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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사람이란 무엇으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살아 있다고 사람은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데도 사람의 도리를 하지 않는 무뢰배들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보면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나름의 기준이 나온다.
사려와 분별력이 있어 말이 통한다면 산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사령이라는 것은 분별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법입니다. 남은 것은 한 밖에 없지요.
허나 무위이든 뭐든, 망자라는 존재는 몇 번이든 같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맞닥뜨리는 일 자체가 불행한 것이지요.-328p
이걸 보면서 생각했다. 사리분별이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데 살아 있다. 그저 한 밖에 없는 것.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한 자각 없이 그저 반복하는 것. 이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이치에 어긋났으니 항간에서 괴이라 부르는 존재나 다름 없다. 이걸로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이 구분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본다.
노뎃포
괴담수집가 모모스케는 친형이자 시골 무사인 군파치로의 부름을 받고 하치오지로 향한다. 군파치로의 말로는 사인을 전혀 알 수가 없는 시체 때문에 불렀다고 한다. 시체는 군파치로의 동료 무사로 이마에 돌맹이가 박혀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는 상태다. 이걸 보고 사람의 짓이 아닌 불가해한 존재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인데...
무언가 날아온다.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순간 정체불명의 공포가 되버린다. 이런 점이 반영된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 대체로 시야만 가리거나 그걸 넘어서 요상한 방식으로 해를 가한다는 식이다. 옛날 관점이 아닌 지금에서 봐도 이런 것이 있다면 충분히 무서울 만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만 봐서는 금방 떠오르지 않지만, 점차 이러한 것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한 평생의 죄를 씻는다는 무게를 겪은 자와 반대로 죄에 대한 반성 없이 살아가는 자의 엇갈린 인생을 보며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나쁜 짓을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그만일까. 아니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된다면 아무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줘도 되는 걸까. 명확하게 선행과 악행을 확정 짓기 어려운 상황을 제시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애매한 경우에서 발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융통성이라고 본다. 언제나 올곧게 판가름 내리며 살기 힘든 것이 세상이니까.
고와이
에도 외곽의 고즈카하라에 위치한 사형장으로 향한 모모스케. 분명 자신이 볼일이 있어서 온 것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한 기분에 근처 찻집에 들어갔다가 인형사 오긴을 만난다. 둘의 목적은 동일했다. 최근에 사형 당해 효수된 희대의 악당, 이나리자카 기에몬의 목을 보는 것. 특히 모모스케의 목적은 특별했다. 다름이 아니라 기에몬은 불사신이라 죽지 않는다, 효수 사흘 째에 기에몬의 목이 눈을 뜬다, 라는 소문 때문이다...
범상치 않은 인물에게는 언제나 기이한 소문이 돌기 마련이다. 선인이라면 설화나 전설이겠지만, 악인이라면 분명 괴담일 것이다. 생전에도 사람 같지 않은 것이니 죽어서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물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긴 발상이라고 해야겠다. 이게 보통의 괴담과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건 이거다. 단순 괴이한 일이 아니라 실생활을 깊이 파고드는 현실적인 위협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소생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이게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비슷한 것들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줘서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의사의 실수 같은 오진이 아닌 이상 대체로 되살아난 시체는 괴물 취급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 시체가 어떻게 움직이냐는 경우다. 먼저 여기에 속하는 경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좀비다. 현대에 들어서 다양하게 각색되긴 했지만, 원전에 나온 생전의 의식 없이 그저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는 건 공통된 부분이다. 다음은 좀비와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중국의 강시다. 이 경우도 몸이 굳어서 두 발로 뛰어다닌다는 점과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른 무언가로 변화한다는 점만 빼면 역시나 생전의 의식이 없는 되살아난 시체라는 점은 동일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는 이렇다. 생전의 의식이 그대로 있는 상태로 되살아난 시체. 그것도 목이 베여 죽은 시체다. 이건 대체 뭐라 해야 할까? 단순히 되살아난 사람이라 하기도 말이 안 되고. 생전의 기억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기이하고. 게다가 선인도 아닌 지독한 악당이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신분제도의 맹점을 이용을 한 지독한 사건을 보며 어느 시대나 당시의 법률과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잘 사는 계급이 못 사는 계급을 이용해 먹는 일이 말이다. 요즘에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잘 해결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옛날이라면 얼마나 심각했을까. 고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오히려 보복을 당하고도 남는 무서운 현실. 이게 시간이 걸려도 영원히 해결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아마 불멸의 악의, 괴기 그 자체로 불릴 만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불멸을 자처하는 악의라도 영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에는 빈틈을 보이고 그 틈을 이용할 방법이 생긴다면 퇴치 당하게 되는 것이다.
