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식 토라 시리즈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지음, 박진희 옮김 / 황소자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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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곳곳에서 검은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그릇된 이유나 주장으로 대규모 인명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대표적인데,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예로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있다. 그저 무고한 인명이 대량 희생당하고, 종교개혁 시기에 일어난 대참사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일은 발생하게 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마녀사냥 역시 시작된 기원과 과정이 있을 것이다. 종교나 오컬트적인 해석이 아닌 현실적인 해석으로. 
 아이슬란드 대학교에서 눈알이 도려내진 독일인 유학생 하랄트의 시체가 발견된다. 변호사 토라는 진범을 잡아달라는 유가족들의 의뢰로 대리인인 독일인 매튜와 함께 사건 조사에 나선다. 살해당한 유학생의 집에서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을 비롯한 중세 마녀사냥 관련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가 아이슬란드의 마녀사냥에 대한 역사를 뒤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관심 밖에 있는 탓인지 바이킹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던 아이슬란드 역사에 대한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유럽 본토 쪽의 중세시대 상과 다소 다른점이 있다던가, 당시의 아이슬란드에 대한 서술을 보면 유럽 본토 쪽에서는 다소 신비로운 지역으로 여겨지지 않았나 싶다.
 잔혹한 사건에 주요 소재도 범상치 않아, 댄 브라운의 로버트 랭던 시리즈처럼 커다란 스케일이 전개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런 것 없이 현실적 그 자체다. 보통 추리 소설이 잔혹하게 시작하면 그 분위기가 끝까지 가기 마련인데, 마지막 의식은 겉포장과 장식만 그렇고 전반적인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변호사 토라의 일상적인 모습과 매튜와 수사하는 분위기만 봐도 일상에서 크게 벗어난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간중간에 가끔 튀어나오는 잔혹한 장면 때문에 완전 일상적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추리적인 면으로는 큰 트릭 없이 주술 상징과 마녀사냥과의 연계점, 살해당한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는 구성이다. 이렇게만 보면 너무 잔잔하지 않나 싶지만, 중간중간에 연관된 인물들이 토라와 매튜가 안 보는 곳에서 보이는 행동과 생각들이 있어 꽤 스릴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제가 중세시대 마녀사냥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일탈적인 행동의 원인과 해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마술과 주술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보면 오컬트니, 악마숭배니 하는 미스터리 같은 부분은 장난 같아 보일 정도다. 지금과는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은 달라도 그 시대 사람들 역시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는게 힘들고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떻게 든 해소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누구는 조용히, 또 다른 누구는 약간 격하게 해소를 하는데 이런 부분만 가지고 일탈로 오해하는 순간 마녀사냥과 같은 일이 발생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는 그렇지 않지만 그저 보이는 행동이 불순하게 보인다고 일탈이라고 규정하고 차별하는 것이다. 이게 진짜 주제로 생각되는 게 작중에서도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외적인 면만 가지고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거나 취급당할까봐 걱정하는 면이 많아서 그렇다.
 특히 이런 일방적인 일탈 규정이 가족에게서 많이 일어난다는 걸 느끼게 하는 부분도 볼 수 있었다. 자녀의 생각을 들어보지 않고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들어도 믿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자녀의 일탈을 막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가르친다고 다들 주장하지만, 오히려 이런 편견이 이탈을 조장하거나 더 거친 행동을 유발하게 만들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런 자녀에 대한 편견적인 부분을 부모로서 토라가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이해하려는 모습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라 생각한다.
 외적인 면만 가지고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건 지금도 그렇다. 그저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세시대 마녀사냥처럼 실질적인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고. 설명하기 귀찮다,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고 다 나쁜 것이라 여기기 보다는 마음을 터 놓기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가까운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자신의 힘든 일이나 고민을 쉽게 털어 놓기는 힘든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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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소설가의 글쓰기 - 위대한 대문호의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리차드 코헨 지음, 최주언 옮김 / 처음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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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어떻게 쓰나요? 어떻게 하면 잘 쓰나요?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자주하는 질문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좀 대답하기 힘들다. 무작정 쓰면 된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 기승전결이 기본이다, 많이 읽어라 등등. 글쓰는 방법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여러가지다. 그러나 외우면 무조건 답이 나오는 수학공식과 달리 글은 정해진 답이라고는 없다. 누구에게는 이렇게 쓰라고 배웠는데, 누구는 저렇게 쓰고. 그걸 가지고 틀렸다고 하면, 자신 역시 틀렸다 지적받고. 이렇게 되면 누구한데 글 쓰는 걸 배워도 결국에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또 어떻게 써야할지 고뇌에 빠지고 만다.

