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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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 켄 리우 작가의 소중한 두 번째 단편집!

 

켄 리우 작가의 책은 두 번째로 읽는다. 이전에 읽었던 것은 민들레 왕조 연대기 ‘제왕의 위엄’이라는 이야기로 초한지를 SF로 풀어낸 이야기였다. 초한지의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들을 작가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들로 만드는 것은 물론 특별한 설정을 통해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사실 이 작가는 단편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항상 단편을 읽어야지 하면서 전자책으로 종이동물원을 사놓고 전자책 기기의 방전 및 고장을 핑계로 안 읽다가 이번에 나온 종이책을 읽게 되었다. 책 제목은 꽤 길고 예뻐서 흥미가 들었다. 게다가 표지의 우아하하고 묘한 동물의 조각상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어서 나는 물론이고 엄마마저도 이건 무슨 책이냐고 할 정도로 맘에 들었다.

 


책 제목의 금박마저 고급스럽다.

12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는 이 책에는 매우 짧은 단편도 중편 정도 되는 단편과 시리즈 단편도 들어있다.

짧게 내용과 느낌을 써본다.


호(弧)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녀를 떠난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만 결국 부모에게 아이를 남기고 떠나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던 중 시체의 근육과 힘줄들을 예술처럼 보존하는 일을 하게 되고 그 회사에서 만나게 된 차기 사장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세포의 보존과 재생으로 영생을 사는 시술을 개발하고 그녀는 그 시술을 만들어낸 남편과 시술을 받고 영원한 삶을 얻어 함께 영원의 삶을 살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와 달리 남편의 시술은 실패한다.

- 책을 읽으면서 인체의 신비전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모든 모형이 진짜 사람들이라는 것에 무섭고 보기 괴로워서 친구와 가려고 하다가 결국 가지 않았던 전시였다. 내가 영원을 살게 된다면 그것도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영원히 말이다. 아마다 나도 주인공처럼 끊임없이 시간이 있으니 배우고 싶었던 것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녀처럼 부족을 느끼지 않았을까? 난 그녀의 선택에 전혀 의문감을 느끼지 않았다. 인생은 유한하기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심신오행(心神五行)

우주에서 표류하게 된 주인공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도에도 없던 행성에 도착해 현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게 되면서 그곳의 생활방식과 형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 작가가 생각하게 된 계기 같은 게 몇몇 단편에는 후기처럼 짧게 적혀있는 것들도 있었는데 이 단편이 그랬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그것을 풀어내는 모습이 흥미로웠고 어떤 결론을 맺을지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보았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너무 깨끗하게만 커서 더 감기나 병에 약하고 알레르기가 생긴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사람은 적응하니까 말이다.

매듭 묶기

매듭 문자로 지식을 이어나가는 소수민족에게 이방인이 찾아와 자신을 도와주면 점점 적게 수확하는 쌀 대신 더 좋은 쌀을 찾아주겠다 한다.

- 이 책에서 읽었던 단편 중 손꼽히게 인상적이고 재미있고 너무나 씁쓸했던 단편이었다. 예전에 중국에서 배낭여행을 하면서 친구와 오지로 도시와 먼 곳으로 여행하면서 정말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나 여행책자에도 한쪽 실리지 않는 곳으로 알음알음 가곤 했다. 그곳 사람들의 순박하면서도 우리들과의 대화에 거래로 이곳의 삶을 바꾸는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 독특함을 더 느끼고 싶었던 게 약간 죄책감적으로 남았던 여행지였다. 토무가 미우면서도 내가 그였던 것 같아서 속이 시끄러웠다. 아마 내가 갔던 그곳은 이제 그곳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다 읽고 나서 너무 씁쓸하게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사랑의 알고리즘

완벽한 알고리즘을 통해 대화 가능한 로봇 인형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아이를 잃고 아이를 대체할 로봇을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언어와 생각 체계마저 의심이 든다.

- 인공지능 로봇은 매년 뉴스와 예능 등에 은근슬쩍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전에도 지나치듯 본 예능 프로에 로봇 전문가가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리나 클로버 같은 것들도 로봇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다. 이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짜내는  주인공의 똑똑함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것에 잠식되어가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들에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기묘한듯하면서 너무 짠해서 마지막까지 안타까웠던 단편이었다.

 


카르타고의 장미(싱귤래리티 3부작)

뒤에 남은 사람들(싱귤래리티 3부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싱귤래리티 3부작)

사람의 영혼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카르타고의 장미의 주인공의 동생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사람이었다. 대학에 가기 전에 히치하이킹으로 대륙을 횡단하겠다던 포부를 가지고 정말로 해낼 정도로 그녀는 공부를 마치고 일을 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람의 영혼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의 뇌를 복사하겠다고 한다. 언니는 말리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죽음과 영원한 전자의 세계의 삶으로 바꾼다. 그런 과학의 발달로 뒤에 남은 사람들은 선택하게 된다. 자연히 죽거나 자신의 뇌를 업로드하거나 세상은 점차 기술을 잃어버리고 남은 재료들을 다시 사용하며 다시 이전처럼 바느질을 하고 재활용을 하는 과거의 삶을 산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지만 그들도 선택해야 한다. 유한한 삶을 살지 무한의 세계로 들어갈지, 이제 세상에 사람은 전자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들은 3차원이 아닌 수십 차원의 세상에서 무한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성질을 이용해서 아이를 만들고 키워낸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도 한계를 느낀 이들은 있고 더 멀리 우주로 나아가려 한다.

