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호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23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멸종된 호랑이가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해 우리 곁에서 살고 있다면 어떨까?
조선 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한반도 호랑이가 둔갑술로 인간 사회 속에 숨어 살아간다는 설정은, 그들의 마음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이 자신들이 지배하던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인 척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이 서러운 일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감사한 일일까.

작품에는 ‘호랑이눈썹’이라는 흥미로운 모티프가 등장한다. 늑대의 은빛눈썹 전설을 오마주한 설정으로, 그 눈썹을 가진 사람은 둔갑술을 쓴 존재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진실을 본다는 것이 축복일까, 저주일까.
아이에게 “호랑이눈썹이 생기면 어떻게 할래?” 물었더니, “실체를 보고 싶지 않아서 버릴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참 인상 깊었다. 모든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법이다. 나 역시 그 눈썹을 눈에 대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아는 것이 언제나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복 가문은 대대로 호랑이를 잡아온 집안이다. 둔갑술로 숨은 호랑이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이어받아,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호랑이를 사냥해왔다. 먼 옛날 유복은 아버지를 죽인 호랑이를 잡기 위해 산속으로 향하고, 자신을 반기는 존재들을 호랑이로 착각해 모두 죽이고 만다.
그의 행동은 우리에게 묻는다.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도 되는가?’
아이에게 “신념과 다른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래?” 묻자, “넘어갈 거야. 꼭 그게 옳은 건 아니니까.”라고 했다. 그 말처럼, 세상에는 하나의 진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옳다고 믿은 일이 실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루호의 세상에는 호랑이, 토끼, 까치가 사람으로 둔갑해 살아간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서로 다르지만 진심으로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는 존재들. 다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으로 연결된다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끝에서 루호가 한층 단단하게 성장한 모습이 참 기뻤다.
아이도 루호처럼 흔들릴 때마다 자신만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내면의 강인함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세상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며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