 글쓰기 책 역시 그렇다.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지만 결론은 글을 쓰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면전에 대놓고 내 기준에서 봤을 때 너의 글은 정말 형편없다고 비하하지 않는다. 이 책 역시 강요와 비하보다는 일종의 가이드가 제시된다.

 자신이 글을 쓰는 환경이라든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 또는 글을 쓰던 중 있었던 일화를 설명하던 경우와 비교하면, 이 책은 글쓰기의 다양한 사례와 이것에 대한 각종 의견들을 모아 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지겹도록 많이 들은 기승전결이라든지, 문법, 맞춤법, 간혹 쓸 때 없어 보이는 규칙 같은 건 이 책에 없다. 글을 쓰다가 매번 고민하고, 때로는 이걸 이렇게 해도 되는지, 이런 건 어떻게 써야하는지 같이 글쓴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쓰고 대처했는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각 파트를 살펴보면 막상 글을 쓸 때 한 번 쯤은 고민해봤을 요소 대부분이 있다. 특히 표절과 성적인 묘사에 대한 부분은 어디에서도 잘 설명해주지 않고 듣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을 정하지 못해 애매모하게 되고마는 부분이라 여러모로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퇴고에 대한 부분이 두 파트로 나눠져 있던 탓인지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보며 느낄 수 있다.

 글쓰기 관련 일화나 좋은 예로 많은 작가들이 언급된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언급되기에 소설이든 산문이든, 또 순문학이든 장르소설이든 그 어디에도 적용된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독 자주 언급되는 작가들이 있다. 톨스토이, 헨리 제임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에밀리 브론테 등이다(혹시나 놓친 작가가 있을지도...). 특히 톨스토이의 경우는 저자가 미리 예고하고 들어갈 정도로 많은 언급이 있다. 톨스토이의 글쓰기 스타일이나 저자의 개인적 분석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글쓰기와 관련된 한 일화가 예상치 못한 재미를 준다. 이보다는 적지만 나름 인상 깊게 언급되는 작가로는 추리 분야에서 유명한 렉스 스타우트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들 수 있겠다. 현대 작가로는 스티븐 킹이 많은 부분에서 언급된다. 위에서 톨스토이 일화가 재미를 주었던 것처럼 다른 작가들의 사례를 보다보면 뜻밖의 부분에서 웃게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엄청 어려운 것인데 어느 작가는 너무 단순하게 해결을 보거나. 또는 내가 생각하기에 단순하게 쓸 법한 걸, 한 작가는 며칠을 고민하며 썼다거나.

 다양한 작가들의 사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글은 어려운 것과 단순한 것 사이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라고. 누구는 첫 문장을 쓰는데 며칠을 고민하는데, 누구는 아무렇게나 시작하고. 결말을 내는 것도 누구는 여러번 고쳐쓰고도 고민하는데, 누구는 아무데서 적당히 끊고 결말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대비되는 사례를 보면 첫 문장을 쓰는 것이든, 소설 설정이든, 결말을 내는 것이든 딱히 정답이라 말할 것이 없다.

 한편으로는 온갖 평가와 제약을 신경써 고민하며 어렵게 쓰고, 한편으로는 제약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내키는대로 쉽게 쓰는 것.

