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연대기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부터 완성체로 나타나는 것은 없다. 기초적인 원형을 시작으로 발전해서 현대의 모습에 이르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고, 기존의 요소가 삭제되면서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한다. 좀비가 이런 부류의 대표격일지도 모른다.
 역자 서문에서도 언급되지만 현대의 좀비와 원래 시초인 아이티의 부두교 좀비는 확연히 다르다. 발생의 과정부터, 각종 세부요소, 거기에 공포를 일으키는 관점까지. 지금의 과학적인 좀비와 비교하면 판타지적인 면이 강하다. 물론 그 당시에도 과학적으로 연관지으려는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초기에는 주술이나 마술 같은 개념과 초자연적인 모습이 주류였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에서는 정통 좀비를 거의 볼 수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옛 것이라고 반드시 사라지는 법은 없으니까.
 
지옥에서 온 비둘기_로버트 E. 하워드

 친구 존과 함께 휴가로 뉴잉글랜드 외딴 곳으로 나간 그리스웰. 그들은 깊은 소나무 숲에서 발견한 폐가에서 하룻 밤을 지내게 된다. 그런데, 불길한 꿈으로 인해 잠에서 깬 그리스웰은 존이 정수리가 깨진 상태로 도끼를 들고 나타난 모습을 목격하는데...
 러브크래프트와 가까운 작가답게 공포의 근원에 다가가는 전개를 보여준다. 정체가 불분명한 미지의 공포와 명백한 위협이 도사리는 실체적인 공포가 혼합되어 있어 독특한 분위기였다.
 클래식한 좀비는 대체로 서인도 제도의 부두교 좀비를 생각하게 만드는데, 예상대로 이 소설 역시 그렇다. 감염이라는 질병 형태로 좀비 자체가 공포로 몰아 넣는 현대 스타일과 달리, 괴기한 분위기 속에서 다소 초월적인 존재의 면모를 보인다. 특히 분위기로 몰아가는 부분은 이 만한 공포스러운 걸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검은 카난_로버트 E. 하워드

 카난 출신의 커비 버크너는 어느 흑인 노파로부터 경고를 듣게 된다. 서둘러 카난으로 돌아가던 커비는 3명의 흑인 무리들에게 습격을 당하지만 무사히 물리치고 근처를 순찰하던 이들과 함께 카난에 도착한다. 카난은 과거에 일어난 학살의 재림이 예고된 분위기에 솔 스타크라는 흑인 주술사가 늪지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하는데...
 지옥에서 온 비둘기와 달리 인종차별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져서 불편했다. 노예제의 문제점과 백인들의 차별이 아예 다루어지지 않은 건 아닌데도, 특정 인종을 대놓고 너무 악당처럼 묘사한 점 때문에 그렇다. 역시사지 적인 면을 공포로 다룬 것을 보면 차별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작중 인물들의 행동이나 언행이 지금의 시점에서는 부적절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천 번의 죽음_잭 런던

 영국의 은행가 집안 출신의 나는 떠돌이 생활 중에 수상쩍은 배의 선원으로 들어갔다 탈출 도중에 익사를 하고 만다. 그런데, 다른 선박 안에서 수상한 실험으로 되살아나고 기획자가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된다. 아버지는 인체소생술 실험을 하고 있었고, 이후로 내가 실험체가 되어 수 천 번을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흔히 아는 좀비의 개념이 아니라서 당황스러웠다. 죽었다 살린다는 개념을 보면 좀비에 속하긴 하지만, 클래식한 부두교 좀비나 현대식 바이러스형 좀비를 떠올려보면 이건 약간 러브크래프트의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트>에 가깝지 않나 싶다.
 좀비요소를 따지지 않고 봤을 때는 거의 SF스릴러에 가까운데, 좀 웃기는 점이 막상 보면 정말 암울한 상황인데 작중 주인공도 미치광이라 그런지 담담하게 진행된다. 또, 신체에 상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죽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_가넷 웨스턴 허터

 아이티의 호텔에 투숙 중인 나는 소금을 쏟는 바람에 아이를 혼내는 마리 할멈이라는 노인을 목격한다. 아이는 부두교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지방 특유의 미신이라 생각하며 무시한다. 하지만 워낙 관심이 많은 나머지 마리 할멈의 관심을 끌어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전통적인 아이티 부두교가 기반이 되긴 했지만, 좀비 자체보다는 삶과 죽음이라는 심오한 주제로 공포를 만들어낸다. 흔히 삶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이 없다보니 어딘지 모를 기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흔히 바라는 영생은 대부분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라면 어떨까? 죽었지만 죽었다는 인식 없이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것. 가장 현실적인 영생의 형태이며, 나쁘게 악용되거나 무서운 이미지가 아닌 가장 이상적인 좀비의 형태가 아닐까.

