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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평점 :
앤서니 호로위츠는 고전 추리소설의 팬에게 선물과도 같은 작가이다. 고전 추리소설 특유의 분위기와 개성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소설 자체도 재밌지만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등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오마주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맥파이 살인사건'은 액자 소설로, 작중 유명 추리소설 작가인 앨런 콘웨이가 쓴 '맥파이 살인사건'과 함께 편집자인 수전 라일랜드가 앨런 콘웨이 사망사건의 진실과 미완의 원고를 추적하는 스토리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앨런 콘웨이가 쓴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맥파이 살인사건'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향기가 물씬 나는 작품이다. 호젓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마을사람들을 하나 하나 조명하는 도입부는 '살인을 예고합니다'가 떠오른다. 아티쿠스 퓐트는 누가봐도 푸아로의 오마주로, 전쟁의 참상을 겪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동요를 모티브로 삼은 점도 여러 고전 추리소설을 떠오르게 하는 지점이다.
한창 앨런 콘웨이의 소설에 빠져있던 독자는 이야기가 부자연스럽게 끊기면서 소설 속 현실로 이동한다. 이 지점부터는 수전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시간적 배경은 현대이지만 소설의 진행방식은 고전 추리소설과 유사해서, 수전은 앨런 콘웨이와 관련된 사람을 하나하나 만나본다. 이 과정에서 앨런 콘웨이가 자신의 작품에 숨겨둔 암호들이 드러나는데 이 또한 퍼즐과 수수께끼라는 고전 추리소설의 특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수전이 앨런 콘웨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추리소설에 대한 화두가 제시되는데 독자와 작가의 입장이 갈리는 것이 흥미롭다. 독자 입장에서 추리소설은 나와 분리된 세계에서 펼쳐지는 수수께끼로, 현실을 벗어나 치열한 두뇌싸움과 권선징악의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창조한 세상과 캐릭터에 얽매이거나 너무 인기가 많아져서 더이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점, 또는 장르 자체가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애로사항이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만 해도 셜록 홈즈나 푸아로에 대해 뭐라고 말했던가.
소설 속 현실은 추리소설을 둘러싼 저자와 독자 또는 출판사의 갈등이 극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선 왜 이 장르가 그토록 저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의 고뇌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작중에서 앨런 콘웨이는 본인의 가족이나 친구,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에 활용하는데 이는 자신의 높은 문학적 이상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투영이었을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도 장르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이 책은 장르적 재미 뿐만 아니라 장르 자체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 주는 책이라 더욱 의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