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단어 -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
르네 피스터 지음, 배명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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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왜 좌파마저 민주주의를 위협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독일 언론인인 저자는 미국의 현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외부인이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미국의 상황을 분석하는데, 몇 가지 사례와 문제적(긍정적 또는 부정적 의미에서) 인물들과 그들의 저서, 논문 들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저자는 소수자 보호와 차별 철폐라는 명목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독단적이고 극단적인 좌파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쿠데타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좌파 내부를 분열시키며 또 다른 양극단인 극우파가 득세할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 오래 전부터 큰 이슈였고, 나도 여기에 공감했었다. 당연히 차별을 바로잡는다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나. 그런데 차별을 반대한다면서 또 다른 차별을 재생산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례들을 보면서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다.게다가 SNS를 통해 이전보다 쉽게 서로의 의견을 표명하고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뭇매 맞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많이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하는 것이다.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면 공격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주장을 지지하거나, 공감한다는 의미은 아니다. 오히려 발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그 주장에 조용히 반감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주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단순히 정치에만 국한해서 현상을 분석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언론, 기업 등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경도된 정치적 올바름의 기류를 보여준다. 사실 이쯤되면 여기에 올바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맞나 의심될 지경이다.


 나는 인종적으로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 그들이 겪는 차별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책에 나온 반인종차별주의자들의 극단적 주장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왜 저런 주장을 하는걸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반대편으로 기울게 만들자니, 그럼 운동장은 언제 평평해질 수 있는걸까? 백인은 인종차별의 원죄를 지니고 있다니, 백인으로 태어난 게 개인의 선택은 아니지 않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믿고 싶다. 저들의 반대선상에 있는 극우파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양극단에 선 이들이 내는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침묵한다는 점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내 발언에 대해 검열하게 되고, 최대한 논쟁적인 주제는 피하고 굳이 행동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정치적 표현은 몇 년에 한 번 주어지는 투표권 행사 정도다.


 저자는 결국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글쎄, 점차 양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서로의 말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태도도 극단주의자들이 거둔 승리가 아닐까. 이 양극단의 시대는 결국 결말을 맞게 될까, 후대 사람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평할까. 다소 우울한 궁금증이 생긴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 주장을 말한 사람의 피부색이나 성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내가 보기에 재앙이다. - P20

이른바 포용의 언어는 저학력 폭도보다 우월해지는 수단이자 먹고살기 바빠 진보적 담론의 최신 흐름을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 - P195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분노의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쿨하고 여유로운 자유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나 회케 같은 인물은 우리 사회에 불운이다. 그들에게 권력을 쥐여주고 싶지 않다면 그들의 지지자를 멸시하며 콧방귀를 뀌고 "개탄스러운 자들"이라고 욕해서는 안 된다. 더 적극적으로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시야만 존중하는 관용은 쓸모없고 황량하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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