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레 매그레 시리즈 19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극적인 드라마 같은 일이 종종 있다. 늘 멀리서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 같은 게 아니라 배경에 지나가는 엑스트라나 무대 밖에 있는 관객일 뿐이라고. 그러나 드라마란 특정한 이들의 전유물 같은 게 아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귀찮고 힘겨운 일인데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런 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드라마다. 온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상관 없다. 자신의 일상을 지켰다면 그것 만으로 가치가 있으니까.

늦은 밤,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간 매그레를 찾아온 조카 필리프. 파리 경찰청 형사인 그는 마약 사건 수사로 어느 카바레 주인을 감시하기 위해 가게 안에 숨어들어 잠복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총성이 들리며 카바레 주인이 죽은 채로 발견됐고, 당황한 나머지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을 맨손으로 집어 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대로면 필리프가 범인으로 체포될 상황이기에 매그레는 다시 파리로 향해 수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퇴직한 형사가 사건을 수사하기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는데...

그 동안 경찰로서 수사를 하던 매그레가 개인으로서 사건에 끼어들고, 가족이 엮인 내용이다 보니 이렇다고 할 수 있다. 매그레 개인의 사건이자 드라마. 늘 사건 안에서 나타나는 드라마를 지켜보던 입장에서 이제 당사자가 된 거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작가는 매그레 반장 시리즈의 마지막은 역시 매그레 본인에 대한 드라마로 해야 적절하겠다고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출간 당시에는 19권이 마지막이었지만 8년 후에 다시 시리즈를 재개하며 75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매그레 본인이 사건의 당사자이자, 해결사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됐다고 본다.

사실상 범인이 미리 공개된 상태로 진행되는 수사임에도 만만치 않다는 걸 계속 느끼게 한다. 아무런 권한이 없기에 이전 같으면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을 행동들을 할 수가 없다.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게 전부인데, 이것마저 악의적인 방해를 받는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 얽힌 용의자들은 매그레의 수사 방식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일상에 숨겨진 사연이나 드라마 같은 건 일절 없는 비열한 악당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구식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를 정도니 매그레가 심리적으로 동요하게 될 수밖에 없어진다. 자신이 없는 사이 현장 분위기가 많이 바뀐 건가. 이제 한물 갔다는 말을 듣게 될 정도로 스스로가 형편 없어진 건가.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임에도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왕년의 경력이 있다 보니 이전 동료들에게 여전히 신뢰도는 보장되고.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본연의 스타일을 유지한 채. 전혀 상대해 본 적 없는 범죄자를 공략하는 과정은 상당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기존 작품들에서 볼 수 없던 범죄자와 정면 승부라는 점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매그레 특유의 사람을 판단하는 심리 분석으로 예상치 못한 부분을 파고들어 결정타를 날린다. 세상의 흐름에 억지로 맞추지 않고, 자신 만의 스타일로 무모하게 도전한 거나 다름없기에 상당히 극적으로 보였다.

언제나 보아온 익숙한 주인공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었을 것이다. 매그레 역시 하나의 일상을 가진 개인이자, 수사를 맡았던 사건 속 인물들과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분명 소설 상에서는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사건 속 관계자들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조연이나 지켜보는 관객일 뿐이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갑자기 끼어든 낯선 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제 경찰이 아닌 그는 관객석이나 무대 한쪽 옆이 아닌 중앙에 서게 됐으니 진짜 주인공이 된 셈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일상을 지킨다는 사명을 가지고. 크게 특별할 건 없다. 화려한 조명이 아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전구 불빛으로 자신을 비추더라도 상관 없다. 가족이 모두 무사하고 자신 역시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삶이면 그게 바로 드라마다. 그러니 언제나 관객일 뿐이라 생각하지 말고 자신 역시 주인공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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