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6 - 러브크래프트 전집 6 외전 (하) 러브크래프트 전집 6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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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권에 수록된 것은 대부분 러브크래프트가 영향을 받은 작가나 가까운 지인의 단편이다. 대체로 영향을 받은 단편은 색다른 느낌을 많이 받고, 가까운 지인 같은 경우는 러브크래프트와 비슷하거나 그 보다 더 하다는 느낌까지 들고는 한다.

 

질리아 비숍_고분

 외전 상권에서 뱀과 관련된 단편 둘을 봤었다. 중편 분량으로 질리아 비숍의 간단한 호러 소재를 가지고 러브크래프트 본인 스타일로 창작된 건데, 그저 그런 인디언 전설 공포 시놉시스로 드림랜드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인 세계를 만들어낸 걸 보며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과 상상력이 얼마나 거대한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태고의 세계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어디서나 나오는 불경한 존재의 땅에 침입했다가 파멸당하는 내용처럼 보였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드림랜드 같은 미지의 세계 탐험 같은 분위기가 된다. 하지만 랜돌프 카터가 드림랜드를 모험하며 다녔던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중에서 크툴루와 차토구아 등이 언급된 이상 아무리 잔잔한 신비로운 세계라도 곧 인간의 이해범주를 넘어선 공포가 나타나게 돼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주연 인물이 공포의 단면만 직접보고, 나머지 전체는 간접적으로만 접해서 멀쩡했다는 것과, 허버트 웨스트에서 나온 것과 다른 형태의 좀비가 나온 점이다. 이 좀비는 현대적 좀비 보다는 아이티 전설 속의 좀비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보였다.
 기계로 인한 규칙성 있고 표준화된 삶이라는 구절에서 이게 산업혁명을 나타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삶을 산지 오랜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냉소와 히스테리로 반응한다는 부분이다. 사치스러운 숭배, 혐오적인 유희와 사상, 공허 속에서 새로운 걸 갈망하는 것까지 나왔으면 잘못 본 게 아닐 것이다. 고분 속 지하세계의 모습은 러브크래프트가 상상한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그것도 상당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버린.

헨리 화이트헤드_보손

 외전 상권에서 함정이라는 단편에서 봤던 이름이다. 산뜻한 느낌이 특징이라 역시 밝은 분위기가 작중 내내 존재한다. <함정>에 비하면 다소 판타지적인 느낌이다. 신분차이가 있는 이들이 종말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내용이 영화 <폼페이>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다. 그렇다보니 신선한 면이 거의 없어보이고, 배경이 초고대문명이라지만 딱히 특별하게 표현된 곳도 없어서 밋밋하다. 그냥 고대 로마나 고대 그리스의 사라진 도시라 해도 될 법했다.
 바다에 수장된 초고대 대륙의 문명의 최후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분차이를 넘어선 사랑 얘기와 두루뭉실하게만 서술된 종말이 휩쓴 대륙의 모습이 그다지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평범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로버트 W. 체임버스_명예 수선공

 아티초크에서 출판된 로버트 W.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 단편선에서 읽었던 단편이었다. 딱히 공저작이라는 부분이 없던 점을 보면,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소설이기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제목답게 개인의 명예에 관련이 있어 보였다. 작중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의 생각이나 행동, 그리고 자신은 물론이고 아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하면 왜 그런지 근거를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뉘앙스로 느끼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그저 개인을 광기로 몰아넣는 공포를 그린 것일 수도 있지만, 광기의 종착점이 명예와 관련 있다는 점에서 뒤틀린 명예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자기 생각과 일치하지 않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곧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도 곧 남 탓, 자기 명예를 뻇으려는 의도라 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명예라는 것이 잘못 받아들여지면 광기의 끝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앰브로스 비어스_양치기 하이타

 명예 수선공과 마찬가지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소설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카르코사와 하스터가 먼저 언급되서, 위의 명예 수선공으로 전파되서 다시 러브크래프트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신화적인 내용과 교훈적이라는 점에서 코스믹 호러와는 거리감이 있다. 다만, 신을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일은 다소 섬뜩한 부분이 있었다.
 이걸 보다보면 도대체 체임버스가 어떤 부분에서 하스터를 노란 옷의 왕과 연결시킬 생각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여기의 하스터와 노란 옷의 왕 하스터는 전혀 다른 이미지 상인데. 결론은 지금의 하스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체임버스의 공이 더 컷다는 것일지.
 
