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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속삭임 ㅣ 속삭임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보이는 피와 보이지 않는 피로 뒤덮혀 혼란을 겪는 여고의 비극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었다. 이즈미 사에코가 전학온 세이신 여학원 고등학교는 온갖 빡빡한 교칙과 옛날 분위기의 건물에서 느껴지는 음침함 때문에 보고 있는 내내 갑갑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딱 7, 80년대 여고 분위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찍어낸 인형 같은 생활을 요구하는 학교도 이상하지만 반장을 중심으로 부잣집 아가씨 같은 어투를 쓰는 여고생들 또한 이상했다. 그리고 자신을 마녀라고 지칭하는 사에코의 룸메이트 타카토리 케이. 분명 이곳은 학교다. 하지만 어딘가 외부와 단절로 인해 폐쇄되어 격리소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폐쇄된 공간에서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 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콕 집어서 말하자면 2001년에 출시된 화이트데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귀신 나올 것 같은 학교 분위기다. 그러나 여고괴담처럼 귀신이 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귀신보다 더 무서운 실체가 학교를 혼란에 빠뜨리고 핏빛으로 물들인다.
가족관계가 복잡한 상태인데다, 전학 첫 날 벌어진 학교 괴담의 진원지인 '열리지 않는 문' 뒤에서 여학생이 불타 죽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에코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거기에다 과거의 잔상과 함께 찾아오는 진홍빛의 회상. 사에코에게는 분명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열리지 않는 문 사건 이후, 학교를 서성거리는 검은 그림자. 그림자는 계속해서 살인을 부르고 명예를 중시하던 학교는 한순간에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학교 관계자들은 모든 것을 은폐하고 진실을 숨기려 한다. 하지만 이것의 끝트머리만 엿들은 학생들은 끝임없는 추측과 불안으로 결국에는 자신의 안정을 위해 희생양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 가려진 상태로 겉도는 소문의 무서움이 아닐지 모른다.
내용 전후반을 통틀어 마녀라는 단어가 계속 언급되는데, 이 마녀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풀기위한 희생양. 단순한 분풀이로 시작된 것이 점점 광기를 띄게 되는 위험한 것. 개성이라는 것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확립하기 위한 도구. 그렇다, 이 마녀라는 것은 학생들이 만들어낸 왕따라는 것의 다른 이름. 따돌림이라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고안해 낸 제도 같은 것이다. 최근 유행했던 티아라 놀이도 이 마녀라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소문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느꼈다. 멀쩡한 사람을 약간의 의심 만으로 희생양으로 몰아 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휘말리는 이들은 한순간에 광신도로 돌변해버린다. 거기에다 광기를 촉진시키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사건에 관계된 이들이다. 사건과 관계없는 이들보다 더욱더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것이 불보듯 뻔하다. 어쩌면 진정 희생양을 원했던 것은 사건 관계자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지목한 마녀라는 것이 사실은 그들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