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ㅣ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평범하던 삶이 갑자기 요동칠 때가 있다. 살아가던 환경이 변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선택과 상관없이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되고,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뒤쫓아오는 세상의 흐름에 금방 깔려 죽고 만다. 과거를 뒤돌아보며 앞으로 계속 뛸 수 밖에 없는 게 삶이라면 그것대로 잔인한 일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록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게 더 많은데 이게 진짜 삶을 사는 이유일까.
꽤 긴박하게 나타내긴 했지만, 실제 현실은 이렇게까지 스릴 넘치지 않는다. 진짜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엄청난 일이 닥친다면 앞만보고 뛰는 것도 버거워 아마 살기 싫어질지도 모른다.
평범한 인생을 살던 택배 배달원 아오야기 마사히루가 총리 암살범으로 몰려 쫓기는 내용으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내용만 보면 정치 음모론적인 스릴러로 보이지만, 아오야기를 중심으로 한 주변인물들 간의 삶이 더 강조되는 부분이 많아 사건의 전말보다는 인생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건의 실체를 알고 싶어하는 경우라면 김빠진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정치계 관련 미스터리처럼. 개인적으로는 음모론적인 배경과 삶에 대한 철학을 같이 잘 살렸다고 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 뜻밖의 만남과 인연. 전부 스릴러적인 분위기로 보여도 실제 일상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 탈 없던 인생이 갑자기 뒤집어지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인생 계획을 세워도 자의든 타의든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언제 어디서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또는 생판 모르는 이와 갑자기 인연이 생기는 것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보면 삶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정말 이상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총리 암살 사건도 아오야기의 입장에서 보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삶의 위기다. 이런 엄청난 일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나랑 관련없는데 휘말렸거나, 억울한 일이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른다. 교통사고나 질병, 자연재해 같은 것도 예고하고 오지 않듯이. 결국에는 내 삶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피하려고 해도, 이전과 같은 때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이겨내거나 혹은 도망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도망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힘든 순간을 무조건 이겨 내라는 법은 없다. 안 되면 때로는 도망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세상의 흐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앞에서 삶이 강조된다고는 하지만 추격 부분도 나쁘지 않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긴장감과 스릴이 부족한 감이 전혀 없고,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흔히 영화를 보는 듯한 속도감이라는 걸 이런 것이라고 해야겠다.
미디어에 관한 비판도 꽤 주목하는 부분이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떠들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대부분 검증되지 않는 것이나 추측을 기정사실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어디서는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다른 곳에서는 나쁜 이미지가 만들어져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어도 책임을 지지 않아서 더 문제다. 정보의 빠른 공유와 파급력이 중요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건 빠른게 아니라 그냥 성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작중에서도 간간히 언급되는 비틀즈의 골든 슬럼버 가사를 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진짜 힘든 순간에는 좋았던 시절이 떠오르고, 이대로 다 내던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어딘가 도망칠 곳이 있어서가 아닐까. 이 모든 상황을 버리고 피하는 도망이 아니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들의 도움이 있는 곳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한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힘들 때 잠드는 것보다 더 편한 건 없다.
잠들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건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시절의 지인들.
비록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변함없는 미소로 깨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