돼지_윌리엄 호프 호지슨

 유령 사냥꾼 카낙키 시리즈에 해당되는 단편이다. 정통 탐정에 오컬트를 넣었다니 심령탐정이라 해도 될 법하다. 국내에 들어온 이 작가의 책이 <이계의 집> 밖에 없어서 이 시리즈는 물론이고 다른 것도 더 알아 볼 수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생각보다 긴장감이 있었다. 뭔가 과학적인 장비로 미지의 존재에 대항하면서, 그것 역시 완벽하지 않은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 계속된다. 거대한 저택이나 유령선 같이 큰 곳에서도 오컬트적 존재와 싸우는 게 스케일이 큰데, 여기서는 방 안에만 있었는데도 카낙키가 궁지에 몰릴 지경이다. 다른 사건들이 많이 언급되서 이 카낙키 시리즈에 대해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좀 아쉬운 게 있다면, 카낙키가 단신으로 미지의 존재와 맞서는 점과 그걸 후기로 들려주는 1인칭적인 전개다. 카낙키 외에는 의뢰인 밖에 사건에 연루되지 않기 때문에(그마저도 여기서는 혼수상태다.) 외적인 설명이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른바 왓슨 역할의 묘미는 비범한 주연의 행동이 보통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대신 알려주는 것이다. 카낙키를 보면 분명 보통 사람 눈에는 엄청난 인물이다. 이 인물 자신이 1인칭으로 모든 걸 알려주는 걸 본다는 건 그냥 독자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작중 다른 이의 시선에서 하는 부가 설명 없이. 그렇기에 이 카낙키에 대해서 다소 정리되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버트 E. 하워드_검은 돌

 러브크래프트의 가까운 지인이라 그런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느낌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금서에 관한 서술이다.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은 여러 단편을 둘러봐야 이력이 들어나고는 하는데, 여기의 검은 책(무명 제례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은 약간의 이력이 존재해서 금단인 이유를 알고 들어간다.
 광기어린 고대의식 장면이나 거대한 미지의 공간을 보면 <크툴루의 부름>에서 나온 크툴루 교단과 르뤼에가 떠오를 정도다. 다만, 검은 돌은 지금은 사라진 흔적을 찾는 탐사 방식이라 영향력 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아서 매컨_검은 인장의 소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 특징이다. 제 3자의 시점으로 어떤 인물에 대한 부분을 보여주며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를 조성하는 분위기인데,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힘들다가 후반에 전부 설명해주기 때문에 초반을 읽는 것이 무척 힘들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게, 이 소설상 모든 사건에 직접 개입된 인물을 제 3자의 시점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보며, 러브크래프트가 굳이 1인칭을 고집한 이유가 이러한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읽기 힘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인데, 그걸 제 3자의 시점으로 나타낸다니. 차라리 한 명이 점점 미처가는 걸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더 몰입하기 쉬울 듯 하다.
 주로 고대의 퇴화된 인류의 하위 분류가 현대까지 생존해 있다는 가설이 중심이다. 진화도 나름대로 생물학적인 면에서 공포가 될 수 있는 사례를 본 적이 있어서, 그 반대의 퇴화도 상당한 공포라는 생각이다. 그 둘의 공통점이라면 현재의 인류가 절대 상상하지 못할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_사탐프라 제이로스의 이야니

 로버트 E. 하워드와 같이 러브크래프트와 가까웠던 인물인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을 보여준다. 하이퍼보리아라는 가상의 섬으로 경이로운 장면을 나타낸 것만으로 압도적인데, 여기에 우주적 존재까지 나타나 공포 그 자체였다. 처음 배경에서 제대로 분위기를 몰아가기 때문에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는 배경구성부터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토구아가 처음 언급된 소설이라는데, 첫 등장치고는 상당히 강렬했다. <더니치 호러>의 요그 소토스, <광기의 산맥>의 쇼거스가 등장할 때 만큼이나 끔찍해서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지인 답다는 생각이다.

