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부크크오리지널 3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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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너무 어둡고 무겁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창씨개명한 조선인 순사에게 고문을 당하고 이등시민 취급받는 조선인의 모습들이 나오기는 해도 전반적인 작중 분위기는 마냥 무겁지는 않고, 오히려 신식과 구식이 뒤섞인 당시 경성의 길거리나 생활상이 더 눈에 들어온다. 


 작품의 주요 내용은 도쿄에서 돌아온 유학생 에드가 오가  두 건의 도끼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보다 작중 인물들이 더 흥미롭다.


 일단 작중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는 주인공 에드가 오의 역할이 크다. 일단 에드가 오라는 이름과 페도라부터 수트까지 완벽한 차려입은 겉모습, 말끝마다 강조하는 ‘모던’에 대한 집착부터가 식민지 조선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여기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지식인인데 하는 행동은 철없는 대학생같은 괴리감은 잔인한 살인사건과 대비되어 작품 분위기를 한결 가볍게 만든다.


 하숙집 딸이자 과외 학생인 선화는 에드가 오와 함께 누이와 같은 케미를 보여주는데, 가끔은 선화가 누나 같이 여겨질 때도 있다. 또한 냉철한 상황 판단이나 추론 능력은 에드가 오보다 낫다. 탐정의 조수이지만 탐정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조수라는 클리셰를 뒤집은 캐릭터랄까. 아니, 사실 진짜 탐정은 선화일지도.


 다방 흑조의 주인이자 과거 에드가 오의 과외학생이었던 연주는 등장이 많지는 않지만 출중한 능력을 보여준다. 선화와 마찬가지로 탐정보다 능력있는 조언자로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연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를 먼저 읽어서 연주가 이 소설에서 어떻기 그려질지 궁금했는데, 비중이 크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외에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계향, 헌책방 할아버지, 약방의 감초같은 영돌아범, 냉정하기 그지없는 미나미 순사부장 등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강해서 1920년대 경성의 모던 보이인 에드가 오가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근현대사 시간이나 문학시간이 항상 암울한 시기로만 배웠던 일제강점기에도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나름의 일상을 영위하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보통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독립운동가들이 등장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들과 같은 영웅 또는 악질적인 친일파만 있었을까. 독립에 대한 열망은 있어도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거나, 아니면 나라가 어떻게 되든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에드가 오 또한 일제의 만행과 그에 영합한 자들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독립 운동에 투신할 정도의 적극적 열정은 없고,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모던을 부르짖으며 계몽을 외친다. 뒤팽이나 홈즈같은 탐정을 꿈꾸며 사건 조사에 나서지만 엄청난 추리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에드가 오가 밉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그의 소시민적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도 거창한 대의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에드가 오의 캐릭터성과 궤를 같이 한다.


 1929년 경성,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일제에 부역하던 그 시간, 그 곳에는 지금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바쁜 사람들, 마음 속에 뜻은 있지만 아직 펼치지 못한 자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에드가 오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기대된다. 그리고 선화의 가족사, 연주와 에드가 오의 과거 등 에드가 오를 둘러싼 사람들이 펼쳐낼 드라마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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