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5
백상준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4월

 철처하게 우리나라에 좀비가 나타났으면 일어날 법한 일들이 나타난 작품이었다. 미국처럼 총을 들고 거리를 누비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고, 수많은 좀비들을 뚫고 탈출하는 용감한 사람도 없다. 다들 자기만 살려고 하는 이기주의자와 겁쟁이 뿐이다. 게다가 연작형식이라서 전작에서 어떤 인물이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일이 다음 이야기에서 또 다른 사건을 발생시키도 한다.

 정말, 우리나라만! 가능한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이 나타나 있었다. 그래서 미국 스타일의 좀비소설을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약간 심심할지도 모른다.

섬 

 제 1회 ZA 공모전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던 작품의 내용을 늘린 것이다. 단편이었을 때보다 주인공의 생존기간이 더 길어졌고, 세세한 사건들과 충격이 많이 추가되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로 생존하는 남자다 보니, 보면서 은근히 공감이 되는 점이 많았다. 눈에 보이는 물건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감상과 한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 상표와 인물의 이름을 사용해서 리얼리티를 살렸다고 본다. 평소 일상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도, 좀비가 나타난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작중의 주인공이 한탄하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솔직히 분량이 늘어난 만큼 늘어지는 느낌도 적지 않게 있다. 게다가 가면 갈수록 주인공이 뭘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생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미처가는 것인지.

 일반인이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하고도 남을 답답할 짓을 하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읽다보면 주인공을 겁쟁이에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욕하고 싶을 것이다. 늘어지는 점이 분위기를 살리는 장점이자, 지루하게 만드는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결말은 단편이었을 때와 다를바 없지만, 늘어난 분량 때문에 마지막 결단을 내린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천사들의 행진

 좀비가 나타나서 아수라장이 된 아포칼립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진행되서 흥미로웠다. 물론 등장인물들은 좀비를 피해서 살아남을려 하지만, 좀비를 위협의 요소가 아닌 구원의 요소로 여기고 있다. 비록 내용이 짧은 편이지만,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의 조합과 여성이라는 점을 볼때 사회적 약자를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였다. 섬에서 나오지 않았던 생존자들 간의 갈등과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인물의 내용이 많아서 썩 유쾌하지 않기도 하다.

 사회에서 차별당하며 대접을 못받는 이들이 세상이 멸망하고 나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종말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회가 없어지는 것이 더 자유로워 지는 것일지 의문이 든다. 만약 좀비가 아닌 다른 요소로 종말이 와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거짓말

 좀비소설에서 생존하는 장면 다음으로 빠질 수 없는 전투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한국식 군대 얘기를 비롯한 절차를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들어나 있었다.

 이전 작품에서 많이 나오지 않았던 전투 위주의 장면이 나온다. 주로 전반부가 군인들이 서울 시내에서 좀비들과 전투를 벌이고, 후반부는 부대가 거의 전멸하고 남은 생존자들의 얘기가 나온다.

 군부대에 남은 생존자들은 소대장의 지시대로 일을 하며 상부의 명령을 기다린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전을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해지고, 소대장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기만 한다.

 상황 파악못하고 나오는 군대문화의 문제점이 주로 부각되기는 했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 지도자의 복잡한 심정이 들어나 보이기도 하였다. 군대문화에 대한 내용은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군대문화 속에 숨어있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반부에 가서 나오는 소대장의 속앓이는 지도자의 고충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상부에서는 아무런 지시도 없고, 거기에 신뢰까지 잃어가니 이래저래 부담감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힘들다고 내팽개치고 싶어도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잃고 혼란이 가중될 것 같은 두려움에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말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희망적으로 끝난다. 그래서 작중의 인물들처럼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