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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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의 힘을 느낀 것은 7년 전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갔을 때였다. 별 기대없이 마주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난생 처음 느끼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성경의 내용을 조각해 놓은 외벽도 감동적이었지만, 내부에 입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말을 잃었다.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가우디가 무엇을 이 성당 내부에 구현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무교인 내게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취해서 몇 시간이고 성당에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건축물과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짧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빛이 이끄는 곳으로’에 등장하는 건축물도 실존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글로도 잘 묘사가 되어 있지만 실제로 보고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4월 15일에 왈처요양병원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은 글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건축가이기도 한 작가가 책에 등장하는 공간을 머리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공간을 보고 싶다는 갈망이 더 크게 느껴졌다.


 건축물과 공간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소설에서도 건축물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펼친 드라마가 결국 핵심이다. 프랑스와 왈처가 왈처요양병원고 시테 섬에 남긴 집에 숨긴 비밀을 푸는 것은 어째서 이 공간은 이렇게 지어졌는지와 깊은 연관이 있고, 이는 이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과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야만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이다.


 시테 섬의 집이 품은 세심하고 다정한 건축가 프랑스와와 가족을 잃고 삶의 의지마저 상실한 아나톨의 이야기는 집 곳곳에서 드러난다. 뤼미에르가 처음에 이상하게 생각했던 계단 난간이나 바닥, 벽에 남은 손자국 등.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아버린 흔적이고 지우면 그만이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다.


 뤼미에르가 시테 섬의 집을 원래대로 복원해 프랑스와와 아나톨, 피터의 과거를 되살리고, 진실을 알게 된 피터가 시테 섬의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한편, 과연 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내 집 마련을 외치면서 집을 자산으로만 생각하고,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 꾸며서 뭐해 라는 생각으로 지금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는 소홀하지 않았던가. 만약 이 집에 나의 흔적이 남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이번 주말은 집에서 햇빛을 바라보며 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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