 글이 나오는 건 그 중간 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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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불의 연회 : 연회의 시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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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변화는 다소 두려운 존재다. 그저 시대의 흐름이라는 당연한 순리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가령, 분명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분명 이런 사람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같은 일 말이다.
 이런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면 대부분 일상이 무너지고 만다. 그 동안 겪지못한 일이라 대처를 할 수가 없고, 다른 세계의 일로 생각하며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변화를 거스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수 없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때가 가장 안정되고, 그 무엇하나 부족한 것없이 다 잘 되어 있던 시절이라 그렇겠다. 하지만 과연 그런다고 그게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역행해 다시 돌아간 일상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예전과 같을지라도 결국에는 예전과 같은 일상을 보장받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즉,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변화는 시작되었고 일상은 그저 변화를 외면하는 허상으로서 껍데기만 남아 그저 타인의 지시만 따르는 내가 없는 현재가 된다. 현재는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는, 그저 나라는 존재가 커다란 세계에 혼자 방치되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그 동안 세계관을 의심하게 했던 공허의 실체일지도.
 연회의 준비편에서 언급한 사람의 근간을 흔들어 세계관을 의심스럽게 하는 것. 그것은 일상에 침투해 변화를 구제한다며 도리어 현실과 허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 그것의 정체가 바로 누리보토케 일지도 모른다.
 살인범으로 체포된 세키구치를 조사하는 시모다 경찰서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조잔보 무리를 쫓다 실종된 기바와 그 뒤를 쫓던 아오키를 위협하는 무리...가센코와 아츠코의 실종을 쫓다가 실종된 에노키즈 그리고 남겨진 마쓰다...주변인물들이 점차 거대한 존재에 집어 삼켜지는 듯 하지만 꿈쩍하지 않는 교고쿠도...한편,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온갖 수상한 무리들은 연회의 준비가 끝났음을 고하고 이즈의 니라야마로 몰려드는데...
 제목 그대로 연회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것처럼 순식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고조됐다가 한 순간에 가라앉는다. 준비편에서 나타난 다양한 불길함과 집단, 그리고 사건 관계자들이 한 곳에 모여 모든 것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은 이전 시리즈에서 보았던 다른 사건들의 정리보다 더 장엄하게 보일 정도였다.
 사건의 중심인 도불(누리보토케)에 대해 다루는데 이게 어떤 것일까 하며 연구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동안 이 요괴는 어떤 것인지 설명하던 것과 비교하면 도불은 정확한 실체가 없어서 이것과 연관성 있어 보이는 것들을 비교하며 정체를 탐구한다. 교고쿠도도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여기서는 요괴 연구가인 다타라 선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다타라는 대체로 요괴 기원에 관한 부분을 다루다보니, 대체로 중국 전설과 현지 조사가 자주 언급된다. 거기서 깊게 들어가 요괴의 기원과 발생, 비슷비슷한 단어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다른지를 보며 기이한 것들이 어떻게 생기는 가를 알 수 있었다. 이 분도 나름 인상이 괜찮아 보여서 다타라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 <금석속백귀 구름>에서 다른지방에서 조사를 하다가 사건에 휘말린 일이 궁금해졌다.
 본격적인 사건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이 혼선에 혼선을 거듭해서 주연 인물들 말 그대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될 것이다. 그저 알 수 없는 불길함 속에서 내가 알던 것들이 거짓처럼 보이고 일상이 일상 같지 않은 상실감만 남는다. 이전 시리즈에서도 사건이 발생하면 대체로 불길하거나 현실 같지 않은 인상을 주긴 했지만, 사건을 보는 시점이 세키구치처럼 현실을 현실로 보지 못하는 불안한 시선이거나 사건의 기괴함으로 인해 상식적인 사람까지 휘말려 뭐가 뭔지 갈피를 못 잡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도불은 어떤가. 애초에 불안한 시점을 가진 인물은 격리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등장하지 않고 누군가 죽거나 하는 사건다운 일이 없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무언가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알고 있던 진실이 왜곡된다. 그냥 낯설다, 일상에 갑자기 끼어든 비일상이 아닌, 내가 아는 세계가 붕괴되어 일상 자체가 비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건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내가 사건이 되는 것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관찰자와 당사자의 차이일지도. 실제로도 주연 인물이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했으니까.
 관찰자라는 입장의 섬뜩함 또한 있었다.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이 무서운 것이다. 옛날에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있었지 않은가. 찍어줄 사람이 없었는데도 찍혀 있는 단체사진 같은 것. 당사자들끼리의 대화나 일상, 또는 어떤 인물의 독백. 이런 부분 속에서 갑자기 너는 누구냐. 하는 인물은 마치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자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설상에서 모든 인물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듣는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지켜본다는 부분만 보면 독자, 또는 사건 당사자들을 그저 바라만 보며 내 일은 아니니 상관하지 않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중 곳곳을 들쑤시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현재를 살아간다는 부분을 보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전쟁범죄 부정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거를 잊고 살자는 이들의 주장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걸 부정하는 이들은 외면 받다가 결국에는 자신을 의심하게 되고 만다. 왜냐,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것에 예스를 하고 있는데 자신만 노를 외치는 상태니까. 이건 다수결이 아니라 집단으로 개인의 생각을 무너뜨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수의 행복을 구실로 들고 있지만, 그게 말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행복이 보장되어도 그게 근간이 없고, 누군가에게는 모든 걸 빼앗겨 부정당하는 고통만 주는 것에 불과하다. 원래 뿌리를 제거하고 나무가 자라날 수 있다는 건 궤변이나 다름없다. 근간이 없는 사람은 결국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람, 그저 지금의 현재에 존재와 이름만 있는 정체불명의 요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묵직한 분위기가 계속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연회가 시작되면 끝도 있고, 그 끝은 깔끔하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다. 먼저 유쾌한 부분을 보자면, 역시나 에노키즈의 대활약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불길함이 감도는 곳이라도 에노키즈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에 기바도 같은 친구 아니랄까 제대로 한 건을 해낸다. 에노키즈와 기바의 대면이 가장 웃긴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허탈한 부분은 가족에 관한 내용이다. 현대에 들어서 가족문제가 생기는데 왜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나, 하는 문제다. 그냥 참는 건지, 아니면 유대감이라는 게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가족 의례나 전통 같은 것도 그냥 의미없는 목적과 수단이 되고, 서로가 서로만 생각하는 순간 가족은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 애증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순간 가족은 그냥 남이 되고 마는 건가. 솔직히 이런 복잡한 걸 따지지 않는 다면 가족은 그냥 가족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같이 공유하고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현대의 가족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구절이 책 속에 있었다. 일본어로 죽는다를 경사스럽다고 바꿔 쓸 수도 있다고. 그렇다는 건 이번 도불의 연회의 연회, 즉 경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걸 나타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거나. 실제로 어떤 인물에게는 엄청난 연회의 장이었지만, 어떤 인물에게는 모든 게 죽어버리고 만 황천의 끝을 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여명이 밝아오는 끝이 언제나 좋은 결과라는 생각을 의심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끝이 다가오는 과정이 그 동안 진짜냐 거짓이냐에 따라 고생 끝에 결실을 맺은 경사냐 허상을 뒤쫓다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마는 죽음이냐, 가 결정되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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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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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는 시간과 공간을 따지지 않는다.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에, 날씨가 덥든 춥든, 평범한 일상이든 특별한 날이든. 물론, 연말 크리스마스도 예외없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의 크리스마스> 같은 예도 있고. 소설 속 인물이라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독자 입장에서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에만 받는 선물이 있듯, 크리스마스에만 볼 수 있는 미스터리라면. 이런 기획을 실제로 한 곳이 바로 뉴욕에 있는 역사 깊은 미스터리 서점이라고 한다. 이력이라든지, 보유한 미스터리 서적 양, 희귀도서까지 구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미스터리의 성지나 다름없다. 미스터리의 성지인 만큼 이 곳과 서점 주인인인 오토 펜즐러의 크리스마스에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추리작가들 손에서 만들어진 소설 속에서 말이다.