헨리 커트너_공동묘지의 쥐

 영미 공포소설을 접하다보면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게 쥐다. 게다가 데뷔작인 경우도 종종(이 소설과 제임스 허버트의 쥐) 있어서 서양에서 쥐라는 존재가 흔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럽 중세의 흑사병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체로 쥐를 이용한 공포는 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쥐가 아닌 경우와(러브크래프트의 벽 속의 쥐) 진짜 쥐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쥐의 범주를 넘어선 쥐인 경우(스티븐 킹의 철야 근무, 1922, 제임스 허버트의 쥐)로 나눌 수 있다. 공동묘지의 쥐 같은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
 많은 쥐 공포를 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이미 보았던 형태의 공포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땅굴이라는 점이다. 깊은 땅굴 속에서 사투를 벌이기 때문에 폐쇄 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다. 좁은 곳에 갖힐지도 모르는 마당에 수를 알 수 없는 공격대상의 위협까지 있으니 공포는 배로 커진다.
 땅굴이라는 특성을 빼면 흔한 쥐 공포로 볼 수 있지만, 공동묘지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에 관해 상세히 나오는 부분으로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은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어빈 코브_물고기 머리

 기괴한 호수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기괴한 인물이 눈에 띄는 내용이다. 특히 작중에 통칭 물고기머리라 불리는 인물은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작중의 물고기머리는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인데다 기괴한 점만 빼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던 인물이다. 보통 코스믹 호러에서 이런 인물일 수록 수상하거나 남 모르게 피해를 주고는 하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그런 인물을 건들였다가 초자연적인 공포를 겪는 걸보면, 결론적으로 물고기머리가 나쁜 놈이 아니라 먼저 시비건 사람이 문제가 된다. 이걸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드 던세이니_노상강도

 시적인 느낌 때문인지 에드거 앨런 포의 <레이븐>에서 느꼈던 심연의 공포와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특히 과거의 노상강도가 처벌받고 어떻게 방치되어 있는지 나타나는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분명 현실의 사람이 벌이는 일인데도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라 노상강도의 시체가 있는 거리인지, 아니면 노상강도라는 명칭으로 불린 죄인이 있는 죽음의 세계인지 해깔렸다. 분위기는 무서운 편이지만, 어딘가 밝은 느낌도 있어서 러브크래프트의 드림랜드 관련 소설과 비슷했다.

엘저넌 블랙우드_버드나무

 고대 유적이나 금단의 지역에 들어갔다가 처참한 일을 당하는 게 코스믹 호러의 대표적인 구성이다. 이 버드나무도 맥락상 비슷한 범주라 할 수 있지만, 약간의 경계가 있어 보였다. 코스믹하면 우주까지 날아가버린 경우가 많은데 버드나무의 미지의 존재는 우주나 다른 세계라는 묘사가 있었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가까워보였다. 이런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예를 들자면 스티븐 킹의 <정원사>, <옥수수 밭의 아이들>, <높은 풀 속에서>가 있다.
 초자연적 현상의 존재를 회피하려는 분위기도 있어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충돌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게 분명 현실적이지 않은 무언가에 둘러 싸여 있는데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내가 그런 거다, 내가 하고서 깜빡했어,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이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현실주의자의 무의미한 회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뻔히 보이는데도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은 모습이라 차라리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처럼 미처버리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앞에 두고 계속 외면하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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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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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는 때때로 현재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저 기분 나쁜 추억 정도로 생각나면 모를까, 현재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면 악몽 그 자체다. 거기에 그 과거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상대가 아는 나의 과거. 이런 게 과거의 그림자라는 것이 아닐까?

 살인을 부르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 그 4번째인 인형관. 외형적인 면부터 보자면 구조나 스케일부터 남다른 수차관과 미로관에 비하면 평범한 축으로 보였다. 십각관도 특정 도형 형태라는 점을 빼면 약간은 평범한 축이긴 하지만, 인형관은 과거와 현대 양식이 결합된 점 외에 별다른 외적 특징이 없고 이전 작품과 달리 도심 속에 위치해 있어서 고립된 환경 같은 것에서도 벗어난다. 그래서 미로관까지의 이전 작품들과는 약간 이질적인 분위기다.

