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코 지음, 이지민 옮김, 한정우 감수 / SISO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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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이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 삶은 완전히 바뀐다. 안 그래도 큰 세상이 숨막힐 정도로 커져 한 없이 작은 내가 돋보이게 되고,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생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준비된 상태에서라면 모를까, 갑작스럽게 이 순간이 다가온다면 모든 게 혼란스럽다. 그것도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이건 곧 가족과 연관된 일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다.
 이 만한 강렬한 문장이 또 있을까.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송과 아픈 가족이 있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와 심리가 나타났다. 죽음과 상실에 직면해 있고, 힘든 현실을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현재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쌓이고 쌓인 소외감은 여전하고, 어린 나이에 직면하는 거대한 현실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소설 속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실제 가족 사이에서 있을 법한 상황으로 보였다.
 특히 제시가 느끼는 소외감은 공감이 갔다. 부모가 어느 정도 신경쓰고, 공평하게 해주고 있다 생각해도 당사자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면 오히려 상처가 된다. 진짜 나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같이 딸려오는 겉치레나, 무슨 일이 진행될 때 아무런 감흥없이 있는 일종의 정해진 형식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 해주면 섭섭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툭 던져주는 인상을 주면 그것대로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생명윤리와 가족에 대한 내용이면서 계획된 탄생에 정해진 운명이라는 안나를 통해 존재의 의미도 나타내고 있다. 아버지 브라이언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다룰 때는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잘하는 것,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있는데 정해진대로 가야한다. 밤하늘의 별이 수없이 많아도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안나가 그것보다 못하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아픈 가족을 위한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런 한편으로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대로 또 어려운 일이다. 부모에게는 자녀가 살아가는 가치나 다름없으니. 무엇이 최선이고, 가장 좋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가족이라면.
 의료와 관련된 내용인 만큼 전문적인 부분이 세세하다. 이전에 나온 번역은 미숙했다고 하는데, 현재 번역본을 보면 너무 세세하게 보일 정도다. 그렇다보니 안나의 가족이 병원에 자주간다는 게 제대로 느껴졌다. 보통 사람이 어려운 의료 용어나 지식을 줄줄 꿰고 있는 경우는 드무니까.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냐는 질문이 있다. 어려운 질문이면서 때로는 쉽게 해서는 안 될 질문이기도 하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방황하고 있는 상태라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줄 수도 있고.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섭섭하게 하는 순간이 있어도 가족만큼은 나의 존재가치를 알아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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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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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 중에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있고, 어느 정도 읽히는 것도 있고, 아예 무관심을 받는 것도, 심지어는 아예 출간되지 못하고 원고 형태로만 남아있는 것도 있다. 출간되지 못한 원고들은 끊임없는 재도전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여러 사연을 가진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원고들 중에는 의외로 숨겨진 대작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왜 출간되지 못했을까는 곧 누가 썼을까로 이어진다. 그런데, 작가 지망생이라면 모를까 책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이 글쓴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런 엄청난 미스터리는 또 없을 것이다.

 출판사 편집자인 델피는 출간한 소설이 실패하면서 의기소침해진 연인 프레드와 함께 그녀의 고향 크로종을 방문한다. 두 연인은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 도서관에 거절당한 책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도서관을 방문한 델피와 프레드는 재미있는 원고를 발견하고 글쓴이인 앙리 픽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투고에 실패하는 것만큼 실망스럽고 김빠지는 일은 없다. 거절당하는 아쉬움과 주목을 받을까는 둘째치고, 언제 내 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지친다. 여기에 글까지 안 써지면 불안이 극에 치닫기도 한다. 이런 원고들을 받아주는 누구도 원치 않은 책들의 도서관은 생각만해도 기발하고 실제로 있으면 가보고 싶을 정도다. 어떤 내용이길래 거절당했을까하는 궁금증과 이렇게 좋은 게 왜 거절당했을까 하는 공감대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앙리 픽의 소설도 이런 식으로 발견되기 했고.