 시즌한정 특별 기획이라 그런지 각 단편들마다 나름의 클리셰가 있어서 그것대로 참 재미있었다. 작가가 탐정 시리즈를 썼었다면 그 탐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고 빠지지 않는 공통요소라면 미스터리 서점이 주 배경이고, 주인이자 기획자인 오토 펜즐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작품에서는 이랬던 오토 펜즐러가 다른 단편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와 작가들이 이 분을 굳이 이렇게 등장 시켜서 이런 인물로 했어야 했나하고 웃게 되고만다. 또한 이 분이 고양이가 탐정으로 나오는 걸 정말 싫어한다는 부분이 종종 나오는데, 아마도 아무리 괴짜나 천재라도 그 주체가 비현실적인 동물이 아닌 현실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주리라_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크리스마스 날, 로마시대 청동주화를 훔친 한 남자가 우연히 불이 켜친 미스터리 서점으로 들어간다. 서점주인 오토 펜즐러와 지인들은 그 남자가 카드게임에 참석하러 온 대리인으로 아는데...

 크리스마스에 걸맞는 훈훈한 미스터리다. 긴박감이 이어지다 순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전환되는 게 참 묘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비슷한 느낌 같기도 했다. 구두쇠 스크루지를 변화시킨게 크리스마스의 유령들이었다면, 이 남자를 변화시킨건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지인들이었던 것이다.


 계획과 변주_조지 벡스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희귀도서 거래상들이 잇다라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살해된 도서 거래상들이 대실 해밋의 미발표 원고와 관련 있다는 걸 알고, 친구인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는데...

 유명 작가의 미발표원고는 미스터리 소설에서 참 흥미로운 소재거리 중 하나다. 미국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실 해밋에 희귀 미스터리 도서를 취급하는 미스터리 서점까지 해 작은 분량 내에서 은근히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런 소재가 다소 진지하게 파고들고 때로는 음모론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는 작중 오토 펜즐러에게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정도로 보인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는데, 이건 어른이 되어도 똑같은 모양이다.


 녹슨 책갈피 도난사건_에드워드 D. 호크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친구에게 의뢰를 받는다. 여동생의 죽은 남편이 그 동안 수집한 미스터리 책을 미스터리 서점에 팔았는데, 그 안에 팔면 안 됐을 책갈피가 있어서 훔쳐다 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닉은 미스터리 서점을 드나들며 계획을 세우는데...