 화가 히류 소이치는 연락을 끊고 살던 아버지가 살다 돌아가신 교토의 저택으로 어머니와 이사를 오게 된다. 일본 전통가옥과 서양식 저택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만으로도 기묘한데, 조각가였던 아버지가 만든 기괴한 마네킹이 저택 곳곳에 있는 탓에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한편, 거리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이 이어지고 소이치에게도 의문의 살해위협이 다가오는데...

 주연 인물인 히류 소이치가 화가인 점과 약간 고립적인 면을 보면 수차관에서 나오던 후지누마 기이치와 비슷해 보였다. 뭐, 내용상 수차관과의 약간 연관성이 있어서 노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전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상당한데, 가장 크게 두드러진 점은 흔한 저택 미스터리 형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보통 저택 미스터리하면 외딴 저택의 집 주인이 사람들을 초대하고, 모두가 모인 상황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져 거기에 우연히 탐정에 해당되는 인물이 있어서 사건을 수사하는 구조다. 그런데 인형관은 시작부터 그 반대에 해당되어 보였다. 주연인 히류 소이치가 집주인이나 마찬가지지만, 그가 집에 오기 앞서 손님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먼저 있는 것이 그렇다.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처음에 원래 집 주인에 해당되는 인물인 아버지가 있었을 때는 보통 저택 미스터리 구성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 주인이 히류 소이치로 바뀐 시점에서는 반대에 구성이 된 것뿐만 아니라, 소이치도 집에 대해 모르는 상태이니 소이치는 집 주인이자 동시에 손님에도 해당되는 기이한 위치라는 생각이다.

 이렇다보니 저택 미스터리 치고는 다소 낯선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연인물의 1인칭으로만 전개되서 다른 인물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고, 직접적인 탐정역할이 등장하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가 무엇인지 해깔리게 한다.

 사건 역시 세세한 느낌보다는 어딘가 한정적인 장면만 보여주고,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자잘한 사건만 벌어지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추리의 단서를 찾아야 하는지 답답할 것이다. 이걸 보면서 저택 미스터리가 왜 개방적인 곳에서 벌어지지 않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택 안의 용의자도 신경쓰이는 판에, 의외의 인물 몇몇이면 모를까 불특정 다수의 외부인까지 용의선상에 올라가는 것만큼 복잡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형관은 정통 저택 미스터리에 벗어난 만큼, 추리나 사건을 보는 시점도 정통적인 방법과 다르게 보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냥 작가가 벌여놓은 판이 어떤 구조인지 지켜보는 것이 더 편하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이질적인 작품답게 결말 역시 상당한 충격인데, 호불호가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모든 가정과 사실을 전부 파괴하고 나온 의외의 결말. 또는 나름 긴장감 있게 만들어 놓고 기대를 벗어난 어이없고 허무한 결말. 이 때문에 이 작품이 관 시리즈 4번째 작품이면서도 미로관 이후의 텀으로 만든 외전 같기도 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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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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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빨강머리 앤은 그냥저냥 보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다. 재미로 본다기 보다는 명작특선이라는 이름답게 그냥 본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앤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책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을 즘에야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이고, 어린 시절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앤이라는 여자의 일생을 그린 내용이라는 걸 알았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고 어린 시절 이후의 앤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 속 빨강머리 앤의 이미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뭔가 인상적인 이미지라는 생각이었어도,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감성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랐다. 그렇게 깊은 생각해 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이 에세이를 통해 그 감성이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이 되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가 신기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몰라봤다는 게 안타까웠다. 분명 어린 시절에도 들었던 말이어도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세월의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나에게 편견이나 제약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앤이 하던 말은 어린 나에게 당연한 말, 당연한 인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여러 편견과 제약에 나를 찾지 못하는 지금에서는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이렇다는 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은 것이 많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책에 같이 수록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장면 하나하나도 예전의 그 느낌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 이미지는 누가 보기에도 화질이 좋지 않게 실려있다. 이게 지금의 시선에서는 좋지 않게 보였는지 화질 좋지 않은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모양이다. 빨강머리 앤 외에도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메이션을 접해본 입장에서는 그 시대, 그 시절의 이미지를 그대로 실어서 그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고전작품을 화질 좋게 리메이크해서 원작의 분위기를 망친 사례를 종종 보았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빨강머리 앤의 이미지는 비록 화질이 좋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오리지널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어 비슷한 다른 걸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빨강머리 앤을 다시 돌아보며 가치의 소중함,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길, 세상을 넓게 보는 등, 심각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앤의 머리가 빨강머리면 어떻고, 내가 살아가는 게 이 모양이면 어떻다는 건가. 어차피 남이 뭐라해도 내가 사는 거고, 내가 받아들이는 건데 굳이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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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의 음악욕
운노 주자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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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의 음악욕


