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비밀 강령회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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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미국과 유렵에서는 강령술이 꽤나 인기였다. 산업혁명으로 한창 근대화되면서 과학기술도 발전하던 시절에 강령술이라니 의아하긴 하지만, 강령술을 하나의 과학 현상으로 보고 이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유명인들도 많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코난 도일도 말년에 심령현상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니, 이성적, 과학적 사고의 대표 주자인 셜록 홈즈의 창작자인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도 강령술이 여러 번 등장한다. 장편 ‘시태퍼드 미스터리’에서 테이블 터닝은 작품 전개에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엔드하우스의 비극’에서도 결말부에서 푸아로가 강령회를 연다. 그 외에 여러 단편에서도 영매나 강령술이 작품의 주요 요소로 쓰인 것을 보면 당시에 강령술이 엄청난 인기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런던 비밀 강령회’ 또한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런던 강령술 협회와 영매 그리고 영매의 제자를 둘러싼 미스터리 소설이다. 소설은 영매의 제자 레나와 런던 강령술 협회의 부회장인 몰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주요 인물은 이 둘 외에 유명한 영매인 보델린까지 3명이다. 과학과 이성을 신봉하던 레나는 보델린의 제자이자 강령술에 관심이 많았던 여동생 에비가 살해당하자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보델린의 제자로 들어가고, 몰리는 런던 강령술 협회의 회장이던 볼크먼의 사망에 얽힌 진상을 알고자 보델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협회에 문제가 있어서 볼크먼과의 합의 하에 파리로 피신했던 보델린은 몰리의 청을 받아들여 레나와 함께 런던으로 오고, 두 여성은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서로 무관해 보였던 에비와 볼크먼의 사망은 런던 강령술 협회를 중심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레나는 동생이 부정한 일에 엮였다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 한다. 이 와중에 레나와 보델린의 관계도 제자와 스승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도움을 요청한 몰리는 한없이 수상쩍기만 하다. 


 사실 소설을 읽다 보면 대강 진상을 알 것 같지만, 사건의 진행이나 인물관계의 변화로 인해 작품 내내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또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듯이 결말부에 가면 누구나 예측했던 진상을 비튼 반전이 있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식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당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클럽과 연관된 연쇄살인을 여성인 영매가 해결한다는 부분이다. 작중 배경이 19세기니까 일종의 성역할이 반전된 셈인데 사실상 강령술은 테마이고 결국 부패한 남성들에게 복수하는 여성이 이 작품의 주된 서사이다.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에 도달한 레나는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의 세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깨고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레나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이 얽매여 있던 규범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당시로서는 금기여서 그토록 조심스러웠던 레나와 보델린의 관계에서도 레나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 소설은 오컬트 미스터리 소설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여성 서사의 측면에서 읽어도 흥미롭다. 부패와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해지는 레나의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묘미이다. 아마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힐 것 같아서 재독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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