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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대가야 여행 ㅣ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3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4년 6월
평점 :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가야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시대의 형성기에 금관가야가 전기 가야동맹의 맹주였다는 점은 그나마 좀 다뤄졌지만, 한창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 유역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 후기 가야동맹의 주도국이었던 대가야는 '이런 나라가 있었다'는 식으로만 언급되곤 했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대가야 여행’은 바로 이 잊혀진 대가야의 흔적을 따라가는 특별한 여정을 담은 책이다.
여행의 시작은 의외로 해인사다. 저자를 따라 통일신라의 유산으로만 알았던 해인사에 남아 있는 대가야의 흔적을 발견하는 과정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든다. 난생설화로만 알고 있었던 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얽힌 또 다른 설화가 있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다음에 해인사를 가게 된다면 정견모주가 그려진 불화를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자면 동네 토박이 어른이 해당 지역이 오랜 세월 품어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가이드 투어를 하는 듯하다. 시간 순서가 아닌 장소를 따라 역사를 탐험하는 방식도 색다른 매력을 더한다. 게다가 풍부한 사진 자료는 글로만 상상하기 어려운 유적지의 생생함을 잘 전해준다.
아무래도 고대사는 남아있는 유적이 고분군이 많다 보니 이 책에서도 가야의 고분군을 주로 탐방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고분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당대 사회 구조와 세력 구도를 반영하는 '살아 있는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백제 금동관 → 신라 로만글라스 → 대가야 고리자루큰칼 → 신라 금동관 → 백제 금세공품이 순차적으로 출토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편 개인적으로 신라 로만글라스의 존재가 이색적이었는데, 삼국시대를 한반도 안에서만 바라보던 시각에서 탈피해서 이 시기가 생각보다 훨씬 글로벌하고 복합적인 시대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는 아라가야의 국제회의인 안라회의에서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가야사를 이야기하면서 임나일본부설을 빼놓을 수 없다. 임나일본부의 존재와 별개로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이 왜 성립하지 않는지에 대해 저자는 사서의 기록과 출토된 유물을 기반으로 반박한다. 학교에서 임나일본부의 존재 자체를 배운 적이 없었던지라 꽤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대가야 여행’은 단순한 여행기나 지역 소개서가 아니다.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의 그늘에 가려졌던 가야를 하나의 '국가'로 조명하면서 한국의 고대사가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였음을 보여준다. 해인사에서 시작해 고령, 합천, 진주, 함안, 창녕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여정을 따라 가다보면 그간 알지 못했던 가야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깨어난다. 날이 좋은 요즘, 이 책을 들고 대가야 여행을 훌쩍 떠나 유적지 앞에서 저자의 글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싶다.
유네스코에서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을 주목"하여 가야 고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켰다고 한다. 무엇보다 다양성이라는 표현이 가야 역사의 키포인트 같군.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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