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나를 묻는 밤의 독서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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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면서 약간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운하라는 저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굉장히 많은 책을 낸 소설가이자 비평가인데 어떻게 이렇게 몰랐을까? '카프카의 서재'라는 책은 알고 있었지만 그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제목도 표지도 친근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나를 묻는 밤의 독서'라는 부제처럼 책에 대해 쓴 글들이어서 가독성이 좋고 읽다보면 알찬 느낌과 함께 여러 방면으로 관심이 확장되어 독자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책이지만, 마냥 건전하고 유익한 느낌이 아닌 '새벽 2시'에 어울릴 법한 감성과 오래도록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여운이 있다. 표지나 제목에서는 어쩐지 퇴폐미가 느껴지는데, 글쎄... 일개 독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왜 이런 표지를 썼는지, 편집자의 깊은 의중을 이해할 길이 없지만.  

책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지는 꽤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메타북을 통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주변에도 메타북만을 즐겨읽는 이들이 몇몇 있는데,(메타북'만'을 즐겨읽는다는 것은 원문 전체를 읽는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않게 있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나면 반드시 관심을 끌었던 책을 찾아서 읽는데, 그렇게 독서를 확장시켜가는 재미를 주는 것이 메타북의 매력인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작가들의 고전이나 알려진 명작이 아닌 다소 낯선 작가의 책들도 다루고 있어  정말 여러 방면으로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꼭 찾아 읽어야겠다고 메모해둔 책과 마음에 두는 구절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이 책의 첫장 '내 모호한 열정의 숭고한 대상, 나는 무엇을 원해야하는가?'에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다루고 있어 친숙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감상이라면 수도 없이 읽어보았기에(그만큼 많이 인용되는 작품이기에) 식상할만도 했는데, 좋아하는 소설이어서인지 저자의 관점을 따라가는 과정이 내내 흥미진진했다. 이어지는 작품들도 딱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금씩 천천히 빠져들게하는 배열이었다. 읽을수록 점점 더... 깊이 감춰져있던 의식,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되고 인간임에도 미처 모르고살았던 인간성(인간의 성질?)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주로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읽었는데도 읽다보면 새벽 2시인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나는 선함이라든가, 그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든가 하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기숙이 자기 내부의 진흙탕 속에 빠져들어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어 버린다. 무엇보다 난처한 것은, 그것이 모두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이 여겨지고, 결코 병이나 변태로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결국 이 변태와 싸우려는 생각은 아주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것이 나의 정상적인 상태인가 보다, 라고 거의 믿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는 무언가 비정상적인, 비열한, 비밀스러운 쾌락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중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 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아름다움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중

그러나 사실 어떤 역사적인 생이든, 그 생을 영원의 관점에서 내려다본다면 그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리는허망한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반딧불이의 삶처럼.
단 한 번뿐인 생.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한 번뿐인 생들은 그렇게 잠시 왔다가, 봄날에 잠깐 피었다가 스러지는 봄꽃들처럼 그렇게 사라져간다.
이런 허망함을 알기에, 이런 허망함의 무의미함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인간은그토록 집요하게 기억에, 자식이든 사회이든 간에, 누군가의 기억에 영원히 불멸의 이름으로 각인되기 위해 그토록 집요하게 몸부림치는 것은 아닌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내 생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 자신이 기억하는 내 생의 기억조차도 불확실하고 파편적인것이라면, 내 생의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 p119
즉,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이런저런 사건들과 사실들의 총체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허구의 소설이다. 반면, 진짜 삶의 진실은 불연속적이고 파편적인 물리적 사건들과 사실들의 총체일 뿐이다. - p121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완전히 독자적인 전대미문의 행복감, 그 근거가 무엇인지 나 자신도 알 수없는 그런 행복감이 내 온몸에 흘러 퍼졌다. 단번에 나는 삶의 굴곡에 무관심해졌고, 삶의 재앙도 그저 대수롭지 않는 불운이었으며, 삶의 짧음도 단순히 우리 감각의 기만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내 안에서 무언가가, 보통은 사랑만이 이룰 수 있는 무언가가 일어났고, ㄱ이와 동시에 나는 어떤 진미의 물질로 채워진 듯이 느꼈다. 아니, 이 물질이 내 속에 있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그 물질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평범하다거나, 공연한 존재라거나, 죽어 없어질 몸이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마르셀 과자 한 조각은 마르셀의 잃어버린 시간, 깊고 어두운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시간을 순간적으로 해방시켰다. 과자 한 조각이 빚어내는 맛과 향기가 기억과 통합되어 시간의 수정이 만들어진다. 프루스트는 향기로운 시간의 수정을 말한다. "고요한, 맑은 울림과 향기를 지닌, 투명한 시간들의 수정."
파편적으로만 보였던 과거, 공연한 존재이거나, 죽어 업성질 몸이라고 생각되던 실존이 "향기로운 시간의 수정"인 기억의 연금술을 통해 현재와 지속성과 의미론적으로 연결되면서 삶 전체의 의미가 솟아난다. 삶은 더 이상 파편적이지도, 덧없지도 않고, 허무하지도않다. - p123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개인적인 상황때문에 책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설득해야했고, 또 다독여야했고, 이도저도안될땐 미치광이처럼 울부짖어야 했다. 그런데 책속의 몇몇 구절이, 많은 문학 작품들의 사심없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생과 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들이 조금의 위로가 되어준게 사실이다. 마치 나의 고군분투에 동감하는 듯한 느낌, 마치... 생의 의미를 이해하고자하는, 삶의 무의미를 어떻게든 의미로 고쳐놓고자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쥐어짜내고 있는 이 지랄 발광이... 응원과 지지를 받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 중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은 하나같이 아주 매력적인 작품들인 것은, 또다른 고마움이다. 이미 읽은 책, 아직 읽지않은 책을 다시한번 찾아보며 한동안 이 작품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로 자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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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식탁 (리커버 특별판, 알라딘 단독)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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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터의 삶의 방식은 두 아이를 키우는 저에게 킅 영향을 끼쳤어요.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쓰는 타샤 할머니의 모습에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에게 정성이 담긴 맛있는 요리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기는 매력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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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 - 음식칼럼니스트 주영욱의 서울 맛집 77
주영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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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http://blog.naver.com/sso_long/221150581483

