전하는 풀이인지 알 수없는 시험 문제를 보면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다들 윤동주, 윤동주하면 치를 떨고는 했지만 나는 그게 윤동주 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시를 쉽게 볼 수 없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긴 했다.

 그 후, 이제 시를 편하게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느끼며 읽고 있으니 이제 윤동주의 시도 편하게 볼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과거의 독한 시험문제로서의 윤동주가 아닌, 정말 시로 서의 윤동주를 보자.

 윤동주의 시를 보면 대체로 소박한 일상에서의 이유모를 아련함과,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어하는 갈망이 느껴졌다.  분명 보면 시에서의 상황은 별거 아닌 게 많은데,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잔뜩 잃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의 느낌이 시 전반에 녹아있는 게 아닌 가 싶다.

 특히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어하는 갈망은 대체로 모든 시에서 거의 느껴진 것 같다. 어떤 느낌이냐면 잔잔히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공중에 떠서 종잇장처럼 하늘하늘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날아가고 싶다는 것도 단순히 어디로 가고 싶다는 목표를 정한 것도 아니라, 그 전에 먼저 그냥 아무런 간섭도 없이 그냥 자유롭게 가는 대로 날아가기를 염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느낌은 초반에 있는 "공상"이라는 시가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서는 자유롭게 날게 된 이후의 모습을 쓴 것에 더 가깝겠지만.

 하나 더 꼽아보자면, "간"이라는 시는 그 시대의 상황을 보면 정말 윤동주의 식견이 꽤나 넓었던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토끼의 간 이야기와 서양의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를 결합한 내용은, 동서양의 비슷한 소재를 가지지만 전혀 느낌이 다른 이야기를 어우러지게 한 것을 보면 이런 점이 윤동주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가능성이었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이름은 많이 들어본 "별 헤는 밤"은 정말 이름 값하는 시라는 생각을 했다. 평범하게 시작해서 끝은 우주적으로 장엄하게 끝나는 시라, 윤동주의 대표시라 하기에도 걸 맞다고 생각했다. 정말 윤동주가 광복 이후에도 생존했었다면 무엇이 더 나왔을지.... 정지용 시인이 안타까워한 것처럼 나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의 수평선을 향하여  


 <공상> 중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헤는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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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맨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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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번쯤은 누구나 착각을 하는 법이다. 현실의 착각은 그 어떤 영화나 소설에서 보아온  반전보다도 더욱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단순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넘어 그걸 믿고 뭔가 그 착각에 걸맞게 취한 실제 행동을 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착각을 했다고 하면 자신이 엄청난 바보짓을 했다는 충격과 자책감이 생겨나는 것일 테다.

 이런 착각을 나타내는 예시 그림이 하나 있다.



 맨 끝의 그림은 똑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맨 앞에서 부터 보면 어떤가? 사람이 있는 쪽의 마지막은 안경을 쓴 남자로 보이고, 동물이 있는 쪽은 쥐로 보일 것이다. 아무리 같은 그림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 이것이 바로 착각의 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치오 슈스케의 랫맨은 이처럼 쥐이거나, 남자로 보이거나 하는 그림처럼 엄청난 착각과 착각이 만들어낸 기묘하고도 충격적인 내용이다.

 히메카와 료는 어린 시절 죽은 누나가 죽은 트라우마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14년 째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료는 예전 드러머였던 히카리와 사귀고 있었지만, 동시에 현 드러머이자 히카리의 동생인 게이에게도 마음이 있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할 때마다 과거의 누나가 죽었을 때의 일이 생각나고, 그때의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그를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히메카와 밴드가 늘 연습하던 스튜디오가 폐업이 결정되던 때 창고에서 히카리가 커다란 앰프 밑에 깔려 죽은채로 발견되는데...

 보통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에서의 의문점을 차곡차곡 쌓으며 정리해나가는데, 랫맨은 그런 정통방식의 추리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사건에서 나타난 의문점이 사건의 단서로서가 아니라, 인물이 그 사건을 판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랫맨에서 나타난 사건은 처음부터 개요라던가, 동기 같은 걸 겉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서 오직 인물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보니 독자는 독자의 생각대로 사건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인물의 생각대로 사건을 판단하는 지경이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작중 인물이 착각을 하는 순간, 독자 역시 착각할 수 밖에 없어진다는 것이다.

 정통 추리나, 본격미스터리를 많이 본 분들은 약간 답답하다고도 여겨질 수도 있는 게, 의혹이 나오면 그걸 토대로 추리나 조사를 이어가야 될 테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이게 왜 그러냐면 작중의 배경이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나올법한 정교한 기계장치를 이용한 트릭 같은 것은 찾아 볼 수도 없고, 그저 단순하게 사람을 죽이고 단순하게 조작하는 게 현실에서의 사건 모습이다. 또한 보통사람이 수사하지 않고 오직 경찰이 전부 해결하는 것도 현실 그 자체다. 그러니 이러한 분위기의 작품 속에서는 밀실이라느니, 기상천외한 트릭은 기대하지 않는 게 더 좋다.

