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막장드라마 같은 리넷과 재키, 사이먼의 삼각관계가 그들의 고국이 아니라 머나먼 이국에서 펼쳐진다. 그것도 부부의 신혼여행지에서. 사실 그 곳은 배신당한 여자가 자신의 약혼자와 신혼여행으로 오려고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약혼자가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온다니, 어쩌면 여자는 두 번 짓밟힌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작품은 리넷과 재키, 사이먼의 관계를 조망하는데서 시작해 나일강 크루즈를 탑승하는 승객들의 면면을 하나 하나 살펴본다. 생각보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인데, 이들이 가진 각자의 비밀이 또 이 작품의 묘미이다. 휴식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여행 아닌 여행에 나선 이들도 있고, 개인적인 사연을 가진 승객들도 있다. 오리엔탈 특급살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오리엔탈 특급살인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승객들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가 다양해서 하나하나 추측해 보는 재미가 있다.


 리넷-사이먼-재키의 삼각관계로 인해 긴장감이 흐르던 중, 이 작품의 메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리넷 도일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정작 가장 의심스러운 재키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여기에 리넷의 값비싼 진주목걸이가 도난되면서 이 범죄가 금전적 동기라는 추정이 나오고, 꽤나 냉정한 사업가였던 것 같은 리넷 도일의 아버지로 인해 집안이 망한 사람이 승객 중에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면서 원한범죄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레이스 대령이 등장해 승객 중에 위험한 반동분자를 찾으러 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추리소설이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 알리바이가 확실한 제1용의자, 그 외에도 진주 목걸이 도난 사건이나 승객 중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위험인물, 여기에 승객들 개개인이 숨기고 있는 사실들이 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나일강 크루즈가 졸지에 살인범과 함께 하는 여행이 되는데 승객들이 생각보다 크게 동요하지 않는 점이 신기하다. 푸아로에 대한 신뢰가 크기 때문일까?


 물론, 푸아로는 이 모든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한다. 푸아로의 사건 설명을 읽다 보면 허를 찔린 느낌이다. '돌고 돌아 처음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 결국 치정범죄였다. 다만, 리넷-사이먼-재키의 삼각관계가 독자들이 생각하던 관계가 아니었을 뿐...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말 그대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결국 패배를 순순히 인정한 범인은 법의 심판대를 피해 다른 세상으로 도망친다. 결국 행복할 줄 알았던 신혼여행은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난 셈이다. 애초에 리넷이 사랑보다 우정을 앞세웠다면  세 사람은 다른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까? 사이먼의 성격상 언젠가는 파국을 맞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재키는 사이먼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막지 않았을 것이다. 이 커플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 이 모든 소동에 불구하고, 승객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사랑이 움튼다. 누군가에게는 비극적인 결말로 남았던 이 여행은 다른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나일강은 수 천년 전의 문명을 품고서 고고히 흘러간다. 

한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고, 또 한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도록 방치하고 있군.

"괜찮아, 사이먼. 어리석은 게임이었고 우리는 졌어. 그 뿐이야."

"사랑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일 수도 있군요."
"대부분의 위대한 러브 스토리가 비극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죠."
... "하지만 고맙게도 이 세상에는 행복이라는 것도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