 물건을 훔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닉 벨벳은 참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에서 범인 입장이나 다름없는데 별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을 훔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훔치는 과정이 참 대단한데 이 단편에서 보여준 실력이면 도대체 다른 작품에서 물건을 훔칠 때는 어느 정도의 기술을 보여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정말 반전인 것은 저 별 의미 없는 물건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모작 살인사건_론 굴라트


 추리소설가 루페는 청소년 추리소설 시리즈의 부진과 미스터리 서점 주인인 오토 펜즐러가 은근히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다. 막간의 돈벌이를 위해 글쓰기 수업을 하던 도중, 한 부인이 직접 쓴 추리소설이라 가져온걸 보게 된다. 루페는 이 소설을 보고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마는데...

 작가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소설을 보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같은 심도 있는 부분이 많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소재나 주재로 안 되는 게 없고, 글쓰는데 크게 제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없는 나에게 루페는 좀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인물이었다.

 크리스마스다운 천벌이 참으로 아름답다고나 할까? 서양에서는 산타클로스가 나쁜아이에게 석탄을 준다고 하는데, 루페에게는 참으로 걸맞는 선물을 줬다는 생각이다. 한순간에는 명예롭겠지만, 결국에는 석탄처럼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게 되는.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_로렌스 블록


 탐정 헤이그의 조수, 칩 해리스는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로부터 의뢰를 받는다. 크리스마스 파티 도중에 자신이 수집한 코넬 울리치의 미발표 원고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칩은 헤이그에게 사건이 일어난 과정과 유력 용의자를 알려주고, 크리스마스 당일 용의자들을 다시 미스터리 서점으로 불러들이는데...

 특정 작가의 미발표 원고라는 점이 앞서 본 조지 벡스트의 계획과 변주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건 보다 더 미스터리 마니아를 위한, 도서 수집가를 위한 미스터리 자체였다. 대부분의 인물이 도서 수집이나, 특정 작가 팬, 초판본 수집, 책에 흠집나는 걸 싫어하는 점 같은 부분이 있어서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참 공감되는 게 많았다. 작가의 집필원고 수집은 약간 생소하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약간 이해하지 못할 마니아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나타내기는 했지만, 작중에서 내내 언급되듯이 장편으로 썼다면 매끄러웠을 부분 상당수가 생략되고 전개가 급하게 진행되는 감이있어서 읽기 불편한 감이 약간은 있다. 작가 본인이 한정된 내용에 긴 내용을 우겨넣으려 한 걸 숨기지 않았고, 이 기획이 크리스마스 특별이었던 걸 생각하면 나름 이해하고 넘길 수는 있었다.


요정들의 선물_예레미야 힐리


 보스턴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뉴욕의 미스터리 서점에 희귀 초판본 책을 배달하러 간다. 사실 서점 주인 오토 펜즐러는 책배달을 구실로 존에게 사건 의뢰를 하려던 것이다. 오토 펜즐러가 의뢰하려던 것은 저명한 추리소설가인 친구 셋의 뒷조사다. 그 친구 셋이 다녀간 뒤로, 자신의 개인 서재에 있던 유명 추리소설가 애장품 세 개가 없어지고 그 물건 가치에 맞는 액수의 돈이 담긴 봉투가 남겨져 있었던 것인데...

 그 동안 서점 주인으로서의 모습이 많이 나오던 오토 펜즐러의 출판 편집자다운 면모가 많이 보였다. 나름 절도 사건이나 다름없는데, 분위기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편이라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상당히 궁금하게 만든다.

 제목에서 어둡거나 심각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듯이, <아낌없이 주리라>처럼 상당히 밝은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다. 미스터리 마니아에게 할 수 있을 가장 특별한 선물이라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중 오토 펜즐러처럼 당사자의 기분을 크게 나쁘지 않게 해야 하겠지만.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_에드 멕베인


 뉴욕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문 닫을 시간에 가게 안에서 한 아이를 발견한다. 가게에 들어오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의아해 하지만, 부모가 근처에 같이 있다고 해서 곧 안심한다. 아이가 어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던 중, 아이는 산타클로스가 죽는 걸 봤다고 말하는데...

 산타클로스가 있냐, 없냐의 문제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기묘한 것을 넘어 뭔가 동심파괴 같다는 분위기도 준다. 일상적인 서점 분위기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건이 언급되고, 무엇보다 아이의 관점에서 말하기 때문에 얼핏들으면 이상해 보여도 진실을 알게 되면 좀 충격적이기도 하다.

 언젠가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알게되는 시기가 온다. 그걸 언젠가 산타클로스는 죽는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동심은 언젠가 죽는 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걸 일찍 겪은 경우는 어떨지...그것도 산타클로스가 눈 앞에서 진짜로 죽는 걸 봤다면 더욱...

