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추리와 꽃의 조합은 신비로웠다. 보통 추리는 사건 이후에 씁쓸함이 느껴지면서 주인공만 무대에 남게 되는 분위기라면, 이 화장 시리즈는 범인부터 피해자까지 모두가 무대를 떠나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분위기였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추리도 아름다워 진 것일지도 모른다.

 꽃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배경으로 서의 역할이 아닌, 사건의 중요 역할로 나와 주연급의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인물들처럼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왠지모르게 꽃의 향기가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등나무 향기

 

 조시야가 거리의 홍등가 유곽에서 일하는 오누이라는 여자는 고향에 병든 남편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약값으로 힘들어 하던 오누이는 나와 같이 살기로 한다. 죽은 나의 아내가 떠오르는 옆집에 있는 대필가 이가와 규베이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조시야가 거리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가 발견되고 목격가의 증언으로 대필가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나와 오누이는 대필가를 위해 위증을 하려 하지만, 결국 대필가는 자살한다. 이후 밝혀진 진실은 충격적이었는데...
 일본의 유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유곽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사연과 대필가가 생각한 그녀들의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오누이, 그리고 대필가가 얽힌 관계는 참으로 묘하게 느껴져서 이것이 렌조 미키히코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 시리즈 답게, 이 작품에서는 꽃으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장례식인데도 아름답게 보여서 신비로웠다.

 

도라지꽃 피는 집

 

 '롯켄바시'라는 유흥가의 뒷골목에 있는 개골창 앞에서 도라지 꽃을 쥔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가 가까운 유곽에 들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사는, 그 날 후쿠무라라는 남자 유곽에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유력 용의자로 떠오른 후쿠무라의 단골 창기를 조사하던 형사는 그녀의 방에 있는 도라지꽃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역시 유곽에 얽힌 이야기이지만, 등나무 향기와는 달리 비극적이라는 점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앞서 나온 등나무 향기는 창기들의 힘든 삶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들이 나와서, 훈훈한 분위기였다. 반면, 도라지꽃은 창기들의 힘든 삶 그 자체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남에게 맞춰서 생활해야하는 어린 창기의 서글픈 감정이 살아 있었다.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려는 정의의 사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맞이해서 더욱 더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오동나무 관

 

 야쿠자 조직 중, 소규모인 가야바구미에서 네 손가락 밖에 없는 누기타라는 남자의 수발을 들어주게 된 나. 어느 날, 누기타는 한 여자와 밤을 보내라고 부탁을 한다. 영문도 모른채 누기타의 부탁을 계속 들어주던 중, 인근의 다른 조직과 세력 싸움이 벌어지고 누기타는 나에게 가야바구미 두목을 죽이라고 하는데...

 한 여자로 인해 벌어진 치열한 사랑 싸움으로 인한 비극이 나타난 작품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꽃은 살해동기로 서 나오는데, 그 동기가 예상치 못한 것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사랑의 잔인한 굴레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인한 사람을 소심하게 만들고,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게 할 정도로 사랑의 힘은 대단했던 것이다.

 굴레가 다시 비극을 일으키기 전에 끊어버리고, 피를 보지 않은 사랑이 시작된다는 느낌의 결말은 감동적이었다.

 

흰 연꽃 사찰

 

 어머니가 한 남자를 죽이는 기억을 간직한 나. 어린시절, 나는 궁금하면서도 아들에게 비밀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에 쉽게 털어 놓지 못한다. 그렇게 서서히 성장을 하면서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출생의 비밀에 얽힌 살인사건이라서 드라마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꽃이 트릭으로 사용되서 놀라웠던 작품이었다.

 한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해서 성년기까지 내용이 진행되서, 감동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보면 안 되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 목격한 것 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숨긴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사건의 진실 속에 숨겨진 어머니의 지극정성은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과 똑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천 정사

 

 1920년대, 일본 천재 가인 소노다 가쿠요가 일으킨 두 번에 걸친 정사 미수 사건으로 두 명의 여인이 죽고, 소노다는 그 정사 사건을 다룬 가집을 남기고 자살한다. 이후, 소노다의 친구가 정사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연재하다가, 소노다의 가집에 쓰인 시구를 해석하면서 진실을 알게 되는데...

 시 구절을 해석하면서 진상을 밝히는 구조에서 암호문을 푸는 것 같은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언가를 숨기려는 의도 없이 소노다가 있는 그대로 쓴 것이라서 암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한 남자의 처절한 사랑이 비극을 맞이한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오직 소노다만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더 그렇다. 사랑을 하게 되면 못할 짓도 한다지만, 소노다 같은 경우는 아무리 해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욱 더 비참하게 보였다.

 결말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나오던 인디언 노래가 생각났었다. 다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에서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공포의 구절이었고, 소노다의 시는 사연이 담긴 아름다운 구절이라는 것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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