 미스터리적인 요소와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가지는 의미와 영향력을 동시에 다루는 구성이다. 출간되는 과정과 그 이후를 보며 책이 어떤 식으로 관심을 받게 되는지 볼 수 있다. 흔히 책은 내용이나 의미, 더 깊이보는 경우에는 문장을 따지는데 여기서는 앙리 픽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저자라는 사연이 관심대상이다. 지금도 이렇게 사연으로 주목받는 책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특별한 사례로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주목받지 않으면 사장되기 마련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 마케팅이 있는 것이지만, 책 내용으로 관심끌기가 힘들다 싶으면 결국에는 이런저런 포장까지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면 책의 본질은 이미 저 멀리가 있고 마케팅 속의 이미지만 남게 되는 것이다.

 평범함이 특별하게 변하는 건 일상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밋밋하고 모든게 불만스러운 일상이라도 무언가로 포장되면 특별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책과는 달리 자신의 본질을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익숙지 않은 순간을 겪으며 이전의 일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순간이 생길 것이다. 사소하게 지나쳤던 것에서 나의 일상이 어땠는지 되돌아 볼며 진짜 소중한 것을 찾을 수도, 내가 몰랐던 순간을 발견하면서 미련을 털어버릴 수도 있다. 갑작스럽게 행운이 찾아왔다가 나중에가서 이전의 일상이 더 좋았다고 여기는 내용도 많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나는 이 정도 밖에 못한다는 비관, 이 정도면 너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떠밀림까지. 이런 게 평범한 것이 특별함으로 발전하는 계기와 열광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나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인 것이다. 또, 나 역시 가치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염원일 수도 있고.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상을 받을 수는 없다. 적어도 꾸준히 읽히거나 관심을 받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책이 팔리고 어느 정도 언급되는 것만큼 작가에게 기쁜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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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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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된다는 느낌은 어떨까. 미혼인 입장이라서 그런지 어쩐지 쓰기 어려우면서 조심스러워진다. 아기는 많이 봤지만 부모로서 맞이하는 느낌은 여러모로 복잡 미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거나. 또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거나. 상황은 다를지 몰라도 부모로서 아이를 맡이하는 마음은 어느정도 다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종종 제멋대로 판단하고 그걸 알아주지 않기도 하다.

 어느 날, 사토코는 아이를 돌려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아들인 아사토는 난임치료 끝에 입양한 아이였다. 전화를 건 당사자가 친모인 히카리라 생각하고 사토코는 직접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사토코가 만난 여자는 예전에 알던 히카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집안 혈통을 따지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입양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사자들이 아무렇지 않다 해도 세상이 이해심 없이 대하기 때문에 힘든 점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입양을 보내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온갖 편견으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이쪽이 더 대우가 좋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이들의 사연은 안타까운 일의 연속이다.

 아이 문제가 주로 부각이 되긴 했지만 대체로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아이가 생기는 게 끝이 아니라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필요한 과정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힘들고, 의견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로 맞춰가는 노력이 그 과정이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부모는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미혼모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저 단순히 무책임하게 생겨서 버려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세상이 멋대로 판단하는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정하고 버리거나, 책임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 다면 모를까, 앞서 언급한 아이가 생기기는데 도달해야 할 과정이 없던 탓도 있을 것이다.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하면 누구나 당황할 수 있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다보면 찬찬히 생각할 기회를 갖기도 힘들다. 그렇다보니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막상 아이가 없을 때 그걸 알게 된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슬픔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은 많다. 그러나 진짜 가족일지, 그저 모습만 그럴싸한 가족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뭐든 겉만 보고는 알 수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만의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짜 가족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각자의 구성원에게 달린 문제일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며 노력하는 가족에게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 못하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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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일본환상문학선집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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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오래 전부터 각종 소설 장르를 접해왔다. 에도가와 란포를 시작으로 추리장르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한 예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추리로 유명한 에도가와 란포는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특히 후기 작품군으로 갈 수록 괴기, 환상적인 색체가 강해진 걸로 알려진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와는 다르게 과거에는 이 괴기, 환상 소설 쪽이 더 인기 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이길래 그렇게 유명했을까?