 먼 미래의 지구. 미루키국에서는 18시마다 음악욕을 하는 규정이 있다. 음악욕은 두뇌와 신체를 잠시동안 초인적으로 올려주며 동시에 반사상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줘서 대통령은 이 음악을 매일 틀게 하려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음악욕의 제작자인 코하쿠 박사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입장인데...

 미래 독제체제가 배경이지만, 자유에 대한 염원과 통제에서의 해방보다는 과학기술을 만드는 과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가,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게는 과학이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과학자하면 역사 속의 다양한 위인들이 떠올려지고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아니 과학기술이 학문이 아닌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매개체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잘못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에 대한 하등대우가 대표적인 예인데, 특히나 이공계열이 천대받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 나오는 음악이라는 요소는 일종의 대중매체고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자극적인 대중매체의 위험성을 나타낸 것 같았다. 마약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강한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면역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결국에 정상적인 사고회로는 망가지고 만다. 이게 자의적으로 노출된 것이라면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진행된 보편화라면 이건 태생적인 문제라 볼 수 밖에 없다.


 투명 고양이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러 가던 세이지는 어딘가에서 들리는 고양이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가 난 곳에서는 분명 고양이가 있었지만, 눈을 제외한 형체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고양이었다. 세이지는 신기한 나머지 몰래 집에 데려왔다가 자신이 투명해지는 일을 겪게 되는데...

 허버트 조지 웰즈의 투명인간이 생각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는 투명에 관한 작가만의 이론이 나오는데, 제법 그럴싸해서 실제로 투명 기술이 개발되다 보면 이런 예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론 때문인지 투명에 관한 내용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전염병 아포칼립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장기 재생 실험


 의대생 후키야 다카시는 교도소 외과원장 쿠마모토 박사로부터 죄수의 장기를 부탁해 얻어낸다. 그는 장기가 공기 중에 혼자서 살아움직일 수 있는지 실험을 할 계획인데...

 과학기술로 생명체를 살려낸다는 점에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러브크래프트의 허버트 웨스트와 유사하지만, 이 둘에 비하면 상당히 엽기적인 발상이라 금단의 영역을 넘어선 과학의 공포가 어디까지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로봇 박사의 죽음


 젊은 과학자이자 탐정인 호무라는 길거리에서 한 남녀의 밀정을 목격한다. 호기심에 뒤를 쫓던 호무라는 여자가 자택에서 무언가를 목격하고 도망치는 걸 목격한다. 그 집은 로봇연구로 유명한 타케다 박사의 집이었고, 타케타 박사는 침대 위에서 머리가 박살난 채로 죽어있었다. 경찰은 방에 있는 피범벅이 된 로봇이 박사를 죽인 것으로 짐작하는데...

 SF와 추리 모두를 만족시켜서 SF 추리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적인 탐정의 이미지는 많이 보았는데, 아예 직업이 과학자인 경우는 처음 보았다. 일단 살인사건이긴 했지만, 얼핏보면 밀실 아닌 밀실 살인사건으로 보이기도 했다. 로봇이 범인이라 가정한다면 그냥 살인사건이지만, 인공지능도 아니고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취급하는 작중 분위기로 본다면 밀실이었다. 작가가 이런 것까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얼핏보면 그냥 과학기술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보이지만, 결말에 남겨진 여운을 보면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런 계획적인 살인이 발생하지 않아도 오작동 같은 사고로 사람이 죽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걸 바로 과학의 양날성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계 전송


 약혼녀 에리코의 소식이 끊긴 나머지 그녀가 일하는 연구소로 찾아간 나. 연구소장 마카오 박사는 에리코가 어디 있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최근에 나타났다는 백색의 괴생명체를 보여주는데...

