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수연'이라는 고3 여학생이 뜻하지않게 임신을 하게되고 출산과 양육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있다. 수연, 지호, 달이... 등장인물은 여럿이지만 이야기는 오롯이 수연의 이야기이고 수연의
삶이다.
결혼을 하지않은 채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뜻하지않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새 생명의 탄생이 언제나
축복받을 일은 아니다. 수연의 상황은 정말이지 terrible 이라는 말로밖에 표현을 못할 일인 것 같다. 나를 수연에 대입해보아도, 내
자식을, 내 친구를 대입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시종일관 담담함을 유지하고있는 등장인물들처럼 행동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큰소리로 원망하거나
절규하거나 비통해하는 등의 지랄발광을 하며 분이라도 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 중 수연은 어쩌면 태연해보일 정도로 담담하다. 그것은 아이를
키워보지 못해 '아기'라는 존재에 낭만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이의 순수한 청소년(물론 그들의 행위는 사회가 청소년에게 기대하는 순수함을
충족시키지는 못하지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수연의 정서의 바탕이 '체념'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수연은 성장기의 상처를 안고 묵묵히 자라고있는 청소년이다. 책을 읽으며 수연의 상황은 현실의 많은 청소년들에 비교하자면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제 3자인 독자로서 드는 감정일뿐 누구나 내 상처가 제일 아픈 법이겠지.
상처로 얼룩진
성장기를 보내는동안 수연은 체념의 기술을 익혔다. 그 또한 기술이라면 수연의 주변인들은 모두 그 기술을 익힌 이들이다. 다른 방도가 없는 최후의
선택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절규하지않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뜻대로 되지않는 인생, 되는 일이 없는 날들을 살아본 그들이기에.
가벼운 핀잔 수준으로 아이를 낳은 수연을 원망하는 아빠나 이렇게저렇게 수습을 해보려다가 결국 태어난 아기를 보러 병원에 가는 지호엄마, 자신은
그토록 원하던 임신과 출산에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원치않는 아이가 생겨 낳아버린 수연에게 따뜻함을 잃지않는 영미 씨...
책의 마지막
장,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인물들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때때로 아팠고 갈등을 대충 훑게 될까 봐 조바심을 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다. 이 소설이 충분히 극단적인 사건일 수 있는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미혼모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설레발 없이 차분한 어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갈등의 표면만을 대충 그려서가 아닌 것 같다. 인물들의 갈등이 깊이 다루어졌다는 실감은
사실 그다지 없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 조바심을 냈을 만큼 인물들의 내면의 고민들이 충분하게 고려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정작
이런 '사건'을 겪게된 당사자들은(이미 체념에 익숙해진 이들이라면 더욱)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전력이고 최선이며 현실일 수도 있다. 얼만큼의
비극인지 얼마나 희극적인 상황인지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나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인생들을 남의 시선으로 소파에 앉아 볼 때에나
가늠이 되는 일이다. 정작 그 안에서는 누구든 각자의 방식대로 일을 해결하든 헤쳐나가든 하는 것이다.
수연의 결정에 동의하지않는
기성세대이지만, 수연의 상황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현실적인 지호의 반응은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이지 않은
배신이기에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현실과 비교하자면 환타지에 가깝다고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반응이고 상식 수준의 배신이다. 사랑이란
그런거라고,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생의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싶어지는 나는 역시 별 수 없는 기성세대인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