 에도가와 란포의 환상 소설은 대체로 당시 서양문명과 일본 전통적인 요소가 결합된 형태로 보인다. 동양 특유의 미신적인 요소가 신기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서양문명은 신기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면 란포가 만들어낸 소설 속 환상은 이렇다는 생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실존하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라고. 이런 느낌이 란포가 살던 시대에 어느 정도 공감과 함께 색다른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 추리의 거장이 쓴 환상 소설이라 그런지 곳곳에서 약간의 추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물론 환상소설답게 범인이 누구인가가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압화와 여행하는 남자


 나는 우오즈에서 신기루를 보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환상적인 일을 겪는다. 동승객인 어떤 노인이 가진 기이한 그림을 보게 되고, 그 노인의 형에 대한 얘기를 듣는데...

 그림은 오래전 부터 환상소설에 소재로 유명하다. 때로는 무서운 것으로, 때로는 환상적인 것으로. 서양권은 물론이고, 동양권 각지에도 비슷한 얘기가 많아 옛날부터 그림은 여러모로 예술작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흔한 소재이긴 하지만 압화가 어떤 형태의 그림인지 보고서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림은 화법과 재료에 따라 느낌이 다른 만큼, 소설 속에서도 그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와 내용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시점이 꽤 과거다 보니, 서구식으로 변모하는 세상과 서양 문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우리에게는 흔한 것들이 과거 사람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자연의 경이로움과 미신으로 그것들을 해석하는 모습이 현존하는 환상 세계 같아 보였다.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


 나는 탐정소설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자주가던 우에노의 동물원에서 누추한 차림의 청년과 만난다. 그 청년은 흉내의 무서운 점을 강조하며 거울처럼 똑같은 쌍둥이 빌딩에서 벌어진 기이한 자살 사건 얘기를 들려주는데...

 제목만 보면 추리단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환상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내용이다. 환상과 범죄가 한끗 차이로 나누어지는 점이 이 단편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도시를 숲처럼 묘사하는 부분에서 묘하게 무섭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시를 건물의 숲이라 하는 묘사는 많이 봤어도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보인다고 확실하게 나타내는 걸 보니 상당히 기괴한 느낌이다. 자연과 문명의 차이점을 특정한 시각으로 보면 당연한 사실도 또 다르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현실성만 놓고 보면 개연성 없는 일이겠지만, 이건 엄연히 환상소설이다. 환상 세계에서의 범죄 추적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걸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파노라마 섬 기담


 어느 지방의 외딴 섬을 재력가 고모다 가문이 매입하고 엄청난 공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는 중단되고 섬은 폐허 상태로 방치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고모다 가문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일의 전말이 밝혀지는데...

 상당한 분량에 세세한 묘사가 많은 편이다. 간혹 너무 세세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약간 읽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 만큼 작중에 나타난 환상적인 부분은 방대하다. 환상을 넘어서 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현실적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여기에 나오는 요소들이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렇다. 환상을 실제로 구현하는 시도가 지금도 있지만, 의도가 좋지 않다면 그건 괴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처럼 역시 추리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 범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도드라지다보니 도치서술형 추리로 볼 수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펼쳐지는 거대한 환상 세계가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요소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일인이역


 지루한 걸 참지 못해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를 수시로 만나러 다니는 T. 그러던 그가 갑자기 재미있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이 다른남자로 변장해서 아내와 사귀어 보는 것인데...

 가장 평범한 내용으로 점점 기묘한 색채가 띄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나왔던 환상들이 시각적으로 나타낸게 많았다면, 이것은 심리적인 면이 강하다. 모든 게 그대로이면서 다르다는 인식이라 실제로도 이런 기분을 겪어본 경우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보통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거나, 환상적인 걸 넘어 기괴한 부분이 없이 나름 훈훈한 분위기라 어딘지 모르게 교훈적이라는 느낌이다.


 목마는 돈다


 회전목마 안에서 연주를 하는 악단의 나팔수는 매표원인 어린 여성에게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낀다. 자신의 처지와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로 점점 매표원에게 집착하던 나팔수는 어느 날, 회전목마에 탄 한 청년의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는데...

 <일인이역>과 함께 평범한 내용으로 인생의 일탈을 환상적으로 나타낸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들이 가끔 꿈꾸는 게 일탈인데, 아마 그게 가장 현실적인 환상이지 않을까 한다. 특별한 요소 없이 환상적인 색체라 더욱 기묘하게 보인다는 인상이다.