서울 맛집 77 군데를 다루고있는 이 책은 주영욱 씨가 중앙 선데이에 연재했던 칼럼을 엮은 것이다. 일간지 주말판에 실렸던 칼럼인만큼 가독성이 매우 좋고 다루는 식당들도 생활정보라 해도 될만큼 접근성이 좋다. 비단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부담없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특급호텔이나 프라이빗한 레스토랑이 아닌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싶을 때 망설임없이 찾을만한 식당들이라는 것이다. 친근하고 서민적인 메뉴가 아니더라도 조금의 무리(큰 맘 먹는 정도가 아닌)를 한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음식들이다. 위화감이나 우쭐함과 관계없이 맛있는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식당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소개된 맛집들 중에는 이미 가본 곳도 지나치다 본 곳도 있었는데, 내가 가보았던 곳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취향이 비슷한 사람의 평가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믿음이 갔다.

블로그나 인스타에 맛집 지도가 유행한지가 벌써 몇년이 지났으니 정보로 치자면 검색창에 치기만해도 수두룩...
그럼에도 항상 갈만한 곳을 찾지못해 헤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메뉴는 어디라는 식의 정해진 답처럼 제공되는 정보는 늘 딱 그만큼이었다. 특별한 인상을 받을 수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맛집 블로거처럼 지도나 메뉴나 실내공간을 상세하게 공개하고있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읽으며 직접 찾아서 맛보고싶은 호기심이 마구 생긴다.
저자가 직접 맛본 음식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플레이팅도 맛깔나게 되어있어서 매일 요리를 하는 주부들에게 영감을 줄만 하다.
무려 77개의 맛집을 다루는데 딱히 땡기지않는 곳은 몇군데 되지않고 꼭 가보고싶은 곳에만 인덱스 스티커를 붙인 것이 저만큼이다.

잡지나 포스팅에 등장하는 사진 위주의 정보보다 글로 맛을 설명하는 편이 훨씬 더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주말마다 소개된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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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달, 블루문 창비청소년문학 81
신운선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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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고 아마도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읽으면서였던 것 같다. 이후 창비에서 출간되는 청소년 문학들을 찾아읽으며 청소년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었다. 아동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다루는 책들이 많지않아 나 역시도 학창시절 독서에 흥미를 잠시 잃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어린이 대상 책들을 신나게 읽다가 청소년이 되면서 갑자기 어른의 세계를 다루는 문학작품으로 넘어가야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다양한 창작 및 번역 작품들이 출판되고있고 '마중물 독서'라는 운동도 있어 형편이 조금은 달라진 것으로 알고있다. 그렇지만 충분치는 못한 것 같아 지속적으로 청소년 문학에 관심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수연'이라는 고3 여학생이 뜻하지않게 임신을 하게되고 출산과 양육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있다. 수연, 지호, 달이... 등장인물은 여럿이지만 이야기는 오롯이 수연의 이야기이고 수연의 삶이다.