귀환자의 마을_라프카디오 헌

 열대지방의 마을에서는 밤에 돌아다니는 좀비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하다. 간혹 낮에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던 중, 사탕수수 농장 근처를 지나가던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을 한 일꾼이 쫓아가게 되는데...
 앞서 좀비 개념과 다른 걸 넘어 아예 좀비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나온다. 이름만 좀비인 다른 것이거나, 부두교 본산지인 아이티 부근에 있던 좀비 관련 다른 설화의 내용을 차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으로 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좀비가 그렇게 알려지지 않던 시대였던 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반영된 것도 있을지 모른다. 약간 동양적인 유령의 형태로도 보이는데, 아마도 작가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나트에서의 마법_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유목민 땅, 자라의 왕자 야다르는 노예상인 샤라그에게 납치당한 약혼녀를 찾기위해 조디크 대륙을 해매고 다닌다. 그러던 중, 요로스 왕국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듣고 야다르는 상선에 올라타게 된다. 상선은 서쪽을 항해하던 중, 검은 바다 쪽으로 휩쓸리게 되고 그곳은 마법사들이 사는 나트 섬 근처라고 하는데...
 판타지적인 세계관이지만 상당히 음습한 분위기다. 여기서 나오는 좀비는 마법과 판타지 세계관이 적용됐긴 하지만 부두교 좀비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되살아난 시체라는 특징을 너무 잘 살린 나머지 묘사한 문장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그대로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작가만의 색체가 정말 확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징그러울 정도의 묘사와 어두운 세계관에 비해 다소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어서 상당히 독특하다. 웅장한 배경과 야다르의 시점에서 나타나는 여정의 흔적이 옛 신화나 설화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서 비극이 더 깊게 다가오는 감도 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_이네즈 윌리스

 법으로도 좀비를 사실로 규정하고 있는 아이티. 그곳에서는 좀비와 관련된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간혹, 몇몇 사람들이 좀비를 다룬다던지. 그것도 특정 지역 출신이...
 앞서 나온 단편들에 비하면 짤막하게 몇몇 에피소드를 시놉시스 형태로 모아 합쳐놓은 구성이다. 대체로 아이티에는 좀비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사건, 저런 사건이 있다, 정도다. 몇몇 부분만 빼면 좀비에 관한 부분은 다른 단편과 크게 다를게 없어서 좀비가 있다는 가정에서 쓴 논픽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역시 그 당시에는 상당한 화제거리였을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좀 심심한 인상이다.

화이트 좀비_비비언 미크

 아프리카에 파견나가 있는 에일릿은 어느 날부터 한밤 중에 심각한 악취를 느낀다. 신비주의를 어느 정도 믿던 에일릿은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을 떠올리던 중, 이미 죽은지 오래인 동료 존 싱클레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배경이 아프리카라는 점만 빼면 <검은 카난>과 비슷한 내용이다. 아마도 이 당시의 좀비 이미지가 유색 인종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백인 좀비가 다소 파격적이라는 생각에 나온 것 같다. 그렇기에 현대의 시점에서 보기에는 아프리카 본토의 야생적 분위기의 좀비물 정도라는 인상이라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할로 맨_토머스 버크

 런던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모모. 영업이 끝난 한밤 중에 별 생각 없이 식당에 나와 있던 중, 갑자기 방문한 거구의 남자를 보고 경악한다. 다름 아닌, 15년 전 아프리카에서 본인이 직접 죽였던 남자였는데...
 분명 좀비물인데 좀비 자체가 주체가 되기 보다는 죽은 자가 돌아왔다는 개념이 더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 보통 죽었다 살아났다는 개념은 신비로운 현상으로 여기는데, 작중의 모모처럼 자기가 죽였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면 상당한 공포나 다름없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점만 빼면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 공포스러운 외형은 아니다. 딱히 무언가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불길하고 소름돋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묘하게 무섭다는 인상이다. 결말을 보면 좀비물 골격을 빌린 심리 호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에서 절대 도망치기 힘드니까.

