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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몰타의 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평점 :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고전인 '몰타의 매'는 읽을 때마다 시린 바람이 불어 코 끝이 매운 기분이 든다. 주인공이자 탐정인 샘 스페이드는 비정하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고, 소설 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거짓으로 점철되어 믿을 수 없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또 다른 고전인 필립 말로 시리즈는 읽고 나면 여운과 함께 씁쓸함이 남는다면, 몰타의 매는 마지막까지 차디 차다.
좋아하지 않는 동료였을지라도 그의 죽음을 애도할 법도 한데 명패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달라는 스페이드의 행동은 그가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보여준다. 진실을 쫓아야 할 탐정이 돈을 우선시하고, 동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일삼는 것을 보고 있자면 진실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첫 등장부터 끝까지 이 소설을 혼란으로 이끌어 가는 인물이다. 스페이드의 도움을 갈구하지만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그녀가 감춘 진실이 무엇인지 털어놓지 않는 그녀는 결국 스페이드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다. 연이은 거짓말에 따른 적절한 응보라고나 할까.
스페이드와 오쇼네시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몰타의 매를 쫓고 있는 거트먼 일당은 다소 평면적인 악당으로 보인다. 거트먼이나 카이로가 덮어쓴 거짓의 장막은 얇아서 되려 그들의 의도는 투명하게 보인다.
작품 말미에 스페이드와 거트먼 일당, 오쇼네시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몰타의 매가 등장하고, 스페이드가 이들을 겁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누가 범죄자인가 헷갈릴 지경이지만, 끝없는 거짓의 굴레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품인 몰타의 매나 스페이드에게 넘어가 아들처럼 생각한 수하를 배신하는 거트먼과 그의 최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냐며 도움을 애걸하는 오쇼네시.
이 드라마의 최종 승자는 스페이드이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에피 페린의 경멸과 그와 불륜 관계였던 아이바 아처의 방문이다. 이 또한 그의 비도덕적인 행동이 가져온 여파이지만, 독자 입장에선 어딘가 씁쓸하다.
작중에 나오는 플릿크래프트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천운으로 불의의 죽음을 피한 플릿크래프트가 새로운 삶을 살겠다며 떠나지만 결국 그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는 새로운 삶이 자신이 선택한, 주체적인 인생이라는 점에서 만족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스페이드는 자신의 선택으로 맞이한 결말에 만족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