 여담으로 일상적인 서점 분위기 속에서 작가가 어디서 들었을지 모를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의견이 많이 보였다. 경찰이 경찰소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던지...


동방박사의 간계_S. J. 로잔


 키티 맹크스는 오토 펜즐러에게 의뢰를 받는다. 월리 메이킷이 쓴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을 원하는데, 마침 미국을 방문한 남미 출신의 펠릭스 가토가 완벽한 상태의 표지만 같고 있다는 것이다. 키티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펠릭스 가토의 집에 침입해 표지를 훔치지만, 자신이 오토를 위해 준비한 <바깥 화장실 가는 길 초판본을 누군가 훔쳐가고 마는데...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이 벌이는 일이라 크리스마스 특별 활극 정도로 생각됐었는데, 의외의 반전이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작중에 나오는 책 제목이라든지, 작가 이름을 보면 애초에 유쾌한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목적으로 썼다는 걸 알 수 있긴 했지만.

 여기서 나오는 오토 펜즐러는 그 동안 나오던 그냥 의뢰인이라기 보다는 작품 전체에 영향을 주는 절대자 같았다. 서점 주인이자, 편집장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장 잘 나타냈다는 생각이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_앤 페리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남자가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자신의 삼촌에게 선물할 특별한 책을 점원에게 말하지만, 정작 이 남자의 목적은 이것이 아니었다. 그의 진짜 목적은 서점 주인 오토 펜즐러를 만나는 것인데...

 비블리아 고서당 같은 소설이 약간 스릴러가 된다면 이런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의 손님과 오토 펜즐러 사이에 오가는 대화 속에서 은근히 불안이 고조되고 범죄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가서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이 남자의 입장을 들어보면서 자신의 책이 출판되지 못해 자살한 <바보들의 결탁> 작가 존 케네디 툴이 생각났다. 존 케네디 툴이 좀 더 적극적이고 극단적으로 자신의 책을 어필했으면 딱 이 주인공이었을지 않을까 싶다. 뭐, 결론적으로는 이 주인공이나 존 케네디 툴은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었으니.


고양이요정 스피릿_마이클 말론


 크리스마스 시즌,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동료 반장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뉴욕의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그러다 우연히 친분있던 뉴욕 형사 로리 월드를 만나 미스터리 서점의 파티에 같이 가게 된다. 맨검은 파티에서 한 작가가 같이 참석한 이혼한 전부인을 잊지 못하고 지켜보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고양이가 사건을 이끌어간다는 점이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 고양이 홈즈 같이 일본에서 많이 나온 고양이 탐정 부류로 보였다. 다만, 고양이가 직접적으로 추리를 하는 탐정역 까지는 아니고 현실적인 고양이가 수사관을 사건으로 이끄는 정도로 보였다, 어쩌면 고양이 탐정의 현실적인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미스터리는 탐정이 그 어떤 괴짜나 천재라도 동물이 아닌 현실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추구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특히 이 특별 단편을 기획한 기획자라면 더더욱.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_토머스 H. 쿡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베로니카 크로스는 문 닫을 시간을 앞두고 아는 손님을 만난다. 해리 벤섬이라는 남자는 토요일마다 와서 특정 작가의 책을 사가는데, 베로니카는 그 책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데...

 이런 책을 왜 읽느냐와 힘든 삶 속에서 각자가 어떻게 버티는 가를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끔 이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학도 아닌 책을 왜 읽느냐, 아무런 의미나 교훈 없는 걸 뭐하러 읽느냐. 굳이 좋은 문장이 있는 의미 있는 글을 읽으라 종용하지만, 과연 그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의미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허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걸 가지고 개인적인 가치나 의미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침해당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듯이 의미를 느끼는 것도 다를지도 모른다. 내가 볼 때는 아무리 의미 없어 보여도 그게 상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의미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 있다는 것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쓸 때 없다는 생각이다. 굳이 가치를 매겨서 의미 없다고 여기는 걸 배제한다면 그 누가 삶을 버틸 수 있겠는가.


후회하게 될 거에요_리사 미쉘 앳킨슨


 여느 크리스마스와 달리 형편이 좀 어려운 미스터리 서점. 서점 주인은 한 고객이 찾은 대실 해밋의 <데인 가의 저주>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것과 가게사정 때문에 오늘 알바하고 있는 소녀를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못하게 되서 고심이 크다. 그러던 중, <데인 가의 저주> 초판을 드디어 발견하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구매자에게 연락을 하는데...