결혼을 하지않은 채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뜻하지않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새 생명의 탄생이 언제나 축복받을 일은 아니다. 수연의 상황은 정말이지 terrible 이라는 말로밖에 표현을 못할 일인 것 같다. 나를 수연에 대입해보아도, 내 자식을, 내 친구를 대입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시종일관 담담함을 유지하고있는 등장인물들처럼 행동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큰소리로 원망하거나 절규하거나 비통해하는 등의 지랄발광을 하며 분이라도 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 중 수연은 어쩌면 태연해보일 정도로 담담하다. 그것은 아이를 키워보지 못해 '아기'라는 존재에 낭만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이의 순수한 청소년(물론 그들의 행위는 사회가 청소년에게 기대하는 순수함을 충족시키지는 못하지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수연의 정서의 바탕이 '체념'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수연은 성장기의 상처를 안고 묵묵히 자라고있는 청소년이다. 책을 읽으며 수연의 상황은 현실의 많은 청소년들에 비교하자면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제 3자인 독자로서 드는 감정일뿐 누구나 내 상처가 제일 아픈 법이겠지.
상처로 얼룩진 성장기를 보내는동안 수연은 체념의 기술을 익혔다. 그 또한 기술이라면 수연의 주변인들은 모두 그 기술을 익힌 이들이다. 다른 방도가 없는 최후의 선택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절규하지않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뜻대로 되지않는 인생, 되는 일이 없는 날들을 살아본 그들이기에. 가벼운 핀잔 수준으로 아이를 낳은 수연을 원망하는 아빠나 이렇게저렇게 수습을 해보려다가 결국 태어난 아기를 보러 병원에 가는 지호엄마, 자신은 그토록 원하던 임신과 출산에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원치않는 아이가 생겨 낳아버린 수연에게 따뜻함을 잃지않는 영미 씨...

책의 마지막 장,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인물들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때때로 아팠고 갈등을 대충 훑게 될까 봐 조바심을 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다. 이 소설이 충분히 극단적인 사건일 수 있는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미혼모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설레발 없이 차분한 어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갈등의 표면만을 대충 그려서가 아닌 것 같다. 인물들의 갈등이 깊이 다루어졌다는 실감은 사실 그다지 없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 조바심을 냈을 만큼 인물들의 내면의 고민들이 충분하게 고려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정작 이런 '사건'을 겪게된 당사자들은(이미 체념에 익숙해진 이들이라면 더욱)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전력이고 최선이며 현실일 수도 있다. 얼만큼의 비극인지 얼마나 희극적인 상황인지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나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인생들을 남의 시선으로 소파에 앉아 볼 때에나 가늠이 되는 일이다. 정작 그 안에서는 누구든 각자의 방식대로 일을 해결하든 헤쳐나가든 하는 것이다.

수연의 결정에 동의하지않는 기성세대이지만, 수연의 상황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현실적인 지호의 반응은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이지 않은 배신이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현실과 비교하자면 환타지에 가깝다고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반응이고 상식 수준의 배신이다. 사랑이란 그런거라고,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생의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싶어지는 나는 역시 별 수 없는 기성세대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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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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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한번쯤 이 구호에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감히 '누구나' 그랬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리얼리스트, 꿈, 유토피아... 이 단어들의 조합은 어떤지 앞뒤가 안맞는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인 구호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꿈과 현실 사이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팩트이다. 우리는 완전한 현실도 완전한 이상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완전한 현실주의자도 완전한 이상주의자도 아닌 채로 평생을 살아가지 않던가!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주의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 또한 꿈과 현실 사이의 어드메에  살고있음을... 이번에도 역시 '누구나'라는 단정을 성급하게 해버리고 싶다.

이 책은 출판되기 전부터 날 설레게했던 책이다. 곧 번역, 출판된다는 소식에 얼른 읽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막상 출판된 후에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달이 지나서야 읽었는데, 꼭 바빠서만은 아니었다. 집에 이 책을 놓아두고 표지를 보며 흐뭇해하면서도 며칠이나 묵혀두었던 것은 책과의 '썸'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기 위해서였다면..............이상한가요? ㅋㅋㅋ 그냥 좀 아껴두고 묵혀두었다가 천천히 시간을 내어 읽고싶었다. 적당한 시간에. 좋은 기분으로. ^^   

