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호러 1
로버트 블록 외 지음 / 서울창작 / 1993년 6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나왔던 책 치고는 상당한 파괴력이 느껴졌다. 괴물 같은 상상력에서 나온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괴물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거기에 최근에 타계하신 H.R 기거의 그림들이 들어 있어서 각 단편들의 기괴한 분위기를 살리기 좋았다.

 책 뒷편에 있는 역자 후기를 보면 그 당시에 낸 책 치고는 각 단편과 작가들에 관한 해설과 대체적인 평가들이 실려 있어서 그냥 무작정 만든 단편 모음집 수준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실려있는 작가들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흉폭한 입_고마쓰 사쿄

 분노에 찬 한 남자가 세상을 파괴할 짓을 한다며 공헌한다. 그래서 그가 준비한 것은 자동수술기계와 각종 양념과 요리재료인데...
 아마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 이루어지는 내용인데, 이 단편 하나로 장편에 가까운 충격을 주는 수준이라 심히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그 동안 사람의 본질을 다룬, 폭력적이고 분노에 찬 공포를 많이 봤지만 이건...
 또한 인공장기에 대한 혐오스러운 이면도 같이 볼 수 있었다. 부분적인 것이라면 몰라도 교고쿠 나츠히코의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의 모든 것을 기계로 대체한 모습 만큼 손대면 안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선사시대_르네 레베테즈-코르테스

 어느 날부터 사람이 집단적으로 결합돼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점차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해가는데...
 집단이라는 개념을 이런식으로 기괴하게 나타낸 건 처음보았다. 딱 B급 공포영화인 휴먼센터피스를 제대로 표현하면 이럴 것 같다.
 집단이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사람 사이의 개인과 집단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집단에서 개개인의 생각이나 존재가 의미 없어지고 집단 그 자체로 기능하는 요소가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집단이 제 기능을 하냐 못하냐 일 것이다. 개인보다 못한 집단이라면, 그리고 그 집단이 넘쳐나는 세상이라면, 제 2의 새로운 선사시대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공개증오대회_스티브 알렌

 한 스타디움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타디움 한가운데에는 죄수가 있고 시장은 사람들에게 죄수를 증오하라고 하는데...
 새로운 선사시대가 집단이라는 개념을 진화형태로 표현했다면, 공개증오대회는 집단의 정신적 공유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나타나 있었다. 이전 작품보다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은 없으나 집단이 개인을 죽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적인 것이라 그런지 다소 섬뜩했다.
 원래 직접적인 상해보다 감정적인 상해가 치료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은 가. 한 개인이 감정적 상처를 입으면 후유증이 남을까 말까 하는데, 집단, 그것도 한 도시의 전체, 더 크게 확장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감정적 상해를 준다면, 그 상해가 실제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샌드킹_조지 RR. 마틴

 사이몬 크레스는 거친 애완동물을 보면서 유희를 즐기는 불한당이다. 어느 날, 크레스는 새로운 애완동물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샌드킹이라는 걸 보게 되는데...
 미래적 배경으로 지능적인 동물로 인해 벌어지는 재난 같은 인재가 벌어지는 내용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인간이 오만하게 신의 행새를 하다가 맞는 파멸을 보면서 신이라는 건 함부로 행세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으로서 생명을 다스리는 게 인간이 장난으로 생각할 것이 아닌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을 원망하는 생명들이 직접 그 신을 대면할 때 일어날 참극이 실로 끔찍하다고 밖에 말할 게 없다.

지옥으로 가는 열차_로버트 블록

 철도원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거리를 떠돌던 마틴은 한밤 중 역에서 의문의 기차에서 내린 차장을 만나 인생을 건 거래를 하게 되는데...
 그 동안 봤던 단편들 중에서 가장 잔잔하고 가벼운 내용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언제일까. 또 그걸 자각할 수는 있을지. 행복하다 생각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거야 말로 지옥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해도 결국 행복이란 무엇일까, 는 쉽게 정의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쉽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온갖 실패로 인한 생지옥이 펼쳐지기 이전, 그러니까 그 실패하기 이전의 과정이라면 행복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옥으로 가는 열차가 바로 모두가 염원하고 바라는 행복인 것일테다.

