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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660여 편의 에세이 중에서 추리고 추려 모은 35편을 담은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이전에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보다 유독 더 깊이 와닿았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전해지는 말들이 오히려 더 큰 진심으로 다가와 마음을 울린다. 거지를 바라보는 마음, 지하철에서의 오해, 택배기사가 잘못 배달한 뒤의 뒷이야기, 어이없게 겪었던 일들까지 우리도 일상에서 흔히 겪을 법한 이야기들이 박완서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풀려 나온다. 그 솔직함은 우리의 내면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스스로의 이중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짓게 만든다. 나 역시 쓸데없는 생각이 많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접었다 하는 편이라 더욱 공감이 되었다.
‘이멜다의 구두’ 편을 읽으며, 비록 내 물건이 이멜다의 3,000켤레 구두만큼 많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버리지 못한 물건들에 질려 50L 쓰레기봉투를 꽉 채워 비워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우면 한결 가벼워질 거라 여겼지만, 결국 또다시 나도 모르게 채워 넣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젠가 또 한 번, 이참에 한가득 비워보리라 마음먹어본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는 작가의 고백은 특히 오래 남았다. 엄마, 아빠, 생활비를 버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내 사람’으로서 사랑하고 싶다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나 역시 그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여러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있기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은 작은 말 한마디라도 더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말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입을 가볍게 열기보다,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남기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