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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합본판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2010년 6월
평점 :
기괴하고 섬뜩한 그림체로 한 눈에 뛴 만화가 이토 준지, 이미 그는 인터넷 상에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단순히 자극적인 만화로만 생각하여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물론,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일방적인 면에만 치우치다보면 그런 이미지로만 남을 것이 걱정될 뿐이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대부분 재미면에서는 만점이다. 이 소용돌이라는 작품도 대표작 중 하나라 인기가 많다. 자연이 만들어낸 고유의 문양인 소용돌이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대단하지만 상상의 실체를 그림으로 나타냈다는 것에 대한 것이 더 대단하다고 본다.
이 만화에서는 소용돌이에 관련된 것들이 일상을 위협해 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하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소용돌이라는 주제에 관련된 사건들이 특색이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보면 장편 만화가 아닌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로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다보면 우리 주위에 소용돌이 문양이 이렇게 많았는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각 에피소드에는 소용돌이 문양처럼 비틀리거나 빨아들이고, 방향감각을 잃게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용수철이나 달팽이, 머리카락, 태풍 같이 실체적 요소들이 있는 반면 사람과의 틀어진 관계, 자신에게 빠지도록 유혹의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과 같은 비실체적 요소들도 등장한다.
실체적 요소들은 기괴함의 실체를 나타내어 혐오스럽고 징그러운 시각적 공포를 주고 비실체적 요소들은 사람과의 갈등을 만드는 드라마적 요소로 쓰이다가 파멸로 이끄는 내면적 공포를 주고 있었다.
소용돌이가 절정에 다다르는 결말 부분은 많은 이들이 좀 허무하다라는 얘기를 많이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이기려하지만 결국에는 자연의 순리를 이기지 못하고 동화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금 현재도 그렇다, 자연을 상대로 훼손을 가하면 가할 수록 자연은 더욱 강력한 태풍과 기상변화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합본판에만 실려 있는 단편 은하가 있다. 은하 또한 소용돌이 모양이라 이 소재로 무슨 내용이 전개될지 기대가 됐었다. 은하는 자연을 넘어서 우주가 만든 형상이기 때문에 뭔가 더 거대하고 미지의 느낌이 들었다. 마을을 잠식해오는 장편만화 소용돌이와는 다르게 우주적 느낌이 강해서 같은 소재로 성격이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본다. 우주에 있는 은하는 직접적인 외형으로 마을에 접근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접근하면서 이전에 나온 소용돌이들 보다 한층 고차원적인 면이 보였다. 은하의 발견이라는 명예를 둘러싸고 뒤틀리는 인간관계가 파멸로 이어지는 것은 이전 소용돌이 작품에서 나온 패턴이기는 하지만 현대 우주개발의 경쟁이 지나치게 되면 이 단편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