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불의 연회 : 연회의 시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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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변화는 다소 두려운 존재다. 그저 시대의 흐름이라는 당연한 순리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가령, 분명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분명 이런 사람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같은 일 말이다.
 이런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면 대부분 일상이 무너지고 만다. 그 동안 겪지못한 일이라 대처를 할 수가 없고, 다른 세계의 일로 생각하며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변화를 거스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수 없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때가 가장 안정되고, 그 무엇하나 부족한 것없이 다 잘 되어 있던 시절이라 그렇겠다. 하지만 과연 그런다고 그게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역행해 다시 돌아간 일상은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예전과 같을지라도 결국에는 예전과 같은 일상을 보장받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즉,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변화는 시작되었고 일상은 그저 변화를 외면하는 허상으로서 껍데기만 남아 그저 타인의 지시만 따르는 내가 없는 현재가 된다. 현재는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는, 그저 나라는 존재가 커다란 세계에 혼자 방치되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그 동안 세계관을 의심하게 했던 공허의 실체일지도.
 연회의 준비편에서 언급한 사람의 근간을 흔들어 세계관을 의심스럽게 하는 것. 그것은 일상에 침투해 변화를 구제한다며 도리어 현실과 허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 그것의 정체가 바로 누리보토케 일지도 모른다.
 살인범으로 체포된 세키구치를 조사하는 시모다 경찰서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조잔보 무리를 쫓다 실종된 기바와 그 뒤를 쫓던 아오키를 위협하는 무리...가센코와 아츠코의 실종을 쫓다가 실종된 에노키즈 그리고 남겨진 마쓰다...주변인물들이 점차 거대한 존재에 집어 삼켜지는 듯 하지만 꿈쩍하지 않는 교고쿠도...한편,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온갖 수상한 무리들은 연회의 준비가 끝났음을 고하고 이즈의 니라야마로 몰려드는데...
 제목 그대로 연회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것처럼 순식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고조됐다가 한 순간에 가라앉는다. 준비편에서 나타난 다양한 불길함과 집단, 그리고 사건 관계자들이 한 곳에 모여 모든 것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은 이전 시리즈에서 보았던 다른 사건들의 정리보다 더 장엄하게 보일 정도였다.
 사건의 중심인 도불(누리보토케)에 대해 다루는데 이게 어떤 것일까 하며 연구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동안 이 요괴는 어떤 것인지 설명하던 것과 비교하면 도불은 정확한 실체가 없어서 이것과 연관성 있어 보이는 것들을 비교하며 정체를 탐구한다. 교고쿠도도 모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여기서는 요괴 연구가인 다타라 선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다타라는 대체로 요괴 기원에 관한 부분을 다루다보니, 대체로 중국 전설과 현지 조사가 자주 언급된다. 거기서 깊게 들어가 요괴의 기원과 발생, 비슷비슷한 단어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다른지를 보며 기이한 것들이 어떻게 생기는 가를 알 수 있었다. 이 분도 나름 인상이 괜찮아 보여서 다타라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 <금석속백귀 구름>에서 다른지방에서 조사를 하다가 사건에 휘말린 일이 궁금해졌다.
 본격적인 사건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이 혼선에 혼선을 거듭해서 주연 인물들 말 그대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될 것이다. 그저 알 수 없는 불길함 속에서 내가 알던 것들이 거짓처럼 보이고 일상이 일상 같지 않은 상실감만 남는다. 이전 시리즈에서도 사건이 발생하면 대체로 불길하거나 현실 같지 않은 인상을 주긴 했지만, 사건을 보는 시점이 세키구치처럼 현실을 현실로 보지 못하는 불안한 시선이거나 사건의 기괴함으로 인해 상식적인 사람까지 휘말려 뭐가 뭔지 갈피를 못 잡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도불은 어떤가. 애초에 불안한 시점을 가진 인물은 격리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등장하지 않고 누군가 죽거나 하는 사건다운 일이 없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무언가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알고 있던 진실이 왜곡된다. 그냥 낯설다, 일상에 갑자기 끼어든 비일상이 아닌, 내가 아는 세계가 붕괴되어 일상 자체가 비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건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내가 사건이 되는 것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관찰자와 당사자의 차이일지도. 실제로도 주연 인물이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했으니까.
 관찰자라는 입장의 섬뜩함 또한 있었다.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이 무서운 것이다. 옛날에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있었지 않은가. 찍어줄 사람이 없었는데도 찍혀 있는 단체사진 같은 것. 당사자들끼리의 대화나 일상, 또는 어떤 인물의 독백. 이런 부분 속에서 갑자기 너는 누구냐. 하는 인물은 마치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자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설상에서 모든 인물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듣는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지켜본다는 부분만 보면 독자, 또는 사건 당사자들을 그저 바라만 보며 내 일은 아니니 상관하지 않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작중 곳곳을 들쑤시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현재를 살아간다는 부분을 보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전쟁범죄 부정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거를 잊고 살자는 이들의 주장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걸 부정하는 이들은 외면 받다가 결국에는 자신을 의심하게 되고 만다. 왜냐,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아무리 비상식적인 것에 예스를 하고 있는데 자신만 노를 외치는 상태니까. 이건 다수결이 아니라 집단으로 개인의 생각을 무너뜨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수의 행복을 구실로 들고 있지만, 그게 말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행복이 보장되어도 그게 근간이 없고, 누군가에게는 모든 걸 빼앗겨 부정당하는 고통만 주는 것에 불과하다. 원래 뿌리를 제거하고 나무가 자라날 수 있다는 건 궤변이나 다름없다. 근간이 없는 사람은 결국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람, 그저 지금의 현재에 존재와 이름만 있는 정체불명의 요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묵직한 분위기가 계속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연회가 시작되면 끝도 있고, 그 끝은 깔끔하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다. 먼저 유쾌한 부분을 보자면, 역시나 에노키즈의 대활약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불길함이 감도는 곳이라도 에노키즈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에 기바도 같은 친구 아니랄까 제대로 한 건을 해낸다. 에노키즈와 기바의 대면이 가장 웃긴 장면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허탈한 부분은 가족에 관한 내용이다. 현대에 들어서 가족문제가 생기는데 왜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나, 하는 문제다. 그냥 참는 건지, 아니면 유대감이라는 게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가족 의례나 전통 같은 것도 그냥 의미없는 목적과 수단이 되고, 서로가 서로만 생각하는 순간 가족은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 애증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순간 가족은 그냥 남이 되고 마는 건가. 솔직히 이런 복잡한 걸 따지지 않는 다면 가족은 그냥 가족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같이 공유하고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현대의 가족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구절이 책 속에 있었다. 일본어로 죽는다를 경사스럽다고 바꿔 쓸 수도 있다고. 그렇다는 건 이번 도불의 연회의 연회, 즉 경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걸 나타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거나. 실제로 어떤 인물에게는 엄청난 연회의 장이었지만, 어떤 인물에게는 모든 게 죽어버리고 만 황천의 끝을 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여명이 밝아오는 끝이 언제나 좋은 결과라는 생각을 의심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끝이 다가오는 과정이 그 동안 진짜냐 거짓이냐에 따라 고생 끝에 결실을 맺은 경사냐 허상을 뒤쫓다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마는 죽음이냐, 가 결정되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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