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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용어의 탄생 - 과학은 어떻게 '과학'이 되었을까
김성근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2월
평점 :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과학’, ‘기술’, ‘원자’, ‘공룡’ 같은 단어들은 너무도 익숙해서 그 기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science'는 왜 '과학'이 되었고, 'technology'는 어째서 '기술'로 번역되었을까? 'atom'은 왜 '원자'이고, ‘planet’은 왜 ‘행성’이 되었을까? 한 번 질문이 떠오르고 나니 이 용어들에 대한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학용어의 탄생'은 우리 주변의 익숙한 단어들이 품고 있는 역사를 파헤친다. 각 용어들에는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유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어원 풀이를 넘어, 단어가 만들어지고 번역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짚어보면서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문화, 그리고 과학을 둘러싼 철학적 배경까지 들여다 본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언어라는 창을 통해 새롭게 세계를 이해하고, 성찰하게 된다.
저자는 특히 서양 중심으로 발전한 학문들에서 파생된 용어들이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 수용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개인적으로 당대 지식인들이 서양의 ‘philosophy’와 전통 학문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따라 제시한 번역어가 달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게다가여러 단어들이 경쟁을 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이라는 단어로 통일되는 과정은 언어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구성하는 도구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공룡(dinosaur)이라는 단어가 영어 어원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큰 도마뱀’, 한자어로는 ‘두려운 용’이라는 의미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영어 어원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공척蜴’, ‘공석蜥’ 등 도마뱀을 뜻하는 한자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는데, 결국 ‘공룡’으로 정착된 것을 보면 용이라는 존재에 대한 동서양의 다른 사고방식이 이런 차이를 가져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학용어의 탄생'은 단어의 유래를 쫓는 일을 넘어, 우리가 지금 어떤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는 책이다. 과학의 보편적 진리를 설명하는 용어는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각 언어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었다. 번역가들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은 여전히 과학용어들에 남아 우리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단어 하나에도 수백 년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익숙한 단어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앞으로 새롭게 탄생할 과학용어들이 담을 세상은 또 어떠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처럼 니시가 만든 ‘철학’이라는 어휘는 상당히 오랫동안 저항에 부딪혔다. 흥미로운 것은 ‘철학’이라는 니시의 신조어와 ‘이학’으로 대표되는 유학적 번역어들 사이에는 단순히 번역 어휘의 문제를 넘어, 전통학문(한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더 뿌리 깊은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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