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좌백.진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협소설이라 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보잘것없는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 당대 최고의 무인이 되어서 강호를 떠돌며 적의 무리를 소통하는... 그런 내용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보통 그렇다. 그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들은 정말 기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신비한 여인에게 비급을 얻는다던가, 신조같이 특별한 영물을 만나 무예를 전수받는다던지, 우연히 의형제를 맺은 이를 통해서 강호를 휘어잡게 된다던가 말이다. 그런 무협지들을 항상 나는 장편으로만 봐왔다. 짧아야 1~2권 길면 8권 11권.... 길게 길게 그러면서도 너무나 재밌어서 밤을 꼴딱 세우고 보게 되는 게 무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기한 이야기와 가슴이 탁 트이는 절묘한 승리! 누가 생각해도 멋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승리들 이런 것들에 익숙한 내 무협 인생에(사실 김용 소설들 이외에는 그렇게 많이 본건은 아니다) 이번에 본 단편은 내용이 아기자기한 게 아닌 것도 있는데 다 읽고 나니 흐뭇하고 아기자기 한 무협을 본 것 같았다.

 

 


좌백 그리고 진산 작가가 무협에 개와 고양이를 소스로 함께 써 내려간 단편인 #애견무사와고양이눈 은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무협 단편집이다. 무협은 장편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던 나에게도 무협의 기분이 물씬 나면서 여운과 함께 몇몇 단편은 단편으로 끝내기 아쉬운 내용도 있었으며, 단편 단편 이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내용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의 관계성에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가득한 단편이었다.

 

 

(살짝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들개 이빨

개는 혼자서 싸우지 않는다. 할 수만 있으면 동료를 모아서 함께 싸운다.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개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기 때문에... p22

개라고 불리던 무협의 조연도 되지 못할 한 이름 없는 이가 주인공이 될 법한 이를 죽이고자 한다... 의리로 협의로... 무협의 의미로 보면 주인공이 바뀐 것 같지만 짧은 단편을 보면 그가 주인공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가 보여준 의리, 협의는 그 어떤 무협인 보다 절절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숨죽였고, 동료를 모았고, 시기를 기다렸다. 이런 것이 협객행 아닐까 씁쓸하면서도 주인공과 같이 마지막에 웃게 되는 단편이다.

 


고양이 꼬리

품 안의 새끼 고양이가 꿈틀거렸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살 수 있어. 살 수 있을 거야. 십이는 걷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며 p43

정말 짧은 단편이지만 단연코 인상적이었다. 이 단편집은 다 읽고 나면 무협의 주인공이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조연이나 지나가는 엑스트라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들에 집중하면 그들의 협과 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단편의 주인공은 정말 이름도 없이 십이로 불리는 여자아이가 자신의 삶의 목표를 잃고 목숨을 건 복수를 하면서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정의란 이런 것일지도 하면서 보게 되고 야생 고양이의 삶 같기도 해서 인상적이었다.

 

 

애견무사

"그냥 개일 때는 개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는데 멀쩡한 사람 모습으로 저리니 문젭니다. 창피해서 같이 다닐 수가 없어요." p167

표제의 단편이자 6단편 중 가장 긴 단편이다. 여기에 신비한 개의 머리 형상을 한 영물과 함께 강호에 처음 나오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이다. 내용이 귀신과 강시 등이 나와서 요재지이라도 보는 듯이 기기묘묘하지만 아초라는 영물의 성정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해 섬뜩한 이야기도 장면도 유머러스하게 넘어가게 해준다. 강호에 첫발을 내디디는 초짜 무사의 첫 모험이 아초 그리고 도사 주제에 엄청나게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또 다른 주인공과 함께 펼쳐진다. 정말 어떤 내용으로 끝날지 두근거리면서 보는 건 물론 단편으로는 아쉬운 게 좀 더 시리즈물처럼 나와도 재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었다.