마법의 섬_윌리엄 뷸러 시브룩

 아이티에서 사는 나는 농부 폴리니스가 얘기해주는 미신적인 것들을 듣던 중, 좀비에 대해 묻게 된다. 미신을 믿지 않는 폴리니스는 좀비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면서 한 상업도시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데...
 서양권에서 좀비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쓰인 소설이라는데, 가장 아이티 전통에 가까운 좀비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지 않나 싶다. 앞에서 나온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와 비교하면 내용이 더 흥미진진하고 공포면에서도 섬뜩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과 <투셀의 창백한 신부> 두 파트로 나누어진 구성이다. 사탕수수밭의 경우, 전형적인 아이티 전통 좀비 스토리이긴 해도 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구성 덕에 단조로움은 면했다. 창백한 신부의 경우는 보기드문 부유층 시점이라 다소 신선하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제대로 만든다.

점비_헨리 S. 화이트헤드

 세계대전 후유증 치료차 해외 미국영토 중 하나인 세인트크로이 섬으로 떠난 그랜빌 리. 그는 그곳에서 각종 민간전설을 접하던 중, 점비에 관해 듣게 된다. 아프리카계 혼혈이자 섬의 신사인 제프리 다 실바는 점비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의 친구로 인해 겪은 일을 알려주는데...
 흔히 좀비의 영어철자를 보면 Zombie인데, 이 소설의 제목은 특이하게도 앞자리를 J로 썼다는 것부터 눈에 띈다. 그래서였는지 번역도 J발음이 더 강하게 점비로 했던 걸로 보인다. 작중에 언급된 바로는 아이티의 좀비와 다른 걸로 보이는데, 이때문에 차별성을 두면서 발음이 비슷하게 J로 바꾼 듯하다.
 이름만 좀비에 가깝지 실제로는 전혀 다른 부류의 존재가 등장해서 좀 당황스러운 면이 적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는 약간 유령 형태의 좀비처럼보였는데, 뒤에 가서는 늑대인간 같은 게 나오다보니 그렇다. 좀비가 다른 것으로 변신을 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강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 전설 속의 강시는 몇 년을 묵으면 후라는 짐승으로 변한다고 한다.

좀비 감염 지대_엘피어스 하이엇 베릴

 저명한 생물학자 고든 파넘은 수명연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고 오히려 미치광이로 몰아가자 파넘 박사는 연구자료들을 가지고 아빌론 섬에 숨어 버린다. 섬에서도 실험이 계속되는 와중에 박사는 사람에게 임상실험을 시도하게 되는데..
 제목만 봐도 감이 오겠지만, 모두가 잘 아는 현대적 스타일에 가까운 좀비가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점이 존재한다. 현대 좀비는 바이러스성 질병 형태에 가깝지만, 작중의 좀비는 발생과정이 현대의학과 부두교적 이미지가 섞여서 러브크래프트의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트>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물리면 감염된다는 형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식인을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현대적 인상을 찾을 수 있긴 하다. 그런데 좀비의 특성이 상당히 독특해서 꽤 주목했다. 다소 기괴하고 초월적인 특성이 부두교 좀비의 형식에서 벗어난 발전의 단계로 보였다. 게다가 절대 죽지 않는 다는 점만 빼면 다소 바이오하자드에 나오는 좀비가 연상되서 상당히 놀라웠다.
 신선하고 발전된 좀비가 나오는 것에 비해 마무리에서 약간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애초에 좀비가 나온다는 것부터 현실성을 따질 것도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비 해결책 치고는 상당히 뜬금 없어 보이고 배경적 설정에서 개연성도 없어 보여 영 시원치 않게 보인다. SF적인 부분으로 보려고 해도 파넘 박사의 실험 외에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여서 역시나 시원치 않다. 결론은 작가 마저 감당 못할 작중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어떻게든 끼워 맞춘 와장창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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