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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티아고인가
나선영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왜, 산티아고인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프랑스 길, 그 800km 긴 여정 동안 저자가 만난 순례길을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순례길의 시작, 생장 피에 드 포르부터 팜플로나,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사리아 등 차근차근 저자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어서 이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저자는 그 길에 나름의 이름을 붙였다. 사랑의 길, 영혼의 길, 비움의 길, 외로움의 길, 후회의 길, 고독한 길 등등. 길을 꾸며주는 다채로운 수식어를 보고 있자니 그 길의 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이러한 단어들을 떠올렸을지, 이 단어들이 지금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 단어 자체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800km를 사람의 힘으로 걷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은 편안한 여행길만은 아닐테다. 평탄한 길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고, 진창인 길도 있고 돌밭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마냥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에 문득 마주치는 해바라기 꽃밭이나 십자가 등이 주는 울림이 더욱 크지 않을까. 저자가 길을 걸으며 곱씹었던 감정들과 깨달음은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을 밟아보지 못한 내게 감동과 함께 순례길에 대한 갈망을 일깨웠다.
‘왜, 산티아고인가’ 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0년도 더 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가 없는 나는 순례라는 행위 자체에 큰 감흥이 없었고, 800km를 걷는다는 건 순례보다는 고행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힘든 길을 지나 도달한 곳에서 과연 그 고생에 상응하는 보람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직장인이 되고, 여기저기 치이다가 바닥까지 내려앉았을 때, 우연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감격에 겨워하는 순례자들의 영상을 보고 문득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고 싶어졌다. 그 기나긴 길 위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이겨낸 뒤 맞이한 대성당은 어떤 느낌일까. 온갖 외부 변수에 의해 부평초마냥 흔들리다 가라앉은 상황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게 종교적 의미보다는 온전히 나 자신의 의지로 행할 수 있는 탈출구처럼 보였고, 40살이 되던 해에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를지, 어떤 감정이 밀려올지 궁금하다. 저자와는 또 다른 나만의 감정과 단어로 완성될 길, 그 길을 걸을 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간다. 결과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 더 의미있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리비 문양과 노란 화살표를 따라 묵묵히 걸어갈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