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원더랜드 - 말라 죽은 나무와 그곳에 모여든 생물들의 다채로운 생태계
후카사와 유 지음, 정문주 옮김, 홍승범 감수 / 플루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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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이나 산을 가면 생명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한 시커먼 나무가 종종 보인다. 가지까지 온전히 남아있을 때도, 몸통만 남아있을 때도, 심지어는 뿌리채 드러나 쓰러져 있기도 하다. 때때로 큰 구멍이 뚫려 있기도 하고, 이끼나 버섯이 자란 고목을 보고 있자면 음산하다가도 나무는 죽어서도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는구나, 저대로 시간이 한참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고목 원더랜드’는 죽은 나무를 중심으로 분주히 돌아가는 생태계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게는 이끼, 버섯 정도만 보였지만 ‘원더랜드’라는 말에 걸맞게 이름도 낯선 점균, 부생란, 곤충부터 시작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수많은 생명체들이 고목에 기대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생명력을 다한 나무가 다른 생명체에게 양분과 거주지가 되어주는 것을 보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저자가 현직에 있는 연구자이다 보니 본인이 수행한 실험의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데 낯선 용어와 학명이 등장해서 책의 내용이 마냥 쉽지는 않다. 하지만 처음 보는 연구분야와 실험들은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의 존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줬다. 저자의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적고 그린 현장 관찰기록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어릴 때 썼던 관찰일기를 떠올리게 해서 더더욱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고목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주인공이다. 이끼, 버섯, 곤충, 동물 등 여러 생물들이 고목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삶을 꾸려나가는지 설명하는데, 그 역동성에 놀라게 된다. 특히 인상깊었던 내용은 균근균을 매개로 수목간 탄소 교환이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탄소 교환이라는 메커니즘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밝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보다 그늘에서 자라는 나무에 더 많은 탄소가 흐른다는 연구결과가 놀라웠다. 이는 경쟁 속에서 공존을 꾀하며 균형점을 찾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보여주는데, 과열된 경쟁으로 지쳐가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대목이다.


 2부에서는 생태계의 범위를 확장하여 고목과 숲 전체,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고목이 단순히 종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 시대에서 고목이 탄소 저장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죽은 나무라는 이유로 고목을 베어서 연료로 활용한다면 고목이 저장하고 있던 탄소들이 방출되고, 연료로 사용되면서 탄소를 또 방출하게 된다.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삼림 바이오매스의 함정이 여기에 있다. 또한 고목은 새로운 나무의 모태가 되어준다. 죽음과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심오한 가르침을 떠오르게 하는 지점이자, 고목이 그 자체로도 탄소를 저장할 뿐만 아니라 탄소를 저장할 새로운 세대의 숲을 키워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고목이 자연의 일부로서 이렇게나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미처 몰랐다. ‘고목 원더랜드’는 고목을 둘러싼 생태계의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같은 지구에서 공존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준다. 죽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품는 고목, 고목을 둘러싼 생존경쟁 등을 보고 있자면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그야말로 ‘고목 원더랜드’가 주는 마법같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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