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과거에는 무서워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대부분 상상에 근거하여 실존한다고 여기는 탓에 보편적인 공포 대상으로 발전한 것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그게 단순한 상상이라는 게 밝혀져 실존하는 공포로서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런 공포들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공포로서 남아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런데 점차 그런 공포조차 흐려지려 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공포의 대두, 바로 자본주의라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현실을 잠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스토어. 알게 모르게 일상을 파괴하는 현실적인 공포스러운 존재의 정체란 바로 이것일 테다.
 에리조나 주의 작은 소읍인 주니퍼에서 재택 근무를 하면서 가족과 지내던 빌. 평소 자주 다니던 산책 길을 걷던 중, 빌은 그곳에 더 스토어라는 매장이 생긴다는 표지판을 발견한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좋겠지만, 빌은 어딘 가 꺼림직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기어코 산책길에서 더 스토어 공사가 진행되고, 빌은 그 현장에서 사람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공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처럼 기괴한 것이나 초현실적인 것이 나오는 것은 극소수고, 오직 더 스토어라는 대형 매장만으로 공포를 일으킨다. 문제는 이 더 스토어 안에 괴물이 산다던가, 괴인이 운영자라 하는 요소는 전혀 없다. 그냥 우리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마트 그 자체다. 하지만 이 마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 부속 요소들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이런 작품이 1998년도에 나왔다는 점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본주의의 검은 그림자가 상주하는 판에, 20세기 극 후반에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다는 것인지.
 자본주의 논리로 지역을 잠식해가는 더 스토어의 행보는 돈 때문에 기업이라는 조직이 무슨 짓을 하고도 남는지 철저하게 보여준다. 지역토박이 업자들의 사업을 차지하기 위해 비인도적인 것을 넘어 아예 마피아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이나 다름없는 무자비한 짓을 하지 않나, 내부적으로는 고객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불법제품을 팔고 매장 이미지를 해한다는 이유로 특정 고객에게 위협을 가하고, 직원들에게는 결속력과 계약이라는 명목으로 사이비 종교 같은 강령과 의식, 수치스러운 행위를 강요하고 그걸 어길 시에는 잔혹한 보복을 가한다. 이게 과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짓인가. 이건 말이 기업이지, 거의 나치 같은 전체주의나 다름없다. 특히 현실의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 것처럼 공공분야에 대한 민영화는 절대 이루어지면 안 된다고 확실히 깨달았다. 민영화라는 게 좋게 구슬려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의 발전이라고 지칭하지만 그 속내는 자유롭게 운영되는 공공재를 기업이 자본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이 더 스토어의 행패도 속이 터지지만, 더 속이 터지는 건 바로 지방의회의 모습이었다. 주니퍼 지방의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많은 이들이 간과해 왔던 지방정치판의 문제를 느낄 수 있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한 답시고 하는 것들이 전부 의원들 본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않나, 지역발전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지역민들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각종 산업을 몰락하게 만드는 조례사항을 만들지 않나. 원래 거대한 판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걸 축소하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인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일 테다.
 이러한 현실적인 불편한 요소들이 범벅으로 뭉쳐 있기 때문에 때로는 거북하고 읽기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재미와는 별개의 의미다. 재미있고 확실히 흥미진진하다. 단지, 그 속에 있는 거대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현실과 매치되고 언제 현실에서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런 불합리한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냥 독재라면 탄압이 있어도 저항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거대 자본주의는 돈으로 협박한다. 내가 돈을 주지 않으면 너희 가족은 무너질 거야, 우리 쪽에서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게 만들 거야, 내 돈이 있어야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나에게 반기를 들면 돈으로 너희 가족 돈을 뺏어갈 거야...
 더 스토어가 지역을 파괴하는 것과 더불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며 현재 청년실업 문제를 생각해보게 했다. 빌의 딸인 섀넌과 서맨사를 보면서 학생과 곧 졸업을 한 사회 초년생들이 거대 자본 아래에서 얼마나 처참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 느껴졌다. 학생들은 온갖 부당 대우를 당하고도 어물쩍 넘어가는 건 고사하고, 온갖 부정스러운 면들을 사회 경험이라고 배우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도 하겠지만, 그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익숙해진다면 한 인간에게 거대 자본이 영향력을 미친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들은 그 강도가 더 심하다.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성인이라는 이유로 보호 받지 못하는데다, 집단이라는 아래에서 개인에 대한 걸 철저하게 짓밟히며 인격모독을 당하고 심지어는 자본주의의 상품이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현시대의 청년들은 거대 자본 아래에서 낭만을 잃어버리고 개인이라는 걸 부정당하면서도 상품이되지 못하면 방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대 자본이 그들을 잠식하면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예전에 갖고 있던 재능은 거대 자본 아래에서 쓰이지 못해 퇴화 되고, 거대 자본에서 일하는 기술만 익힌 더라 그 밑에서 일하지 못하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데다, 꿈과 희망이 있던 시절의 낭만은 철저히 부서져서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어른들이 그 시절에만 즐기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괜히 말하는 게 아니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게르만 민족주의의 부흥이라는 과거의 영광, 즉 과거 지향적인 슬로건으로 독재를 구축했다. 그런데 현재는 개발과 이익 추구라는 미래 지향적인 슬로건을 내건 독재가 나오려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향한 개발과 성장은 어떻게 보면 중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를 자유롭지 못하고 지배당하게 하면서도 멋진 미래를 꿈꾸는 것은 모순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면 차라리 발전이 안 되는 편이 낮다. 우리는 멋진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현재의 세상이 불공정하게 파괴되지 않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기업들이야.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고, 일류와 제일 영리한 사람들을 고용할 여유가 있는 자들이야 합법적으로 게획을 실행하기 위해 더 능률적이고, 더 잘 운영하고, 더 잘 조직되어 있어. 망할, 기업들은 정치적 호의가 필요하면 정치가들을 매수해 버릴 수도 있어.-140p

 거의 모든 것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졌지만,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인간들은 고분고분해지고 쉽게 이용당했다.-289p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4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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