 참으로 대단하고 느끼는 건 보통 한 작품에서 하나의 반전을 만들어도 억지스럽게 보이거나 끼워 맞추기도 힘든데, 랫맨은 그야말로 반전의 반전. 반전의 홍수다. 정녕, 위에 그림처럼 남자로 여기던 것이 쥐였던가, 아니면 쥐라고 생각했던 것이 남자던가, 또는 쥐도 남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동일한 것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착각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다고도 생각했다. 착각을 통해 행한 행위로 아무 이유없이 한 사람에게 영문모를 아픔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나쁜 짓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번 착각하는 게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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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4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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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신하면 다들 무엇을 떠올리는가? 당연히 국내 조직 폭력배는 물론이고 가까운 일본의 야쿠자 등등...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과거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편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성인들이 많이하면 성스럽고, 악인들이 많이하면 나쁜 짓이 되듯이 문신도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이런 문신을 둘러싼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다카기 아키미쓰가 만든 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맡은 첫 번째 사건이었다.
 마쓰시타는 학과 교수인 하야카와 박사를 따라 문신 경연 대회장을 방문한다. 종전 직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화려한 문신을 소유한 이들이 참여한 가운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오로치마루 문신의 여인, 기누에가 있었다. 그런 기누에가 마쓰시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자신의 가족들이 새긴 문신 사진을 넘겨준다. 며칠 후, 기누에의 연락을 받고 기누에의 집을 방문한 마쓰시타는 집 안에 널린 핏자국을 발견하게 되는데...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문신으로 시작해서 문신으로 끝나는 문신 살인사건 그 자체이다. 문신의 역사는 물론이고, 다카기 아키미쓰가 글을 쓰던 당시의 문신사들의 위치, 사회적으로 나타난 문신의 이미지 등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이 볼 때는 약간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문신이 그려진 피부 자체에 대한 느낌이라던가, 시술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썩 볼 만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사건도 그 동안 보았던 사건의 느낌과 다르기 때문에 상당히 기괴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문신을 둘러싼 끔찍한 살인 속에 숨겨진 겹겹의 트릭은 나름 놀라웠다. 정말 작가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썼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게 출간되었을 당시를 생각하면 참으로 시대가 만들어낸 역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건 작중의 나오는 폐허의 일본 모습이라던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상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체로 보면 문신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초반은 강렬한 느낌으로 휘어잡아 흥미진진하게 하는데, 후반에 가미즈 교스케가 나오면서 약간 그 느낌이 애매모호 해지는 감이 있다. 초반의 사건 느낌이나 스케일이 너무 크게 다가온 탓이거나, 후반의 가미즈 교스케의 추리가 너무 말빨로 진행된 탓이거나, 아니면 사건의 스케일에 비해 후반에 밝혀진 트릭이 뒷바침하기에 다소 약한 구석이 있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가미즈 교스케의 추리 스타일은 썩 유쾌하게 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간 증거도 없이 그냥 들이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작가 역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이기 때문에 크게 비판하지 않고 넘어가도 좋을듯하다.
 가미즈 교스케와의 첫 대면은 약간 말빨이 우세해 별로 큰 감흥은 없었지만, 중간중간 나오던 명색한 추리를 높게 사서 더욱 뛰어나게 나오는 다른 작품에서 또 봤으면 한다.
 
