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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때가 오면 - 존엄사에 대한 스물세 번의 대화
다이앤 렘 지음, 황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평점 :
내가 기억하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자취를 하며 취업 준비에 한창이던 어느 날 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는 사실을 들었다. 수술을 했음에도 예후가 좋지 않았고, 결국 6개월 남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결론적으로 할머니는 6개월 보다는 더 사셨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완화되지 않는 고통을 삼키면서도 버티셨다. 사실 할머니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큰고모는 그래도 이제 안 아프시니 다행이다, 라고 읊조렸고 모두들 동감했다.
이후 우리 가족들은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가족 중에 불치병에 걸리거나 하는 상황은 닥치지 않아서 정작 그 상황에서도 같은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각자의 마음 한 켠 다짐처럼 새기고 있다. 그러던 중 존엄사에 대해 다룬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나의 때가 오면'은 저자가 각계각층의 사람과 나눈, 존엄사에 대한 대화를 묶은 책이다. 가족을 존엄사로 떠나 보낸 사람, 존엄사 지지자, 종교계, 의사, 국회의원, 불치병을 투병 중인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자는 존엄사를 지지하지만, 존엄사를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현재의 나는 존엄사를 찬성하지만, 존엄사를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에도 일부 공감한다. 경제적 이유로 인해 존엄사를 '강요'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놀랐던 점은 인종에 따라 존엄사가 차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종교인은 아니지만 종교계가 존엄사에 대해 지닌 시각도 알 수 있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존엄사를 합법화했다고 해서 존엄사 사례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존엄사 절차가 까다롭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처럼 많은 사람들이 존엄사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심지어는 이 책에 나오는 몇몇 사례처럼 존엄사를 위한 약을 받아두고도 실제로 그 약을 쓰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 중 한 사람도 언급하듯이 어쩌면 사람들은 내가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 아닌 희망으로 마지막을 위한 약을 처방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내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약간의 위안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들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에 대한 존엄을 지켰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의 때가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모두들 평화로운 죽음을 원하지만, 정작 그런 죽음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쓸모없고 짐스러운 돌봄의 컨베이어 벨트에 우리를 묶어 놓고 우리에게서 삶의 질을 강탈하는' 경험은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존엄사에 동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개인이 생각하는 존엄이 모두 다른 만큼, 존엄사 또한 개인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터부시 되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의미를 지니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죽음에 대해 이 정도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불길한 이야기를 하냐고 손사래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죽음이 있어 생이 더 빛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삶의 중요한 일부가 너무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어요. 그런 주제는 금기였고, 우리에게는 죽음과 죽어감을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죠. 죽음은 감춰져서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제는 보통 병원이나 시설에서,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나죠.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과 서로 교류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낯설죠.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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