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고집 센 나이 든 작가의 훈수 같은 이야기일까 싶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오히려 마음이 서늘하게 공명하는 부분이 많았다.“요컨대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고, 나 또한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 고통이 너무 컸던 시기에 나는 그저 “나 지금 너무 힘들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결국 약해져 사라지는 감정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또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라는 대목 역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처럼 다가왔다. 나 역시 누군가가 스스로의 답답함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더욱 갑갑함을 느끼곤 했기에, 이 문장은 유난히 깊게 와 닿았다.자식에게 잘 익은 열매를 건네는 것보다, 그 열매를 가꾸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해주라는 말도 마음에 남았다. 아이를 바라보는 일이 늘 쉽지만은 않다.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하고, 아이가 스스로 해보는 기쁨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 속에서 나는 종종 조급해진다. 이 글은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하는 작은 멈춤의 순간이 되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 는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부담이 아니라 안식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그 어떤 이론보다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이 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마음. 그것은 시대를 넘어 모든 부모가 가진 마음일 것이다.오래된 글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박완서의 『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는 마음이 답답한 사람에게는 숨을 고를 틈을,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마치 오래 알던 친구와 조용히 앉아 나누는 대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