 스티븐 킹의 단편 '조운트' 가 생각나는 내용이었다. 둘 다 공간이동이 주제이고, 이 공간이동의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끔찍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다만 각각의 작품에서 나타난 공간이동 기술 묘사에 차이가 있고, 조운트는 과학기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소시민인 반면, 외계 전송은 과학기술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과학자 관련됐다는 점에서 검증되지 않은 과학기술의 남용이 얼마나 위험한지 더 크게 다가온다.


 1000년 후의 세계


 냉동수면 기술로 1000년 후의 세상에서 눈을 뜬 후루하타 박사. 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어줘야 나갈 수 있어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슬슬 불안감을 느낄 쯤, 한 여인이 문을 열어줘서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미래의 모습은 이럴 것이다라는 가정은 옛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옛날의 상상도와 현재를 비교하면 맞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틀린 것이 많은 경우도 있다. 이 1000년 후의 세계도 이와 비슷하다. 환상적으로 발전한 경이로운 세상이 되긴 했지만, 예상과는 다른 점 역시 존재한다. 현재의 환경오염이나 지구 온난화 문제보다 더 예상 밖의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사차원의 남자


 어느 날, 밤거리를 지나던 중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는 걸 느끼된 나. 그냥 우연이라 생각하며 넘기려 했으나, 같은 일이 반복되고 변함없이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옆집 관상가에게 가보기로 하는데...

 한 인물을 통해서 차원에 대한 개념을 알 수 있었다. 좀 독특한 점이라면 관상가가 사차원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분명 과학적인 요소가 나와도 운명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중 묘지


 탐정 쿠리토는 한 의뢰를 받는다. 의뢰자는 20년 전 세계일주를 떠났다 실종된 항공기와 관련해서 조사를 부탁한다. 다름이 아니라 그 항공기의 조종사가 두 사람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도쿄에 나타났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상당히 엄청난 트릭에 놀라고, 거기에 반전까지 탁월해서 두 번 놀랐다. 여기에 묘사된 우주이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게 더 놀라운 점이다. 이 엄청난 걸 계획한 범인이 상당히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될만도 했다. 거리가 엄청 멀고, 그 누군가에게 발견될 일이 없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어딜가든 그 장소가 있는 방향을 볼 수 밖에 없기에 모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주 밀항


 노년의 탐정 소로쿠는 한 여인의 의뢰를 받는다. 여인은 화성 탐험대에서 영웅적인 활약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카리 에이지의 부인으로 어떤 괴상한 남자에게 스토킹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쿠는 조카 하치바와 문제의 남자를 뒤쫓는다. 하지만 소로쿠의 돌발행동에 하치바는 당황하고 마는데...

 작은 사건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는 대사건이 되는 내용이다. 소로쿠 탐정의 수사방법에서 남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보여서 특이한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 원래 스토킹 상대를 만났을 때 했을 법한 행동들은 조카 하치바가 하려고 해서 역할이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큰 트릭 같은 것은 없었지만, 작게 시작된 사건의 전말이 예상보다 커다란 형태였기에 충격이 상당하다. 비록 누가 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원래 알려진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여러모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여기서도 공간이동 기술의 문제점이 나온다. 다만, 외계 전송 때와는 달리 전송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다소 희망적이다 할 수 있다.


 꿈 속의 살인


 토모에다는 꿈 속에서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자신의 부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이후 같은 꿈을 꾸지만 어딘가 약간씩 다른 것이 느껴져서 잠시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총으로 여자를 쏴 죽이게 된다. 문제는 그 여자가 친구의 부인이었다는 것인데...

 꿈과 현실의 경계가 혼선을 겪는 내용이라 정답이 있어도 정답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애매모호하다면 모를까, 확실한 배경과 확실한 인물, 확실한 사건이 있음에도 현실과 환상이 한끗 차이로 나뉜다는 것이 소름 돋을 정도였다.


 지구 도난


 숲 속으로 딱정벌레를 잡으러간 도키오와 미요. 그런데 갑자기 괴생명체가 나타나고 도키오는 실종된다. 마을의 과학선생인 오오스미는 도키오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는데...

