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인생을 위한 짧은 영어 책 - 이것은 지금도 영어가 두려운 당신을 위한 이야기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책
박혜윤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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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라던가. 내게는 영어가 그렇다. 학생 때 시험 영어는 자신 있었다. 단어 외우고, 수많은 문제를 풀면서 유형을 파악하면 어느 정도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영어는 좀 달랐다. 여전히 가끔씩 시험 영어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진짜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영어가 하고 싶었다.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거나 내 의사표현 정도는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근데 도대체 이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건지 알 수도 없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게 아니니 의욕도 나지 않았다. 좋다는 인강도 들어보고 유행하는 학습지도 신청해 봤지만 끝을 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영어는 내게 새해 결심과 같은 평생 숙제로 남았다.    


 이 책을 읽은 뒤 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은 영어 공부법에 대한 책이 아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저자의 경험이나 사유를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다. 문득 일전에 직장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났다. 해외 생활을 꽤 오래한 선배는 자기 아들이 국제결혼을 한다고 하면 반대 안하고 적극 지지해줄 거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선배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거잖아. 얼마나 그 세계가 넓고 깊어지겠어!'라고 답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이라, 그 말이 왜 이렇게 설레게 들리던지. (아 참, 그 아들은 그 당시 5살이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행동도 내가 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떠나보는 것 아닐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굳이 힘들게 영어 공부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내가 평생 숙제로 영어를 껴안고 사는 이유는 영어로 내 세계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어로 생산되는 콘텐츠를 편하게 소비하고 싶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영어식 사고를 통해 나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사실 나 영어 공부 좋아하네, 싶었다.


 그런데 왜 영어 공부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인 특유의 그 완벽주의 때문이 아닐까. 발음도 완벽해야 하고, 문법도 완벽해야 하고, 완성된 문장을 내뱉어야 하고... 소위 말하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거기까지 닿기가 너무 요원해 보여서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굳이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 되어야 할까?


 책에 나온 인도 유학생 이야기를 읽고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업무차 인도나 싱가포르 사람들과 미팅을 할 일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영어를 듣고 있는 게 맞는건지 당황했었다. 주변 눈치를 보아하니 나만 못 알아 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다했다. 이때를 생각하니 저자의 말대로 내가 한국식 영어를 한다는 것에 굳이 부끄러워 하거나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영어 공부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영어 실력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영어 잘해? 라는 질문에 잘한다고 대답하는 한국인은 거의 못 봤다. 보통 한국에서 영어 실력의 1차 기준은 공인 영어성적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나는 영어를 꽤 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왠지 이걸로는 영어 실력을 나누기는 부족해 보인다. 


 굳이 영어를 안 해도 살 수 있다. 심지어 크게 불편하지도 않게. 요즘 번역 어플도 좋고, 스마트폰이 통역도 해주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 힘으로 영어라는 세상을,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보고 싶다. 그렇게 긴 인생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영어 공부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했으니 이 책은 내게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다만 다른 책과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긴 인생에서 영어가 왜 필요한지, 나는 왜 영어를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 보고, 영어를 일종의 권력으로 여기며 원어민을 부러워 하던 생각을 버렸다. 영어 그 자체를 즐기면서 지속 가능한 공부하기. 그게 내게 필요한 영어 공부 방법이다. 다들 이 책을 읽고 자신만의 영어 공부 방법을 찾을 수 있길.


 이 책은 시리즈로 일어는 이미 출간되었고 다른 언어도 근간된다고 하던데, 어서 읽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어를 정말 좋아해서 나중에 스페인어도 다뤄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내 생각의 영역이 넓어지는 게 좋다. 나는 영어로 내가 무엇을 하는 걸 좋아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 P54

특정하거나 센다는 행위가 나의 모국어이자 나의 사고 체계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새롭게 보며 관사들을 하나씩 차분히 감상한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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