 이래저래 신경쓰는 일 없이 내키는대로 즐기는 것, 단 한 순간일지 몰라도 이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환상이라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목마는 돈다고 하는 걸까. 그 화려한 한 순간이 영원히 돌았으면 하는 염원일까? 


 거울지옥


 친구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던 중, K라는 친구가 한 이야기다.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렌즈와 거울에 광적인 집착을 가졌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개인 작업실에 틀어박힌 친구는 기괴한 거울 세계를 만들어 놓는데...

 거울 역시 전통적인 공포, 환상적인 소재다. 대체로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 대한 부분이 서서히 확장되면서 공포를 이루고는 한다. 여기서 나타낸 거울은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기반이 됐는데 그래서였을까, 환상을 넘어서 괴기스럽기까지 한다. 실존하는 금단의 영역이라 지칭되는 만큼, 그 어떤 기술과 발견이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 소설에 나온 거울을 실제로 나타낸 시뮬레이터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교토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일그러지다 못해 굴곡을 타고 흘러내리고 떠다니고 겹치는 게 잘못보면 멀미가 날 정도다. 이걸 진짜 사람으로 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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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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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의의는 무엇에 달려 있는 가는 복잡하다. 잘 그렸나, 색감이 좋은가, 구도가 좋은가, 무엇을 소재로 했냐, 어떤 재료를 썼는가, 어디에 그렸는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기 분분하지만 정답을 말해주는 예술가는 없다. 자신이 무엇을 나타냈든, 그것을 통해 많은 이들이 어떤 형태든 간의 의미를 찾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예술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힘이 있으니까.
 파블로 피카소는 말했다.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적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라고.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큐레이터 요코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반대하는 의미로 게르니카를 메인으로 한 피카소 전시회를 기획한다. 문제는 게르니카 원본 대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기자 카일의 생각대로 뉴욕 UN본부에 전시되어 있는 게르니카 복제품 대여를 염두하지만, UN에서 열린 기자회견 화면에서 전시된 게르니카가 검은 천에 가려진 상태라는 걸 보게 되는데...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 바탕이 되었고,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 반전주의를 표방하는 걸로 유명하다는 점까지. 소설은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렸던 당시와 현대의 시점이 교차되면서,이 세기의 걸작이 지금도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예술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까지.
 큐레이터가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꽤 복잡한 직업으로 보였다. 미술 전시회가 기획되는 과정과 전시 작품이 정해지는 과정을 보며 여러모로 꽤 준비가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시회가 그냥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까지. 그림 하나로 예술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예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 전시회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르니카가 제작될 당시의 피카소를 나타낸 부분도 꽤 인상적이었다. 시대적 상황에서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예술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피카소는 개인이면서 모두의 예술가였다. 그 어떤 위협에서도 지키고, 아무리 위험한 때라도 같이 따라가게 되는. 이 당시의 모습과 현대 시점을 번갈아 보면서 그가 게르니카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보고 분노한 게르니카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 있을 테니까.
 전반적으로 반복되는 설명과 구절이 많아서 살짝 거슬리게 보이긴 했다. 중요한 순간에 반복하는 건 좋지만, 시도 때도 없이 같은 구절이 나오면 솔직히 지겹게 느껴진다. 아마 반복되는 문장만 뺐어도 책 분량이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용 면에서도 살짝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시점은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요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시점이다. 겉으로는 엄청난 게 있다는 듯이 분위는 깔려있는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이다. 서스펜스라면 긴장감을 줘야 하는데, 생각보다는 너무 잔잔하다는 느낌이다. 보통은 추격전이나 두뇌싸움 같은 요소로 긴장을 발생시키는 요소와 역할이 거의 없고 후반부에 살짝 나오는 정도다. 게다가 그 살짝 나오는 곳도 금방 상황이 정리되기 때문에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인상이다. 오히려 피카소 파트가 더 서스펜스처럼 보일 정도라 도대체 어느 파트를 메인으로 둔 것인지 해깔리기도 하다.
 예술가는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작품만이 남게 된다. 이 작품들을 지켜야하는 건 특정 인물들이 아니라 모두라는 구절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특정 계층만 취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 피카소가 말하는 진정한 예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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