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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기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관 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는 의외로 공포물을 맛깔나게 쓴다. 그가 쓴 살인귀라는 소설은 온갖 잔혹 표현을 서슴없이 쓴다고 들어서 국내에 들어올 수나 있을지 관심의 대상이다.
공포 단편집인 안구기담은 초반부터 아름다운 공포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아야츠지 씨의 공포성향은 절대 어디가지 않는다. 뭐, 아름답기는 아름답다. 단지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보면 전혀 아니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이 단편집의 묘미는 전부 다른 내용의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공통된 사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맥거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재생
알콜 중독이었던 나는 우연히 병원에서 지금의 아내와 만나 결혼하게 된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지내던 중, 아내는 뜻밖의 비밀을 말하게 되는데...
마치 이토 준지의 토미에를 감동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분명 헌신적인 사랑은 사랑인데 토미에에서 나오는 비뚤어진 사랑 같으면서도, 어딘가 감동적인 이상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뭐, 어떤 설명을 하든 전반적으로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기괴한 기담이다.
아마 이 단편집이 전체적으로 어떤 성향인지 잘 알게 해주는 내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나마 수위가 좀 낮은 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요부코 연못의 괴어
아내의 유산과 그로 인한 불임으로 적적함을 느끼던 나는 뒷산에 있는 요부코 연못에 낚시를 하러 간다. 미끼도 없이 마냥 시간만 때우던 중, 빈 낚시바늘에 기이한 물고기가 잡히게 되는데...
마치 생물의 진화를 신비롭게 나타낸 내용이었다. 신비롭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목격한다면 경이롭다기 보다는 공포가 먼저 엄습하고도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계속된 진화의 끝에 나올 생명체에 대한 불안감은 그 아무리 경이로운 존재라 할지라도 경계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 특징이다. 그러니 다른 단편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겠지요..?
특별요리
남들이 먹지 못하는 혐오음식을 즐겨먹는 나. 대학 동창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는 선배에게 취향에 맞을 한 맛집을 추천받는다. 그 후, 우연히 아내와 외출을 했다가 맛집에 들리게 되는데...
내용 전반적으로 괴식이 많이 나오지만, 결론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고찰을 넘어선 공포다. 이전에 읽은 토탈호러에 실린 흉포한 입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흉포한 입은 애초부터 정신나간 전개라 미친 놈의 끝을 본다는 느낌이고 특별요리는 거기에 뭔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게 차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이상한 것들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게 많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게 도가 지나치면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일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아마 기어코 나 자신에게 까지 예술을 들먹여야 감이 잡히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결론적으로 예술을 빙자하며 나 자신까지 파괴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인 나. 파티 장소로 가는 길에 있는 한 가게에는 그녀가 자주 들여다보는 칼이 있었는데, 오늘은 칼이 없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기억의 파편. 이 모든 것은 파티 장소에서 알게 되는데...
상당히 기묘하면서 강렬한 잔혹 묘사가 특징인 단편이다. 모든 단편을 통틀어 잔혹묘사가 가장 심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가장 행복하게 보일 것 같은 생일선물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말이다.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무너져 있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한 구석을 강하게 느꼈다. 어쩌면 모든 게 환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분명 생일이고, 선물을 받았고, 가게의 칼은 없어졌다. 이 확실한 3개의 구성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상의 현실은 비현실을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합쳐져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는 건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이브인 만큼 분명 분위기는 훈훈하다. 단지, 상황이 전혀 훈훈하지 않아서 문제지.
철교
고등학교 동창인 두쌍의 커플은 여름을 맞아 열차를 타고 놀러가는 중이다. 야간 열차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이즈미는 곧 지나게 될 철교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전개에서 오는 반전이 묘미다. 여행가는 도중에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무슨 일이 터지는 클리셰는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역시 전개상으로는 비슷하지만, 주제가 되는 무서운 이야기 속에 있는 섬뜩함과 훈훈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교차되는 게 정말 기묘하다. 그리고 앞서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약간 애들 장난 같은 느낌이라 쉬어가는 타임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인형
소설가인 나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게 된다. 이후, 요양차 고향집에 내려가서 밀린 원고를 집필하던 중, 강가에서 버려진 기괴한 인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인형이 주제로 나오는 공포는 수 없이 많이 봐서 질리고도 남겠는데, 여기에 나오는 인형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 이 인형과 주인공의 삶이 교차되면서 나타나는 비현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과연 같은 인간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도 존재하는 가.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나는 죽은 것이고, 지금의 나도 곧 죽을 것인가.
또,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인가.
인생의 굴레를 깊이 따져보며 한 생각은 정말 기괴한 장면을 상상하게 했다. 내 뒤로 쌓여 있는, 나와 똑같은 한편 나이가 다른 수 많은 시체. 그리고 내 앞으로는 지금의 나를 죽이려고 대기하는 미래의 나.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망가지면 이런 것일까?
안구 기담
출판사에 다니는 나는 어느 날, 동창으로부터 한 소설 원고를 받게 된다. 한밤 중에 혼자 읽으라는 기이한 말이 적힌 편지와 함께 배달된 원고의 제목은 안구기담. 대학 조교수인 주인공이 요양겸 동창회겸 고향 마을을 방문했다가 기이한 일을 겪게 되는 내용인데...
전반적으로 주인공이 받은 원고인 안구기담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제목 그대로 내용 곳곳에 사람의 눈이 굴러다녀서 보기에 혐오스러운 장면이 꽤 있다. 보통 눈이라고 하면 시선에 대한 공포가 많은데 여기서는 눈 자체, 즉 안구가 공포의 대상이다. 아니, 눈이 내뿜는 시선과 함께 눈의 외형이 주는 혐오감이 같이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눈으로 시작해서 눈으로 끝나는 와중에 숨겨진 반전은 현실과 환상이 이어지면서 끝나지 않은 시선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시선을 느끼면 누군가 본다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그 시선이 많다면 보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 테고. 하지만 그 많은 시선이 사실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리고 누군가라는 존재가 아닌 눈이라는 물체 자체가 본다는 것이라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건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서 느끼는 침입자에 대한 공포가 아닌, 눈 자체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걸 읽으면서 내용 속에 언급되는 이 문장을 꼭 잊지 말자. 정말 묘할 것이다.
읽어 주세요.
한밤 중에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