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윌리엄 피터 블래티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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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다. 평온하던 일상에 서서히 파고들어 예고도 없이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혼란을 초래한다. 이걸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다양한 해석이 시도된다. 대체로 현대 의학이나 학문으로 접근하여 이전 사례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지 비교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걸로 전혀 설명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 원론적인 설명으로 현상 유지를 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 악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데, 믿음만 불분명해 지는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여기서 과연 믿음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리우드 배우인 크리스는 어느 순간부터 딸 리건의 주변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리건이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며 일상이 엉망이 되어 간다. 병원에서는 신체적 이상이 아닌 정신적 이상으로 진단을 내리며 점차 포기 상태가 되어간다. 결국 남은 선택인 종교의 도움을 구하고자 인근 대학 예수회 소속 사제인 데이미언 캐러스를 찾아가게 되는데...

영화가 먼저 유명하다 보니 원작 소설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제목 때문에 오컬트와 악령 퇴치 관한 내용으로만 예상 되겠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그렇게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사실상 믿음의 대한 논쟁을 다룬다. 믿음이란 단어 자체는 굉장히 쉬운 의미다. 그러나 실제 행동으로 가면 보장이 안 되는 애매모호한 것이 되기도 한다. 확고한 믿음으로 이어지기까지 거쳐야 되는 단계가 생각보다 많다. 이 단계 마저 진행되지 못하고 자체적인 판단 선에서 끝나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믿음의 문제는 꽤 복잡하다.

잔잔한 일상에 이변을 발생 시켜 섬뜩함으로 몰아치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공포 장르에서는 보통 처음부터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마련이다. 이상한 소문이나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 수상쩍은 지역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프롤로그부터 전조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긴 있지만 구체적인 인상은 아니다. 애매하고 단순한 분위기. 쉽게 오해할 법한 사소한 일. 그러다 갑자기 예고 없던 폭풍우가 몰아친다. 리건이 점차 망가져 가는 모습은 상당한 충격을 주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려던 모든 이들을 경악 시키며 상식을 파괴한다.

엑소시즘을 시도하게 되는 과정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내서 꽤 놀라웠다. 그냥 무작정 악마가 들려서 괴이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성직자가 슈퍼히어로처럼 금방 나타나 퇴치하는 그런 게 아니다. 현실적인 가능성에 대한 모든 검토 과정을 계속 나열해서 끊임 없이 의심을 하게 만든다. 진짜 악령이 들려서 종교인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정신질환이라서 의사를 불러야 되는가. 최근 연구 결과 뿐만 아니라 먼 옛날부터 기록된 논문과 사례를 거슬러 올라가며 비교하기에 무작정 단정 지으면 안 되는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작중 주요 인물인 캐러스 신부가 종교인이자 의사 경력을 가진 특이점 때문에 더 그렇다.

물론 이 과정이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당장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망설이는가. 신부라면서 믿음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작중 행적을 보면 캐러스 신부는 포기하고도 남을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뭐든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다. 믿고 싶은데, 믿을 수가 없다. 사실상 이게 문제라고 보면 된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믿음이 존재야 한다. 믿음을 믿음으로서 보답하기란 그래서 힘들다. 어디서부터 시작될지 알 수 없을 최초의 믿음이 발생하고 움직여야 눈으로 보이는 결과와 진정한 의미로서의 믿음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포기하지 않고 버텨줄 시간과의 싸움. 이게 이 작품에서 말하는 믿음의 핵심이나 다름없다. 악은 존재한다고 금방 믿으면서 그 반대의 선은 왜 쉽게 믿지 못하는가. 분명 악이 존재하니 그 반대에 해당되는 것 역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건 악은 너무 쉽게 찾아오는 반면 선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언제 닿을지 알 수 없는 믿음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게 선이다. 이 소설에서 그 힘겨운 과정과 결실을 보여주는 부분이 바로 엑소시즘이라고 본다. 공포 장르로서 다룬 자극적인 흥미 요소가 아니라 믿음의 증명에 해당되는 숭고한 대결 장면인 것이다. 이 대결의 결과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점을 많이 남기지만 이거 하나 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증명하고자 온 몸을 바쳐서 노력했다고.

단순히 크게 흥행한 정도가 아니라 전설이 된 영화의 원작 소설은 확실히 뭔가 다르긴 다르다. 이걸 이제서야 접하게 된 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심도 깊은 믿음의 문제를 그냥 악령 퇴치라는 종교적 신세계로만 알고 지나갔을지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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