지은이 뤼트허트 브레흐만은 유럽의 젊은 사상가로 이 책은 네덜란드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국가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난 9월 한국어로도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서두에 제시된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부분을 읽다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많은 석학들의 찬사가 실렸으니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나는 추천사를 믿지 않는 편이므로) 찬사 그 자체, 그 문장들에 설레임과 들뜸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얼른 책장을 넘겨보고 싶어진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유토피아의 귀환
2.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무상으로 지급해야 하는 이유
3. 빈곤의 종말
4. 닉슨 대통령에 얽힌 별난 이야기와 기본소득 법안
5. 새 시대를 위한 새 수치
6. 주당 15시간 노동
7. 어째서 은행가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는가?
8. 기계에 맞서는 경주
9. 풍요의 땅 너머
10. 아이디어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목차만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쉽고 위트있는 문장으로 쓴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 유토피아 플랜이라면 어쩐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상에 철학이 더해지고 이념들이 얽혀, 현학적인 문체로 어렵게 쓰여 있을 것만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열려있다. 진입장벽 같은 것은 없다. 누구나 읽고 바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곳곳에 매력있는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들이 인용되어 더욱 흥미로웠다. 물론 오스카 와일드만 인용된 것은 아니다. 미주만도 4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 인용이 흥미를 돋운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에 따르면, 인간은 풍요의 땅에 도달하자마자 다시 한 번 머나먼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닻을 끌어 올려 항해를 떠나야 한다. 와일드는 "진보는 유토피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저 멀리 수평선은 텅 비었고 풍요의 땅은 안개에 싸여 있다. 우리는 이 풍요롭고 안전하고 건강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유토피아를 매장시켰다. 여태껏 누려온 것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므로 지금까지 꾸어온 꿈을 대체할 새 꿈이 없다. 실제로 부유한 국가의 국민은 대부분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무상 현금지원은 세계가 보증하는 기본소득이다.
단 몇 년 동안만 실행하는 것도 아니고, 개발도상국에서만 실행하는 것도 아니며, 빈곤층을 위해서만 실행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이 장의 제목이 가리키듯 누구나 수혜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호의가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 따라서 무상 현금지원을 "공산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이라 부르자. 이것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수당을 매달 지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 유일한 조건이라면 "맥박이 뛰는 것"이다. 무상으로 지원 받은 현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지 어깨너머로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지원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도 없다. 특별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지도 않고, 다른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노령자, 실업자, 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추가로 수당을 지불할 뿐이다.
이제 기본소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사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관련 투표가 진행되었다는 뉴스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놀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미처 상상도 못해본 일이 현실적인 문제로 논의되는 세계가 있었구나... 충격일 정도로 신선한 아이디어로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저항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은 관성을 따르는 본능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실험들, 여러 사례에서 드러나는 가능성들은 저항이 심했던 나를 거의 완벽하게 설득했다. 이 책은 우리의 착각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그로인해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게 한다.

광고기업 중역은 1파운드를 벌어들일 때마다 7파운드 상당을 스트레스, 과소비, 오염, 부채 등의 형태로 파괴한다. 그러나 환경미화원은 1파운드를 벌어들일 때마다 12 파운드 상당의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창출한다.
성과 위주 사회의 목표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 수립했던 5개년 계획 못지않게 불합리하다. 생산통계를 기반으로 국가의 정치 제도를 수립하는 것은 만족스러운 삶을 대차대조표로 바꾸는 태도다. 저자인 케빈 켈리가 주장하듯 "생산성은 로봇에게 해당하는 용어다. 인간은 시간을 소비하고, 실험하고, 놀고, 창조하고, 탐색하는 활동에 탁월하다." 숫자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하고, 유토피아를 달성하려는 비전이 전혀 없는 국가가 구사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놀랍게도, 이미 150여년 전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종국에 가서는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면 충분하리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카를 마르크스 역시 "누구나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가축을 기르고,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는 비평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미래를 예견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한 후에도 우리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일에 쏟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유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면 악행을 부추길 뿐'이라는 우리 안의 고정관념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내면의 저항 그 안에만 머무른다면 앞으로 15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게으름과 여가라는 '악행'을 누리지 못하고 의미도 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있게되지 않을까? 저자는 포드의 말을 인용해 "여가가 '잃어버린 시간'이거나 계급 특권이라는 개념을 근로자의 뇌리에서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짜릿한 말인가! 이 문장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렘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같은 과다. ㅋ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에 조금(그 이상)의 노력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말이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여가가 있는 멋진 삶을 꿈꾸며 '염병할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심지어 그 일에 매진하고 있는 이들 역시 유토피아를 꿈꾸는 리얼리스트의 호쾌한 문장들을 타고 신나게 달리다보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조금 더 가까이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희망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읽다보면 후련한 마음이 들면서 스트레스가 조금은 날아가버리는 기분이 드는 데, 그동안 통 가질 수 없었던 미래에 대한 기대감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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