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3년 파리에서 오를레앙으로 가는 기차 노선이 개통되었을 때 무시무시한 전율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철도 탑승체험이 공간에 대한 전통적인 느낌을 무너뜨린 것이지요. 그는 철도 여행을 통해 공간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속도가 오를수록 풍경은 시선에서 빠르게 벗어납니다. 길가의 나무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창밖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마침내 사람의 눈은 어떤 대상도 주목하지 못하게 되지요. 눈앞에서 공간이 죽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겁니다. - P151

사람의 느낌과 경험으로 구성되는 시간을 질적 시간, 엄정한 물리적 분할로 이루어진 시간을 양적 시간이라고 합니다. 시계는 양적 시간을 위한 발명품이지요. ‘기차는 해 질 무렵 떠나네가 아니라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시간이 신인 시대. 정확한 분할과 계산된 효율이 사람의 느낌이나 경험에 앞서는 시대. 양적 시간에만 휘둘려 살면 우리는 시간의 영원한 노예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삶의 중요한 기준이 시계가 만들어내는 시간이라면 우리는 정녕 자기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의 명령에 따라야 하니까요. 우리는 시간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게 되는겁니다. - P152

미래는 예상하고 예측만 해서는 안 됩니다. 힘을 모아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지요. 그래서 ‘미래는 발명해야 한다‘는 명제가 가능합니다. - P163

세비야.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과 광장이 있는 곳. 알카사르 정원과 스페인 광장, 정원은 채우고 광장은 비우는 곳. 정원에 들어선 이는 객체, 광장에 들어선 이는 주체. 유럽 이곳저곳의 정원과 광장을 둘러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 P250

중정에 무언가를 채워 아름답게 가꾸면 정원이 됩니다. 물톤 정원이 집 밖으로 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원은 광장과는 다른 공간 구성 철학을 가지지요. 광장이 비움의 원리를 따른다면 정원은 채움의 원리를 따릅니다.
다른 것들로 많이 채워져 있는 곳에 가면 내 주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정원은 그 구성 요소들이 주체이며 나는 객체일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구경꾼이 되는 것이지요. 정원에 가면 나는 채워진 공간 사이를 떠도는 손님입니다. -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