 그 동안 나왔던 미스터리 서점의 모습과 달리 우리나라 동네서점 상황을 보는 듯한 분위기가 강했다. 아무래도 작가가 오토 펜즐러의 부인이다 보니, 이 단편을 쓸 당시의(아마 2004년) 미스터리 서점 상황을 나타냈다는 생각이다. 이런 걸보면 대형서점(아마 아마존일지도...) 때문에 동네 서점이 피해를 보는 건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그 동안 활기찬 분위기의 미스터리 서점은 과거의 모습이었고 현재는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상당히 쓸쓸한 느낌이었다. 훈훈하고 꽉찬 분위기였던 미스터리 서점이 초라하고 세월의 풍파에 흔들리는 모양새라 더 그랬다. 딱히 악의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서 과연 서점 주인, 오토 펜즐러가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랬으면 어떻게 됐을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혹시 모르는 일은 아닐까. 이 단편이 나올 시기에 오토 펜즐러가 아끼던 지인을 잃었거나 놓쳤을지는.


긴 겨울의 한잠_루퍼트 홈즈


 전직 기자 출신이던 나는 술독에 빠져 지내다 지인이었던 오토 펜즐러의 권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오토 펜즐러는 서점 앞에서 연주해줄 구세군을 구하지 못해 골머리를 썩히며 파티를 연다. 파티가 한창 진행되던 중, 밖의 구세군 연주자 관계자인 산타가 화장실을 쓴다고 잠시 서점 안에 들어오고, 잠시 후 그 산타는 죽은 채로 발견되는데...

 오토 펜즐러가 탐정역할을 하는 내용이라 나름 흥미진진했다. 미스터리 마니아가 진짜 탐정으로서 활약하는 걸 생각해본 이들이에게 꿈만 같은 일일지도 모르는데, 기획자인 오토 펜즐러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상당히 궁금해진다. 적절한 트릭에 적절한 범행동기까지 해서 꽤 괜찮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였다.

 또한 오토 펜즐러의 출판 편집자 면모를 보여주는 내용이라 작중에서 다소 웃기는 투고 작품들이 많이 언급된다. 주로 셜록 홈즈 아류작인데 과연 오토 펜즐러는 어떤 어이없고 기가막힌 것까지 받아봤을지 모르겠다.


콜드 리딩_찰스 아다이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뉴욕의 미스터리 서점. 손님들이 어떤 책을 고를지 추리해보는 로저는 우연히 1950년대 미스터리 작가와 이름이 똑같은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작가의 미발표 원고를 가지고 있다며 로저를 집으로 초대한다. 로저는 다른 직원과 교대하고 여자의 집으로 가지만, 여자의 집은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으로 난장판이었는데...

 오래된 책이나 원고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이 단편집에서 수 없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광기어린 수집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이 단편이 아닐까 싶다.

 아마추어 탐정 비스무리한 주인공이 우연히 현실의 사건에 말려들고 약간의 우연이 발생하는 등, 어디서 본 듯한 분위기가 많은 편이지만 작중에서 이랬으니 이해하고 넘어갈만하다.


 '그게 다 미스터리 서점이어서 그런 거야.' -319p


 (본격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의 사건 핫플레이스. 직원이든, 손님이든, 서점 주인이든, 심심치 않게 사건 속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매년 크리스마스의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기대해주세요. 누가 알겠습니까, 당신이 피해자가 될 지도...)


크리스천 킬러_앤드류 클레이번


 때는 12월 중순, 마피아 조직의 피카로네는 조직의 스티븐 빈이라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전문 킬러 사케시언에게 부탁한다. 스티븐 빈은 자택에서 사케시언이 오는 걸 발견하고 여동생이 일하는 극장으로 숨는다. 마침 천사 역할을 연습하던 스티븐의 여동생은 사케시언이 자신을 진짜 천사로 본다는 걸 알고, 그에게 킬러를 그만두라고 하는데...

 마피아가 등장하는 갱스터물을 많이 본 이들에게는 약간은 이해하기 힘든 킬러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에게도 아무리 킬러라지만 이럴 수가 있는지 상당히 의문이 들었으니까. 나쁜 사람이 개과천선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사케시언의 경우는 뭔가 더 특별한 것 같았다.

 종교가 영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돈 가지고 싸우고, 때로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 현실에 진정한 종교과 진정한 믿음이라면 이런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칠십 네 번째 이야기_조나선 샌틀로퍼


 크리스마스 시즌에 나는 나에게 주는 선물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게 된다.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으로 서점 주인이 말하기를 고전이라고 했다. 그 책을 읽은 나는 내가 예전에 벌인일이 자꾸만 떠올라 계속 생각하게 되고, 결국에는 내 이야기를 쓰게 되고 마는데...

