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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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정은 씨가 이슈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국내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아서 김영하, 김중혁, 김연수 같이 불혹을 진작에 넘긴 분들을 여전히 '젊은 작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도... 오래전(대체 언제적?ㅋ) 귀걸이와 염색의 파격을 보여준 김영하 작가의 이미지를 기억 속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젊은 작가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최근에서야 기억 속 김영하 씨의 시각 이미지를 교체한 것 같다. 재기발랄해 보였던 과거의 사진을 '알쓸신잡'에서의 적당히 점잖으면서 박식한 중년의 작가의 모습으로... ^^;

황정은 씨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백의 그림자'였고, 이후 '파씨의 입문' '야만적인 앨리스 씨' 등을 찾아읽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황정은 씨 작품에 대한 추천이 많고 <빨간 책방>의 진행자 이동진 씨가 거의 찬양 수준으로 황정은 씨의 팬임을 드러내기에 순전히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어쩐지 좀처럼 몰입이 안되었다. 따옴표가 없는 대화, 현실적이지 못한 인물들의 말투같은 것이 적응이 안되어 그 세계에 푹 빠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조금씩 국내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으면서 다양한 시도와 실험들을 접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번역본보다 고전보다 장편보다 젊은 작가들의 중단편과 소설집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이야말로 도대체 요즘 젊은 작가는 누구?라는 의문을 가진 나에게 안내서 같은 책이었고, 요며칠 읽은 '웃는 남자'는 <제 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이러한 수상 작품집들은 한국 문학을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은 5,500원으로 판매된다.        

다시 황정은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황정은 씨의 소설에 계속 몰입을 하지 못했더라면 아무리 저렴한 가격에 좋은 소설들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번째 소설집인 <아무도 아닌>을 단숨에 읽으며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기에 이 수상집도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되었다. <아무도 아닌>에도 '웃는 남자'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파씨의 입문>에 실린 '디디의 우산'과 <아무도 아닌>에 실린 '웃는 남자'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 작품 말미에 표시되어 있음.

함께 살던 연인 dd를 사고로 잃고 방황하는 20대 청년인 d와 세운상가에서 40년 넘게 음향기기를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60대 남성 여소녀가 주인공인 이 소설에는, 배경이 된 세운상가 - 낡은 회색빛 건물의 스산함이 담겨있는 것 같다. d가 처음 살았던 반지하 집의 눅눅함이나 뚫린 작은 창으로 들려오는 이웃 아주머니들의 소음, 텅 비어가는 상가의 풍경과 그가 발견한(만나게 되는) 진공관... 인물들이 숨쉬는 공간의 빛깔과 웅웅거리는 소리가 촘촘한 언어로 묘사되어 그 공기를 함께 마시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조금씩 음울한 기운에 압도된다.

너무 쉽게 깨지거나 터질 수 있는 사물, 그 진공을 통과한 소리들에도 잡음이 섞여 있었다. d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얇은 유리껍질 속 진공을 들여다보며 수일 전 박조배와 머물렀던 공간을 생각했다. 그 진공을, 그것은 넓고 어둡고 고요하게 정지해 있었으나 이 작고 사소한 진공은 흐르는 빛과 신호로 채워져 있었다. d는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문득 흐름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d에게는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연인을 잃었고 나도 연인을 잃었다. 그것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d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 p101

김숨 작가의 '이혼'이나 이기호 작가의 '최미진은 어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줄바꿈 없이 한단락으로 이루어진 편혜영 작가의 '개의 밤'도 흥미로웠다.

다만 구성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품을 읽기 전에 첫 장의 심사평을 먼저 만나게 된다는 것과 별도의 평론이 없다는 점이었다. 심사평을 뒷부분에 배치하는 것이 독자들이 소설을 자신의 관점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읽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평론을 즐겨읽지 않음에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작품에 대한 평론이 각각 실려있는 것을 읽으며 작품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꼈던 사람으로서, 각 작품에 대한 평론이 아니더라도 수상작품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론이 적절한 분량으로 실렸다면 더욱 심도깊게 작품들을 이해하고 작가들의 세계에 다가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구성에 작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흥미롭게 읽었기에 내년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읽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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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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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좋아해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면 소설보다는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인생의 교과서로 삼고 있는 몇 권의 수필집을 떠올린다. 동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수필에는 공감과 함께 그 재기발랄함과 섬세한 감수성에 감탄을 하고, 삶을 훨씬 먼저 살아낸 원로 작가들의 에세이에서는 인생의 혜안에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된다. 이 책은 무려 1961년에 출판되어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1세대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기에 이번에 개정판이 출판되고 나서야 이런 책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제목만 보아서는 종교/영성 분야의 에세이일 것이라 짐작했다. 좀 고리타분한 책이 아닐까,하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서문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선입견은 깨지고 글이 풍기는 향기에 자연스럽게 취하게되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제목을 택한 것은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가 인생이라는 강의 저편인 영원과, 이편의 끝없는 애모심의 대화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고독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도 고독한 사람의 또 하나의 벗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 초판 서문 중