- 읽으면서 서글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연작이었다. 지금 코로나와 여러 자연재해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에도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런 식으로 자연환경 변화와 기술 변화로 선택을 강요당하면 어찌나 슬플지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대하면서 단편집은 순서대로 읽는데도 이 첫 번째 시리즈 책을 읽자 다음이 궁금해서 다음 시리즈 연작으로 넘어가서 읽고 말았다. 마지막 표제작에서 정신만 남은 이들이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만들고 사랑하며 아끼는 모습에 인류애를 보았지만 그 결과에서는 서글픔이 느껴졌던 단편이었다.

만조(滿潮)

정말 짧아서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도 어렵지만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난다는 건 어떤 걸까 상상하게 된다.

만조보단 길었지만 아주 짧아서 줄거리를 소개할 것도 없지만 여러 가지 생각할게 많이 생기는 단편이었다. 로봇이 어떤 일까지 하게 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것까지 하게 해야 할지 사람의 도리란 무엇일지 어쩌면 이 단편에 실린 현실 같은 미래가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더 그렇게 느껴져 다 읽고 나서 뭔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달을 향하여

이 단편도 짧았지만 많은 현실을 담았다. 이민 외부인 법 불공평,,, 우린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란 이동의 삶이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릴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새로운 삶을 찾아 이곳에 온 어린 소녀이다. 살인과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다호 시티에 산다. 새롭게 사금을 찾아온 중국인들은 좁은 곳에서 살면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해먹는 음식들이 낯설면서도 궁금하다. 엄마의 잔소리와 잡일이 하기 싫어 밖으로 놀러 나왔다가 중국인들이 사금 캐는 걸 멀리서 구경하다. 중국인들의 금을 빼앗으려는 강도들이 라오관에게 총을 쏘는 걸 목격하고 라오관이 총을 맞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다 다치고 라오관은 강도들의 제압하는 걸 보게 되어 중국인들과 친해지고 그를 통해 관우라는 중국의 장수 이야기를 듣고 중국인들의 삶과 음식을 체험하게 된다.

- 사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삼국지의 은근슬쩍 팬인 나로서는 제갈량과 손권을 가장 좋아하지만 요즘 들어 다시 볼 때마다 관우와 장비가 좋아졌다.(유비는 언제 봐도 좀 별로다.) 게다가 중국 여행을 할 때마다 어디서든 보게 되는 관우의 동상 등이 관우를 친근하게도 느끼게 했는데 이번에 읽은 이 단편을 보고 나서는 삼국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 읽었던 과 다른 관우의 매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에서는 왜인지 재신으로까지 (군신이 아니라 재신이라니) 불리는 관우가 얼마나 중국인들 삶과 정신에서 큰 힘이 되는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에 이민 갔던 모든 이민자들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주인공 릴리처럼 로건(라오관)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그가 진짜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관우갔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조금은 통쾌하고 즐거웠다.

내 어머니의 기억 407

앞으로 살날이 2년밖에 남지 않은 엄마는 짧은 삶 대신 긴 우주 예행의 상대성이론에 기대 몇십 년마다 한 번씩 전혀 늙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시간여행자 라는 소재는 많이 있었다. 영화로도 만화로도 말이다. SF 소재로 치료를 위해 시간 여행도 많이 하지만 여기서는 그저 자신의 딸을 보기 위한 시간 여행이 이야기된다. 딸의 관점에서만 나오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충분히 느껴진다. 자신보다 많아지는 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모든 이야기를 다 읽게 되는 마지막으로 읽은 단편이었는데 씁쓸했던 단편이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들을 읽다가 조금은 마음이 따뜻했던 것 같다.

12편의 단편들 모두 흥미진진했다. 어쩐지 지금 현실과 멀지 않은 이야기라던가 SF 지만 너무 현실적이기도 해서 읽는 내내 허공에 떠있는 것 같지 않고 몰입하기도 좋았다. 특히 이 작가의 뿌리와 관련되었을 중국 문화와 관련된 단편들이 좋았다. 군신이지만 중국에서는 재신으로 불리며 사업할 때마다 재를 올리거나 식당 등의 계산대에서 자주 보는 관우의 끈질긴 미국 이민기는 관우의 생에 와 중국인들의 삶을 잘 보여줬던 것 같다. 작가가 참고한 논문이나 이야기들을 뒤에 써준 것도 재미있었는데 그렇게 현실에 있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서 그런지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아서 더 재미있고 무서웠다. 내가 생각하는 마냥 낙관적인 미래라기 보다 현실적이고 암담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고뇌 안에 우리의 삶이 유한함의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뇌, 삶이란 가족이란 여러 고뇌와 고민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나쁘지 않았다. 이 작가의 아름답기도 하고 소름 돋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단편집이었다. SF 소설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읽기 쉽고 같은 동양의 문화를 베이스로 해서 서양의 공감 안 되는 소설에 조금 지쳤다면 딱 읽기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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