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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50가지 그림자
F. L. 파울러 지음, 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치킨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곳곳에 치킨집이 널린지는 꽤 되었다. 후라이드, 양념을 기본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마늘, 파닭, 간장, 매운맛 등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개발됐다.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고 다 좋아하지만 예전부터 특별히 먹고 싶었던 닭요리가 있었다. 미국에서 생닭으로 한 요리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모르지만 오븐에 구워서 만드는 것밖에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생닭을 구운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굽고 튀기는 것 말고 특별한 맛을 내는 요리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와 비슷한 걸 유명 소설을 패러디한 치킨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냉장고 한 귀퉁이에 랩에 싸인채 있던 생닭, 치킨 양. 매력적인 '칼잡이' 씨가 냉장고를 연 순간 바닥에 떨어져 그와 첫 대면을 한다. 치킨 양은 칼잡이 씨의 매력에 빠져들고, 한 번도 고급스러운 요리가 되보지 못한 치킨 양을 위해 칼잡이 씨는 그녀를 고급스럽게 요리하기로 하는데...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소설 형식이지만 분명히 요리책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표현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무슨 닭 요리 하나를 하는데, 정말 쓸때없이 자극적이라서 실소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자극적이라고 해서 선정성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요리가 밑 바탕이라 그런 건 전혀 없고 읽다가 배가 고파질 뿐이다. 선정적이면서 정말 맛있는 묘사라 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요리재료 생닭인 치킨양과 요리사 칼잡이 씨의 묘한 관계를 그려가는 과정이 참 맛있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자극적이며 웃기다 해야할지 모르겠다. 무슨 요리사가 상체를 들어낸채로 요리를 하지 않나, 생닭 주제에 손길을 느끼며 맛있게 요리되기를 바라지 않나. 거기에 요리를 해준다, 안 해준다 하며 밀당까지! 난생 처음으로 주방이 이렇게 야한 곳인지 생각도 못했다.
요리사와 생닭의 말도 안돼는 자극적인 로맨스이긴 하지만, 튀긴 치킨이나 백숙밖에 몰랐던 닭요리의 세계가 다양하다는 걸 보여준다. 각 파트마다 요리법과 관련 있는 내용이라서 한 번 심심할때 거기나와 있는 요리법으로 닭요리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재료가 비싼 건 무리겠고, 각종 향신료가 입에 맞지 않은 경우도 있을 테고.
다양한 닭요리 만드는 법을 접하고 싶거나, 요리사와 생닭이 주방에서 벌이는 일의 끝을 알고 싶다면 문제 없겠지만 비슷비슷한 표현이나 분위기에 취약한 경우라면 중반 쯤 가서 약간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한 거라 그런지 반복되는 문구나 표현이 너무나 많다. 그나마 계속되는 요리 과정을 궁금하게 만들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패러디 대상이 된 소설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책이 나와서 읽어봤지, 그냥 요리책이었으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요리할 때 참고할 책을 평소에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것도 있었고.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닭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아무도 몰라줄까. 그렇다고 레시피만 나열되어 있는 요리책으로 내자니,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테고. 이런 생각 끝에 나온 것이 패러디 소설 겸 요리책으로 나온 이 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