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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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어떤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는 판타지인데, 흔한 힐링 판타지가 아니라 다크 판타지에 가깝다. 으스스한 호러소설의 요소도 있다. 그런데 이런 다크 판타지나 호러적 요소는 현실에 맞닿아 있다. 갓난아기를 학대하고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한 엄마, 이웃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한 할머니,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 유기된 강아지 등등. 현실에서 너무나 익숙해서 이젠 들어도 놀랍지도 않고 그저 쯧쯧 혀만 차게 되는 일들이다.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드라마틱하게 해결되지 않듯이, 이 책에서도 챠밍이나 도깨비가 적극적인 해결사 역할을 하진 않는다. 챠밍이 지닌 능력 내에서 해결을 하긴 하는데 뭔가 히어로 무비를 보듯 속이 시원하진 않다. 오히려 그래서 판타지임에도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그와중에 사건이 해결되니 힐링도 된다. 실제 세상에서도 산적한 문제들이 이 정도 수준에서만 해결되어도 좋겠다 싶은, 아주 현실적이고 과하지 않은 수준의 힐링이라 더욱 좋았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현월동과 현월동 주민들 또한 어딘가 본듯한 장소와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원미동 사람들을 다크 판타지로 쓰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너스 호프, 지물포 주인은 그야말로 소시민의 전형이고, 도깨비마저도 가끔은 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챠밍 또한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존재임에도 속물적인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판은 악덕 고용주 그 자체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신들의 모습이 웃음 포인트이다.


 이 책에서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의명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에는 요리가 가능한 자기 부엌을 가졌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는 의명을 보며 한국의 2030이 처한 현실에 공감하다가도, 101호 할아버지 때문에 의명이 정신적으로 핀치에 몰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섬뜩함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다 자신의 영매 능력을 깨닫고 혼을 거두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보면 마치 내 친구인냥 뿌듯하기도 하다. 이 작품 내에서 아마 의명이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캐릭터가 아닐까.

 

 일상 판타지인 줄 알았던 이 책은 챠밍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왜 하필 미용실일까 궁금해 했는데 챠밍의 과거에 힌트가 있다. 챠밍이라는 이름 자체도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도깨비와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도깨비가 어떻게 성숙해져 가는지도 차근차근 설명된다. 


 챠밍을 인간도 신도 아닌 불사의 존재로 살게 만든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챠밍은 제 손으로 이 사건을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동시에 펠리치따 오피스텔에는 또 다른 세입자가 이사온다. 새로운 사건, 인물과 함께 이 책은 마무리된다. 시리즈의 첫 권에 알맞게 매력적인 인물들과 배경, 설정들이 등장해서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가 된다. 과연 챠밍은 복수의 굴레를 끊고 평안을 찾을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보여줄 도깨비, 의명과의 케미도 궁금하다. 비로소 3인방이 된 그들의 활약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순영 아주머니도 나도, 복수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몰라서 저지른 일로 너무 오래 대가를 치르고 있잖아요. 그 오랜 시간 후회했던 일 중 단 하나라도 제자리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네요. 너무 많이 늦었지만..."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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