이 책의 표지와 본문에는 이숙자 님의 삽화가 실려있어 글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글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게 한다.

1. 생활의 좌표
2. 행복의 조건
3. 존재의 의미는 사랑이다.
4. 어느 우인의 이야기들
5. 역사가 찾는 사람들
6. 영원의 그리움
7. 어느 구도자의 일기 - 고독과 사랑의 장

지인 S씨의 일기를 소개한 맨 마지막 챕터(지인의 사적인 기록의 공개인데 예상을 뒤엎고 정말 재미있다.ㅋ)를 제외하면 모두 6개 챕터로 각 챕터별로 예닐곱편의 글이 실려있다. 세네장 분량의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다보면 소박한 문장에 담긴 메시지들이 결코 가볍지 않아 여운이 오래 남는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사람들 누구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문체로 독자로 하여금 조금씩 철학적인 문제들에 다가서게 한다. 무겁고 진지하고 어려운 글이 아니기에 오래 전에 출판되었던 책이라한들 요즘 사람들이 읽기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원로 작가의 어떤 책을 읽으며 '꼰대'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원로들이 우리 사회에 아직 이렇게 활동하고 계시며, 끝까지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고 돌아가신 분들도 많이 있지만... 나이가 들 수록 선험자로서 자신의 삶을 기준 삼아 아래 세대에게 강요에 가까운 조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지라, 나역시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않으면, 기성세대가 꼰대가되는 것은 순식간인 것 같다. ^^; 그에 비해 훌륭한 원로의 삶은 그 자체가 아래 세대에게 귀감이 되어, 보이지않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인간의 일생이란 자라는 순서와 더불어 그때그때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마치 초목이 자라 가지가 퍼지고, 잎이 성한 뒤에는 꽃과 열매를 맺는 것과도 같으며, 동물들이 자라 번식하고 늙으면 죽는 것과도 비슷한 과정일지 모른다.
소년기는 소년기다운 자람과 과정이 있어야 하며, 청년기에는 청년기로서의 할 바와 뜻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물론 특출하게 지능이 발달한 사람, 놀라울 정도로 통솔력이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건전하고 뜻있게 자라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의 일생을 때를 따라 꾸준히 보람 있는 일로 메꾸어가면서 그 장년기를 성공과 영광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한 정상적이며 건전한 발전 과정을 벗어난 특별한 사람들이 행복보다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자주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이란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만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한다해도 어디선가는 다른 사람을 도와가며 살게 되어 있으며, 아무리 열성적으로 사람에게 봉사한다 하더라도 자기를 부정하거나 무로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100퍼센트의 이기주의자가 있을 수 없으며, 그와 정반대되는 봉사주의자도 있을 수 없다. 확실히 이기주의는 종국에 이르러서는 사회적인 파멸을 초래하고야 만다. 그렇다고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타인을 위하여 자신들을 완전히 희생시키며 부정할 수도 없다. 누구든지 희생을 위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일까? 자신을 위함인가, 타인을 위함인가? 실제로 인간의 삶은 자기를 위하는 것도 아니며, 타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보다 높은 가치를 이루기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보다 고귀한 가치가 나에게 있다고 믿게 되면 천만인이 나를 반대할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보다 영원한 가치가 상대방에게 있다고 인정되면 그 가치가 성취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게 된다.