히노엔마
책장수 헤이하치로부터 어떤 여자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모모스케. 사연은 이렇다. 나고야에 있는 수운 중개상인 가네로시야 교에몬은 인품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여색을 밝히지 않도록 조심하던 교에몬이었지만, 10년 전 교토 출신의 어떤 여자에게 빠지게 된다. 반대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례를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혼례식 당일에 여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정신을 놓고 살던 교에몬은, 사라진 여자가 재작년 에도에서 목격됐다는 말에 완전히 미쳐버려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했다는데...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에 꽤 자주 나오는 소재다. 대체로 어느 한 쪽이 매달리다가 행복해 지거나, 아니면 반대인 비극으로 끝난다. 특히 비극인 경우를 보면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천차만별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보게 되는 편이지만, 사람 간의 일이다 보니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괴이한 일처럼 보일 만한 추찹한 사건도 있을지 모른다.
불길한 존재나 상징, 길흉을 따지는 미신은 어느 문화권에나 있다. 검은 고양이나 까마귀 같은 동물. 특정 날짜나 요일, 연도. 때로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사람과 장소도 그런 취급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거다. 명확한 근거가 있냐는 것. 그저 눈에 보이는 모습과 어디서 흘렸는지 모를 소문이 전부다. 물론 대부분은 이런 것이 미신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 알고는 있지만, 정작 눈앞에서 연관 지을 만한 일이 발생하면 흉흉한 소문이 퍼지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뭐가 됐든 간에 미신을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조장할 수 있고, 무고한 누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건 변함이 없다.
결과적으로는 안타까우면서 기묘한 사랑의 연으로 끝난 한편, 여전히 섬뜩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악의는 도대체 어디로 갔냐는 점이다.
후나유레이
모모스케는 아와지 섬에서 마타이치 일행의 일을 도와준 이후, 모처럼 여기까지 온 김에 시코쿠를 여행하기로 한다. 인형사 오긴도 함께 동행하던 중, 수상한 사람에게 미행 당하는 걸 느끼고 목적지를 급히 바꾸지만 이번에는 강도 무리를 만나버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낭인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이 자는 모모스케 일행이 미행한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다. 그는 우콘이라는 무사로 관직 자리가 걸린 밀명을 수행 중이라고 한다. 밀명은 이렇다. 그가 거주하는 기타바야시 번에서 노두참살이 횡행한 일이 있었다. 그 범인이 선대 번주 정실의 동생일지도 모른다며 찾는 중이라는데...
옛날에는 재난이 닥치면 자연이 내린 지벌이라고 여긴 편이다. 자연의 수호신이나 신성한 장소에 대한 업보로 내려지는 일종의 저주나 다름 없다. 이게 개인이 내리는 저주와 다른 점이라면 그 무게다. 일개 개인이라면 작고 단순하기에 어떻게든 막을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재난은 그렇지 않다. 오랜 세월을 쌓이고 쌓여 거대해진 흉한 기운이다. 도저히 사람이 노력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연적인 현상이라면 몰라도 인위적인 일이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을까? 그건 아마도 오랜 역사를 내려오는 증오나 다름 없다.
헤이안 시대에 있었던 내전인 겐페이 합전에서 패배해 몰락한 타이라 가문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많다. 후나유레이가 겉모습만 보면 단순 물귀신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세간에는 정체가 타이라 가문의 혼령으로 알려진 모양이라 이 부분이 핵심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괴이면 괴이라 여기면 그만이겠지만, 실존 했던 사람이 연관되면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 전에 죽은 실존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 후손이 있다면 그다지 달가운 일도 아닐테고, 여차하면 억울한 오해를 사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실제 역사와 얽힌 괴이로 인해 벌어진 거대한 악행을 보며 과거의 일로 생겨난 낙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옛날에는 이러했더라도 그 후손들 역시 똑같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역시 있다. 과거만 들여다 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 더욱 가치 있게 사는 방식을 찾으려 행동하기에 옛날 이미지 같은 건 이미 존재하지 않다. 그렇기에 과거에만 집착하고, 옛날 이미지만 떠올리게 만들려는 이들이야 말로 진짜 문제다. 과거의 망집에만 집착하며 세상을 흉흉하게 만드는 마물인 것이다.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모모스케와 지헤이는 에도로 돌아온 김에 술 한 잔을 하기 위해 지헤이의 거처로 향한다. 그런데 집 안에는 수척한 모습의 어떤 무사가 있었고, 자세히 보니 이전에 시코쿠에서 만났던 우콘이었다. 시코쿠에서 기타바야시 번으로 돌아간 우콘은 더욱 심각해진 노두참살의 실상에 휘말리다 못해, 범인으로 몰리는 바람에 에도로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범인으로 몰린 이유는 이러하다. 어떤 처녀가 살해 당한 자신의 언니가 신분 높은 무사에게 납치 되는 걸 봤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우콘은 범인을 수색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 참고인 역시 만난 이후에 살해 당한 것도 모자라 그와 말다툼을 했다는 목격담이 곧 누명으로 이어졌다는데...