 어둠 속에 열린 창문

 한밤중, 구레타케 아파트에서 추락사건이 발생한다. 추락사한 시체는 목이 졸린 흔적이 있어 명백한 살인이었다. 주민들은 추락사한 주민의 집에 몰려가지만, 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그런데, 집 안에는 범인의 흔적은 없고 창문만 열린 상태였다. 더군다다 열쇠는 집 안쪽 문고리에 끼워져 있는 상태였다. 옥상에는 밧줄을 맬 수도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창문으로 날아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본격적으로 가미즈 교스케가 활약하는 모습이 나오는 단편이다. 문신 살인사건에서 나오던 기괴한 느낌이라던가, 현대적인 괴담 느낌이 물씬 느껴져서 아무래도 같은 시대의 작가들(에도가와 란포)에게 영향을 받은 듯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게 실은 그 동안 뭍혀 있던 초창기에 썼던 미공개 단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단편추리라지만 해결과정이 너무나 간결하게 나와있다.
 그래서 이 단편은 한 유명 작가가 연습작을 쓰면 딱 이럴 것이라는 느낌으로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유명 작가라 하면 다들 큰 기대를 하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어둠 속에 열린 창문처럼 다듬어지기 전에 작가가 늘어놓은 원석 그 자체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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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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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죄를 고한다. 간단하면서 쉬울 것처럼 느껴져도 막상 해보라고 하면 다들 꺼려하는 게 현실이다. 처벌받는다,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같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두려워 하는 게 있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다른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런 죄책감을 강하게 느낄 정도로 피해자가 많은 범죄가 있다면, 살인사건 보다는 현대인들이 가장 익숙하게 느끼고 다양한 형태로 경험한 사기가 아닐까 한다.
 이번 행복한 탐정 시리즈 3번째, 스기무라 사부로의 3번째 사건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말하는 악이 전염된다는 것은 정말 두고두고 생각해 볼 점이었다.
 대기업 사장의 딸과 결혼해 그룹 홍보지를 출판하는 부서에 들어온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 스기무라 사부로. 이번 취재는 소노다 편집장과 함께 기업 내 재무관리 일을 했던 모리 씨를 인터뷰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낸 후, 스기무라와 편집장은 버스를 타고 귀가 길에 오른다. 그런데 버스가 잠시 정차하고 있을 즘, 타고 있던 한 노인이 권총을 꺼내들고 승객과 기사를 위협하는데...
 사기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라 작중에서 나온 사건만 봐도, 국내의 다단계 사기라던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떳다방, 출처가 불분명한 방문판매 같은 게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그런데 살인사건도 아닌 범죄가 이렇게 파급력이 큰 양상을 나타낼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사기라는 걸 왜 당하는지 이해를 못한 건 사실이다. 속는 사람이 정말 순진한 것이라는 생각 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상은 흔히 말하는 그 말빨이라는 것에 기술이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이 말빨 기술자들의 행보와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서, 평범한 사람이 말기술로 순식간에 비밀결사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만큼 말의 힘은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사기 사건에 대한 생각하지도 못한 맹점을 알게 되었다. 주로 다단계 같은 사기를 보면 맨 꼭대기의 머리를 우선으로 해서 체포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밑의 주모자들도 같이 사기를 친 인물이다. 문제는 그들은 꼭대기의 원흉과는 달리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애매모호한 위치라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분명 같이 사기를 쳤긴 하나, 사기 친 이들과 마찬가지로 속은 입장이다. 이게 바로 악의 전염과 그 폐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사건수사 부분을 보면 스기무라 사부로는 여느 탐정 캐릭터들과 달리 정말 현실적인 인물이다. 일종의 탐정들이 가진 기본인 특수한 연줄도 없고, 괴짜스러운 천재도 아니다. 그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는 순정남 같은 이미지에 우리나라 막장드라마에서 볼법한 평범한 과거를 가진 재벌가 사위다.
 그래서 그의 수사법 또한 현실적이다. 주위에서 흔히 하고도 남는 방법이라 시시하다고 여길 법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셜록 홈즈 때는 부족한 기술이나 정보조사 실력을 괴짜스러운 천재 두뇌로 커버했지만, 지금은 그걸 전부 커버할 정도로 세상이 발전했다. 그러니 시시하다고 여겨야 되는 건 현실적인 탐정의 모습보다는, 사람의 천재성이 무색하게 보일 정도로 지독스럽게 발전한 세상일 것이다.
 비록 법정으로 따지면 형사사건이 아닌 민사사건 범주에 드는 사건이었지만, 여러모로 죄를 참회한다는 것과 앞서 언급한 악의 전염 같은 문제점들을 생각하게 했다. 사기, 특히 다단계 같은 사기는 타인에게 보다는 오히려 가까운 이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그럼으로서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잃고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무너지고 만다. 거기에 현대인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인 돈 문제가 겹친다. 인간관계는 어떤 방법으로든 회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돈은 성격이 다르다. 갈수록 한 푼도 제대로 벌기 어려워지는 현실에 한 명도 아닌 수 많은 이들의 돈을 물어줘야 한다니.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분명 행복한 탐정이라고는 했는데, 이번 사건에서 스기무라 사부로는 잃은 게 너무나 많아 보였다. 오히려 불행이란 불행은 전부 떠 앉은 것 같다고 보일 정도다. 사기라는 주제 만큼 스기무라 사부로도 직접적인 폭력이 아닌 말(소문, 험담, 거짓말, 협박, 고함, 회유)로 피해를 입었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데, 직접적인 폭력보다 언어적인 폭력이 더욱 큰 피해를 준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게 가장 큰 의미로 느껴졌다.
 이번 사건 이후로 한층 성장한 스기무라 사부로를 기대해본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를.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상하 관계 속에서는 작은 권력을 쥔 아주 약간 더 상위의 인간이, 거기에 어울리는 능력도 자격도 없는데 하위의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완전히 쥐고 말 때가 있지. 나는 그게 싫네. 내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그거야. -384p

 사람은 개조할 수 없어. 개조할 수 있는 건 '물건'일세. -395p

 그런 조직이 적발되었을 때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꼭대기에 있는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죄를 묻는다는 걸.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자신들도 가해자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이 남아버리거든요. 그럼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690p

 돈이라는 저주다 -775p

 익명의 정보의 거대한 집적장인 인터넷 사회에서는 상식인 열 명의 발언을 단 한 명의 선동자가 쉽게 없애 버릴 수 있다 -7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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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주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멋진 알라딘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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