 중편이며 SF 미스터리, 모험, 활극이라 해도 될 정도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상당히 설계적인 외계 침공물이라 할 수도 있는데, 보통 생각하는 침공과는 차원이 다른 방법에 상당히 독특한 외계인이라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흥미진진한 내용임에도 약간 아쉬운게 있다면 지구 쪽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해가 가지만, 외계인 측의 의견이 제대로 나온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말이 안 통하는 외계생명체라면 모를까, 이런 상당한 설계를 한 것들인데 모습과 약간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나온 게 없어서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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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종가의 색목인들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 1
표창원.손선영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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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 시리즈를 끝내고자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홈즈가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 것은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이후 셜록 홈즈의 귀환에 수록된 <빈 집의 모험>을 시작으로 시리즈를 재개했을때, 꽤 주목받던 것이 사라진 3년 동안의 행적이었다. 작중에는 동양의 특정 지명을 언급하며 방황했다고 나오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홈즈 팬들의 상상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재료였다. 과연 언급한 그곳에 간 것이 진짜 맞는지, 동양인지도 확실한지, 또 동양은 맞고 언급한 곳이 거짓이라면 동양의 어디를 갔었을지. 그 후보 중, 당시 개화기를 맞이해 혼란을 겪는 조선도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1891년 조선 제물포 항으로 죽어가던 영국인 아편 중독자가 들어온다. 아버지 이제마의 뜻에 따라 미국에서 신문물을 접한 의녀 이와선은 그 영국인을 돌보던 중, 이 영국인의 이름이 셜록 홈즈라는 걸 알게 된 대리공사 알렌의 뜻에 따라 그를 살려낸다. 그때, 한양의 강석중이 자택에서 기이하게 사망한 채로 발견되고 내부윤의 요청으로 부검을 하러 간 알렌은 이 사건을 홈즈에게 가져가는데...

 실제 역사와 셜록 홈즈의 시간대를 적절히 섞어놓아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작중 이미지와 평가는 좀 다르지만, 실제로 당시 조선에 있었던 호러스 뉴턴 알렌이 등장하고, 당대 서민의 생활상 중심으로 전개되어 조선 후기 개항시기의 모습에 셜록 홈즈가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아직 막 시작한 시리즈라 크게 시작하는 분위기는 없지만, 앞으로 진행된다면 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범인이 그 희대의 영국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라는 점은 약간 개인적인 호불호가 있었다.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잭 더 리퍼는 셜록 홈즈가 연재되던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이고, 실제로 코난 도일이 사건에 대한 자문을 한 적이 있고, 후대에도 끊임없이 셜록 홈즈와 잭 더 리퍼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 나온 만큼 유명한 소재거리다. 거기에 개연성도 나쁘지 않고, 냉혹한 살인귀의 면모도 충분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잭 더 리퍼라는 이미지에 모리아티 교수를 약간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라 독창적인 면에서 약간 아쉬웠다.

 홈즈에 대해 보자면 코난 도일의 홈즈와 차이가 있어서 이게 홈즈냐고 비판할 수도 있을 법했다. 그러나 작중 배경과 홈즈의 상태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될 법하다. 홈즈는 런던 사람이고, 심각한 아편 중독에서 치료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니. 그래도 추리가 좀 산만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마지막 정리가 잘 되서 추리 자체는 틀리거나 허점이 없는 건 다행이지만 분명 하나의 사건인데, 논점은 여러 갈래고 수사방법도 따로 놀고 정리도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서술에서 불만있는 게, 틈만 나면 앞의 상황을 암시하는 구절이 자주 나와서 좀 거슬렸다. 다른 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앞의 내용이 어떻게 된다, 이렇게 될지 몰랐다, 라는 형식은 결과를 미리 예고하는 거라 그 다음 내용을 보는데 흥미진진해진다기 보다 김빠진다. 한 두 개라면 모를까, 연속적으로 암시가 계속나오면 그것만큼 집중을 방해하는 건 없다. 영화 스포일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결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중간 사건의 결과를 알고 보는 것도 상당히 신경쓰이게 만들기 충분하다.

 에필로그까지 보면 셜록 홈즈가 3년 간 조선에 있었다는 판을 제대로 짜 놓은 게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손선영 작가와 표창원 선생님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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