90억 가지 신의 이름_아서 C. 클라크

 티베트 수도승이 컴퓨터를 구입하러 미국을 방문한다. 목적은 90억 가지의 신의 이름을 효율적으로 적기 위해서라는데...
 종교와 과학(또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용으로 지옥으로 가는 열차만큼 전개가 잔잔하나 작가가 작가인 만큼 스케일이 장난아닌 충격적 진실이 숨겨져있다.
 작중 나오는 컴퓨터가 마크 V인데, 이게 당시로서 가장 빠른 컴퓨터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컴퓨터로는 얼마나 빠르게 일이 벌어진다는 건지 상상이 안간다. 아마 먼 미래에는 1초도 안 되는 속도로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가 자각하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게 가능하다는 걸까...

만약 피에 주린 살인마가_로버트 셰클리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이 수술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그런데 자기를 살린 게 잘못이라면서 화를 내는데...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정말 꿈의 기술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이 전쟁에 쓰인다면 어떨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인간이 도구로 전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만약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못한다면...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일지.

제로아워_레이 브래드버리

 밍크는 아침부터 침략이라는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밍크의 엄마는 새로운 놀이를 하는 자녀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으로 알지만, 알고보니 그 침략이라는 놀이는 미국 전역에서 아이들이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순수함이 역으로 작용하는 듯한 분위기로 평화로운 일상에서 외계의 침략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보통 외계침략물을 보면 대체로 성인들이 동조하는 경향을 보았다. 그들은 명예를 가지고 협조하는 편이 많지만, 여러 행위들이 의심을 사기 시작하면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 아이들에게 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놀이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할 것이다.

해리슨 버거론_커트 보네커트 2세

 모든 것이 평등한 세상. 조지 버거론과 부인은 텔레비전을 보던 중, 국가전복 혐의로 체포된 아들 해리슨 버거론이 방송국에 나타나 자신이 황제라고 주장하는걸 보게 되는데...
 현대에 만연해진 평등의 의미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 소나 평등, 평등을 외치고 다니는 세상이다. 하지만 정당하게 요구하는 평등이 있는 반면 부당하게 요구하는 평등도 있을 것이다. 그런걸 다 들어주는 평등이 있다면 아마 이런 세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등만큼 끔찍한 것은 없을지 모른다. 만인이 외모도 평등, 능력도 평등, 힘도 평등, 심지어 생각까지 평등해진다면 그야말로 숨막히는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싶다.

블러드 차일드_옥타비아 버틀러

 틀릭인이 지구인을 소유물로 다루는 시대. 하지만 토이틀락의 지구인 보호 운동으로 보호구역도 지정되는 등, 지구인과 틀릭인 간의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머니는 토이틀락을 혐오스럽게 보는데...
 마치 에일리언을 고차원적인 논쟁거리로 다룬 내용처럼 보였다. 영화 속의 에일리언은 거의 짐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혐오스러워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에일리언이 사람과 같은 지능에 사람을 존중해주고 공존까지 바란다면 어떻겠는가.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방어에서 나오는 혐오감정과 가족과 같은 친근한 감정이 대립하는 걸 보며, 이렇게 어려운 논쟁은 난생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배자라던가, 무지막지한 외계 괴수라면 차라리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가족처럼 지내고, 나를 존중하며, 나의 건강과 안위까지 신경써주는 외계생명체라면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을까?
 외계에 대한 공포로 실려 있지만, 침략이라던가 지배적인 느낌보다는 외계와 인간 사이에서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적인 공포라고 생각한다.

도시_레이 브래드버리

 2만년 동안 잠들어 있던 흑요석 도시. 이곳에 방문자들이 찾아오고 도시는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상당히 코스믹스러운 느낌의 단편이었다. 마치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이라던가, 아컴이 통째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식민지 개척 당시 원주민을 학살한 개척민 사회를 비판한 것처럼 느껴졌다. 개척지의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고 텅 빈 땅만 남는다. 그 땅은 그저 허허벌판이겠지만, 알고보면 원주민들을 기억하고 개척민들이 벌인 이들을 목격한 산 증인이다. 만약 땅이 원주민들의 복수를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신천지의 악몽_F.L 월레스

 개척행성에 도착한 개척민들에게 첫 날 아침부터 입고 있던 옷들이 전부 소멸된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이윽고 범인은 행성에 가장 많이 분포된 설치류였으며 개척민들은 이들을 어떻게든 몰아내려 하는데...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외계에 대한 공포를 느낀 내용이었다. 외계를 배경으로 해서 그렇지 거의 생물의 진화를 다룬 공포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우리도 그렇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문제는 이 진화라는 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된 것인데, 환경이 변화 할 때마다 그에 맞춰서 바로 진화하는 생물이 있다면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진화 끝에 나올 생명체란 과연 어떤 모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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