<히노엔마>에서부터 시작된 악의의 실체를 다룬 본편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계속 언급만 되던 부분이 제대로 본모습을 들어내니 다른 사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저 사람의 짓이라 보기 어려운 악행이라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악행을 벌인 당사자의 정체를 비롯해 책임의 소재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제일 크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일단 책임 소재부터 명확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현실적인 문제라 규정이 됨으로서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방법을 찾게 된다. 삶을 이어나갈 동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재앙이나 저주라 여겨진다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 무얼 해도 막지 못하는 일이니 개인의 삶을 넘어 세상 전체가 망가져 버린다.
사람이 어째서 나쁜 짓을 벌이게 되는지, 그 시작점은 무엇일까. 찬찬히 살펴 보면 언제나 이런 식이긴 하다. 극악무도한 일을 진압하고 보면 늘 사소한 것에서 부터 시작됐다. 그 사소한 것이란 자세히 보면 별거 아니다. 문제는 그 별거 아닌 것이 이해가 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자극을 받게 된 동기라는 것부터 이상하다 보니 설명이 어려운 괴기가 된다. 하지만 세상은 이치에 어긋나는 걸 인정하지 않기에 편한 방식을 요구한다. 자극을 받게 된 사람이 글러 먹은 게 아니라, 자극을 준 주체가 잘못 되었다고 말이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당장에 편한 걸 찾으려 아무 거나 갖다 붙이면 과연 이 악의는 명확하게 규명이 되는 걸까? 아니, 오히려 근본을 알아보지 못하고 멀쩡히 세상을 활보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악의는 계속 쌓이고 쌓여 더욱 크게 번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바로 잡지 못한 책임이다. 타인의 부도덕함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죄악이라고. 그러나 이것 역시 악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내리는 결론이다. 사람의 판단력이란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주관적으로 보는 눈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미숙할지라도 하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걸 구분하는 분별력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생긴다. 이게 있기에 나쁜 마음이 생기더라도 모든 사람이 악행을 벌이지 않는 거다. 이건 곧, 악행이란 이 분별력 없이 자기 판단대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 된다. 그 누구의 영향이나 책임을 따지는 건 악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쉽고 편하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이러한 악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노뎃포>에서부터 내려온 모든 요소들이 연결 고리를 가지며 합쳐지는 스토리 구성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다. 사람의 연은 언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고,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일인데 그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들어 만들어낸 재앙과 기적을 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한 편의 활극 같으면서 거대한 괴담처럼 기이한 분위기. 이 시리즈 만의 독특한 감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아 보여준 대단원이라 할 만하다.
로진노히
기타바야시 번에서의 사건 이후로 6년.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하고 있던 모모스케는 다시 그 곳을 찾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기타바야시 번에서 온 무사가 마타이치를 찾아 달라는 부탁해서 그렇다. 성대가로 님이 죽은 영주의 유령을 보게 되면서 원인모를 중병으로 쓰러진 일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타이치는 2년 전에 모습을 감춰버린 상태. 도저히 마타이치를 찾을 수 없다면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에 모모스케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인데...
어떤 이야기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된다. 아무리 대단한 이야기라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회자되고 다른 형태로 변형되다 나중에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대가 들어서면 이전 세대는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며 사라져 간다.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순리 역시 어긋나는 일이 존재한다. 제때 자리를 비켜주지 못하고 의미 없이 타오르는 불처럼 말이다.
사라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쓸쓸해 보이나 그 존재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현재 생활에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로 덮어둔다는 정도다. 잠깐 생각날 때마다 살짝 들춰 보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고 놓아주지 못한다면 과거만 들여다 보며 현재를 소홀히 하게 된다는 거다. 로진노히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불이 꺼지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꺼지지 않는 불과 함께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노인.
줄곧 악의에 대해서 다루다 마지막에 이르러 서는 이렇게 잔잔한 분위기를 조성하니 진정한 종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꽤 설득력 있고 진지한 의미를 담아 보여주니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각자 가야 되는 길이 있고, 이미 그 길을 찾아 들어섰다면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미련 없이 앞만 보고 가야 사람으로서 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