 작중에 주인공이 언급하는 책이 무엇인지 약간의 줄거리를 보면서 유추해보면 아마도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인물이 나오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언급되지 않지만 몇몇 단어와 묘사만 보면 대부분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 단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사건을 저지르게 됐다는 범죄자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대부분 소설이 문제라고 하는데, 작중에 주인공을 보면 상식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걸 실행하고 마는 범죄자들이 더 문제다. 책을 읽고 사람들은 여러 생각을 하고, 그 중에는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되는 생각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생각은 어떻게 하든 자유지만, 그걸 진짜로 하냐 못하냐는 그 사람의 됨됨이나 정신상태에 달린 것이다. 책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건 잘못된 정보의 전달이나 읽을 가치가 없는 글로 채워져 있을 때이지, 나쁜 발상을 떠오르게 하는 건 전적으로 그걸 생각하는 사람의 잘못으로 본다.

 이런 경우를 보고서도 특정 소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람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누군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읽고 무슨 생각이 들어서 사건을 벌인다면 그게 <셜록 홈즈>의 문제인 건가? 또, 그걸 쓴 아서 코난 도일이 문제인 건가? 만약 그렇다면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비웃고도 남을 것이다.


이름이 뭐길래_메리 히긴스 클라크


 전직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하게 된다. 그 날은 유명 추리작가이자 수사관이기도 한 알비라 미언의 사인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분위기가 들뜬 상황이다. 사인회가 진행되던 중, 한 독자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있는지 묻고, 미언은 9년 전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난 미해결 사건에 대해 말하는데...

 작가 지망생의 애환과 편집자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게 아니라는 게 보였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누군가 자기가 쓴 글을 보고 좋은 평가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든다. 하지만 누구는 재미있다고 하고 누구는 졸작이라고 해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없다. 문제는 이런 점이 편집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 작가가 쓴 신간이고 편집자들 눈에 걸작이라 해도, 또 그 어떤 작가 지망생이 쓴 원고가 편집자의 눈에 정말 재미없는 졸작이라고 한들 결국에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어쨌든 책이 나와서 사서 읽는 건 독자들이니까. 하지만 아직도 수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글이 퇴짜를 맞고, 그 중에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출판에도 운이 따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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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중간의 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라 하고 싶다. 한 번 배우면 언어를 바꾸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아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말의 쉬운점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자유로움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알아서 절제를 해야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쉽게 사용하는 만큼 단점도 많이 있는 것이다.

 리사코는 우연히 형사사건의 보충 재판원으로 선정된다. 사건은 주부 미즈호가 자신의 아기를 죽인 사건으로 주요 재점은 고의성에 두고 있다. 공판이 진행될 수록 미즈호를 보며 리사코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는데...

 말을 어떻게 하느냐를 많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신경써서 말을 한다 생각하지만, 정작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해는 풀면 그만, 다르게 받아들이면 사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면 정말 끝일까? 과연 그 순간만 그랬다고 할 수 있을까?

 법정 공판에서도 그렇고, 리사코의 일상에서도 그렇고 작중에 말은 엄청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 뭔가 정확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보다는, 애매모호하고 때로는 서로 간의 주장이 달라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기도 한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서로 주고 받는 말은 있어도 나누는 건 하나도 없다는 느낌. 그렇다보니 어느 순간 말이 무의식적인 공격이나 무시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사코의 시점으로 본 하루는 아이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나타나 있었다. 부모님이 나의 어린시절 이랬다 저랬다 들은 얘기는 많았지만, 리사코를 보며 저런 상황과 비슷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 같았다. 감당해야 할 것은 많은데 자신이 힘든 건 알아 주는 사람은 없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돌발행동이 나올 때는 부모의 자질도 의심해보고.

 공판에서 나타나는 미즈호의 경우, 서로 간의 주장이 다른 상황에 일방적으로 자신 외의 모든 걸 나쁘게 보는 경향 때문에 이기적인 인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결론적으로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비난하니 전부 나쁘게 되는 것이다. 미즈호가 자신의 아이를 죽인 것에 고의성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미즈호는 상당히 궁지에 몰린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다.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다 보니, 여러모로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해야 되는가, 안 해도 되는가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걸 건성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나 자신이 이해하는 척하는 것이 아닌지.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도 중요하게 봤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공감을 해주고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힘든 일은 모두가 다 힘든 것이라는 건 다수의 경우를 이용해 개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세상을 볼 때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과 말을 하며 공감하기 위해서는 숲보다는 나무를 세세히 보는 게 더 좋은 방법이다. 숲에서는 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이나 생김새 같은 차이점을 알아 볼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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