 


고양이 눈

삶이란 본래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삶도 자기가 원하던 순간에 맺어지지 않는다. 인가에 비해 오래 사는 요괴의 삶도 마찬가지다. p219

애견무사 초입에 아초에 의해 혼비백산하며 도망간 고양이 요괴가 잃어버린 기력을 모으기 위해 고양이의 모습으로 인간들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요괴를 요괴인 줄 모르고 정주는 가족들을 보며 요괴는 인간의 삶이란, 어리석은 것들, 하면서도 그들에게 은근 슬쩍 정을 주면서도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결국 요괴는 큰 인심을 쓰게 되고 만다. 요즘 말로 츤데레 (툴툴 말로만 타박하면서 행동이나 다른 것들로 잘 챙겨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 스타일 고양이 요괴는 늙은이에 세상 다 산 것처럼 하면서도 얼핏 무언가가 맹하다. 내가 니깟것들 하면서도 정을 준다. 두고 봐라 하면서도 챙겨주는 게 우스우면서도 정말 고양이 같다. 고양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예뻐서 다가가면 멀어지고 놔두면 또 앞에 와서 등 좀 긁으라 하고 말이다. 이 요괴도 고양이는 고양인지라 주인공에게 정을 붙이고 만다.

 


폐허의 개들

시간이 얼마나 흐르건 그가 죽건 살 건 그는 그 하나만을 위해서 있을 것이고 싸울 것이다. p260

애견 무사의 아초와 강호에 첫발을 디딘 덜떨어진 도사와 세상의 때가 가득 묻은 젊고 능력 있는 도사가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쉽다 했더니만 능력 있는 도사도 그랬는지 아초와 풋내기 도사를 데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돈벌이를 계속하는 모양이다. 이번의 이야기는 절절한 충심으로 가득한 이야기로 백구, 황구, 흑구라 불리던 세 사내의 죽음 이후까지 이어지는 충심으로 죽어서까지 자신의 주군을 지키려 하는 이들의 혼을 달래는 이야기였다. 절절하면서도 슬픈 이야기도 아초와 풋내기 도사와 함께하면 웃을 수 있다.

 


고양이 귀

그때는 훨씬 작았던 꼬리의 고양이가 불패의 다리에 몸을 비벼댄 것이다. 지금처럼 p275

무림 칠 공주 듣기만 해도 뭐지 싶은 이칠 공주들의 이름이 정확히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나올 때면 무협 좀 읽어봤다 싶은 이들은 생각나는 이가 있거나 이 단편을 순서대로 읽었던 이들은 앞서 읽었던 단편의 그녀들의 이야기구나 하게 된다.

꼬리, 마 씨, 불패, 얼음, 정인, 미인, 노대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고 강호에서 한 번씩은 들어봤음직 한 여자 7의 모임... 악명으로 높은 자 혹은 미로 이름난 자 다 다르지만 그녀들의 모임은 정말 나쁜 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은 죽는다... 이번에 그녀들이 이야기한 자는 천하의 악당이지만 무림의 맹주다. 사실 난 도사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가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이 이야기로 정했다. 앞선 단편들에서 궁금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물론 다른 무협에서 궁금하거나 인상 깊었던 이들이 은근슬쩍 그 사람일지도 몰라 하면서 나오는 이 유쾌한 단편을 좋아하지 않을 이가 있을지? 보통 단편은 제목이 끌리는 데로 읽는데 이 책을 그리 읽었으면 덜 재미있었을까 싶어지는 마지막에 넣은 이유가 있겠다 싶은 단편이었다.

 

 

 

6편의 짧은 단편들을 모은 무협이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짧음이 아쉬운 단편이 벌써 몇 편인지. 단편의 매력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짧고 인상 깊으면서 어딘가 조금만 더 해주지 하는 그 아쉬움. 이 단편집이 딱 그렇다. 물론 무협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해서 읽어볼 생각이 안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정말 재밌는 단편들을 놓치는 거라 얘기하고 싶다. 게다가 개 아니면 고양이라니 당신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작가가 둘을 적절히 섞어서 단편에 넣어놓았다니 자신이 개파인지 고양이 파인지 확실한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이번 기회에 자신의 호불호를 한 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고양이랑 개가 나오는데 안 재미있을 수 있겠나? 빠지는 단편이 없으니 다들 보시길, 게다가 이 두 작가는 이 단편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들인데 다른 작품이 궁금해질거라고 나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