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의 약속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7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정연희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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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전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틀인 가족 미스터리. 다만 이들이 자신들의 저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왔다는 게 다르다. 이로 인해 외부인과 교류, 소통이 가능해지므로 작품적으로는 꽤나 큰 차이점이 발생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가족 밖의 외부인의 볼 때 보인턴 가족은 비정상적이다. 강압적이고 통제 성향이 강한 어머니에게 다들 짓눌려서 시들시들하다. 어머니의 한 마디가 이들 가족에겐 곧 법이다. 이를 어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누구와 만나고 대화하는지 조차 일일히 관여하며 이들을 자기 손아귀에 두고 휘두르려고 한다.

 

 물론 모든 가족들이 이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 중 그나마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며느리 네이딘은 시어머니에게 순종하긴 하지만 그녀를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네이딘이 보인턴 가족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그저 그녀의 남편 레녹스 때문인데 레녹스는 저항의지를 모두 상실해 버린 상태이다. 그런 남편의 곁을 지키는 네이딘은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그리고 레이먼드는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어머니인 보인턴 부인을 죽이겠다 다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보인턴 부인 앞에서 그는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가 버리지만. 오빠인 레이먼드에게 동조하면서도 역시나 보인턴 부인에게 맥없이 당하고 마는 캐럴도 있다.


 보인턴 부인의 친딸인 지네브라는 정신적으로 몹시 불안정한 아가씨다. 당장에라도 그녀의 어머니와 분리해서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위태로운 모습이다. 작중에서 레이먼드도 지네브라를 걱정하며 보인턴 부인을 제거하겠다 다짐했었다.


 보인턴 가족을 둘러싸고 가족 내외부의 인물들 사이에 긴장감이 쌓여가던 중, 보인턴 부인이 사망한다. 새라 킹의 말대로 이는 보인턴 가족들에게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자유를 만끽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 가족 중 누군가가 보인턴 부인을 해쳤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 모두에게는 동기가 있고, 알리바이가 비기도 한다. 게다가 보인턴 가족들은 다들 어딘가 수상쩍은 태도를 보인다.


 사건 발생 후 등장한 푸아로도 이 부분을 지적한다. 그는 가족들 하나 하나를 용의자로 가정하고 그들을 압박해서 사실을 실토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 사건의 비밀이 하나하나 풀린다. 그렇게 유력 용의자가 한 명씩 사라지고, 여기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반전이 일어난다. 가족 미스터리의 전형인 줄 알았던 이 사건이 사실은 외부인의 소행이라는 점이다.


 보인턴 부인은 이 여행 이후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통제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수도 있다. 보인턴 부인이 죽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레녹스나 레이먼드의 반항에 부딪혔을 것이다. 보인턴 가족의 간수로 살았던 그녀는 이제 새로운 죄수를 찾아 나서지만 그 결과로 목숨을 잃고 그녀의 감옥은 산산조각이 난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제는 죄책감 없이 온전한 자유를 가지게 된 보인턴 가족들의 모습이 에필로그로 나온다. 과거를 딛고 일어나 다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흐뭇하다.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왜 '죽음과의 약속'일까.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제목과 작품의 연관성이 직관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라 이리저리 추측만 해보고 있다. 전작인 '나일강의 죽음'과 연결되는건가, 보인턴 부인이 죽음과의 약속을 한 대상인걸까, 아니면 보인턴 부인 자체가 죽음이고 나머지 가족들이 약속의 대상인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여하튼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심리적 묘사나 트릭 등 뭐 하나 빠지지 않고 골고루 재미있다. 국내에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다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의 닮은 점을 봤어요. 동일하지만 지니는 빛 속에 있고 노부인은 어둠 속에 있었군요.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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