진솔한 문장들에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삶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통찰과 생에 대한 긍정이 담겨있어 책을 읽고나면 충만한 기분이 느껴진다. 요즘 우리는 '가치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만능, 배금주의, 경쟁과 속도, 성과, 권력... 드러나는 것들을 향해 질주하느라 보이지 않는 가치들은 무시되는 현실인 것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 숨막혀하면서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일상을 살면서 이 글을 읽고있자니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양심이란 끝없는 가치를 사랑하는 것이며, 이성은 가치의 창조자인가 하면, 참다운 자유는 가치에 대한 신념과 용기가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꾸준한 가치의 충족을 통하여 발전하는 것이며, 인간들의 역사 그 자체가 무궁한 가치의 순례라고 보아야 하겠다.(중략) 우리의 생은 항상 오늘의 가치를 지양함으로써 내일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지금의 가치를 지양시켜 영구한 가치를 탐구하는 과정을 끝없이 계속하는 도중에 문화는 향상되고 역사는 발전하며 삶의 의의는 커지는 것이다. 만일 이 수고와 노력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정신과 도덕은 어떻게 되었을까?

진리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닌 노학자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통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과 가치기준, 정신과 도덕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를 살아하는 피로한 독자들에게 뜻깊은 휴식이 될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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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 오은영 박사의 불안감 없는 육아 동지 솔루션
오은영 지음 / 김영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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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인 이 책은 아이의 양육과정에서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원인으로 '불안'을 꼽는다.
서문에서 저자는 전문가인 자신도 양육에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밝히며 '왜 우리는 양육이 불안하고 두려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불안을 느끼는 이유와 상황별 해법을 찾아보고 생활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과 행복한 자녀로 키우는 방법에 대해 탐색해보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많은 부모들은 잠시나마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체로 '걱정이 많은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정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집 역시 마찬가지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엄마인 나는 항상 걱정을 안고 살았던 것 같고, 아빠인 남편에게 털어놓으면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째서 같은 문제를 저렇게 태평하게 받아들이는지, 야속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안달박달하는 스스로가 짜증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아빠의 '무관심'도 일종의 불안이라고 말한다. '부정적인 면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문제를 덮어버리는 모습(p31)'이라는 것이다.

아빠들 역시 불안하다. 하지만 아빠들은 불안과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불안에 직면하면 '그래, 이걸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밖으로 말하는 것을 무책임하다고 믿어 "괜찮아, 아이들은 원래 그렇게 크는 거야."라고 말해버린다. 그런데 그 말은 편안함이나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불안을 상쇄해버리기 위한 무조건적인 낙관적 표현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이 주제를 걱정하고, 그렇게 되면 더 불안해지기 때문에 대범한 척, 낙관적인 척하면서 덮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아빠의 '괜찮아, 잘 클거야'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의 본질에는 불안이 숨어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이 바란다. 이런 아빠들의 말이나 행동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육아의 과정이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별일 아닌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니 지금의 고민들도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의 경우 해외에서 아이를 키운 기간도 상당한데, 한국을 벗어나면 그 불안이 확 줄어들어서 '돌아가도 절대 휩쓸리지 말아야지.' 마음 먹곤했다. 하지만 돌아오면 금세 도루묵...
오은영 박사는 한국 엄마들이 아이에 대한 불안이 유난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만 자신이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엄마들에게 자식은 하늘로부터 온, 잘 지켜내야 할 존귀한 존재이므로 자식에게 결함이 있으면 자신이 보양을 잘 못하고 헌신을 잘 못해서인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p41)

정말 공감하게되는 대목이다. 지금 내 또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이중고, 워킹맘으로 살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이유이다. 전업 주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아도 찾아야 하고 아이도 잘 키워야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녀들은 해답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속에서 자신과 같은 고민을 가진 동지를 찾아 헤맨다. 그러니 옛날 엄마들보다 더 불안할 수 밖에. (p45) 요즘 엄마들이 방대한 정보에 노출되면서 더 많은 걱정과 불안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집에서 내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키우다보면 어제보다 발전한 아이의 모습에 만족하기가 쉽다. 첫째를 낳았을 때, 낳기 전날까지 출근을 했었는데 바쁘게 지내다보니 다른 임산부들이 출산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등 타인과 비교할 일이 전혀 없었다. 예비 엄마라면 다들 가입한다는 **맘 사이트같은 곳도 몰랐고, 서점에서 임신 출산 관련 서적을 사 간단히 적힌 목록을 보고 출산 가방을 싸두었을 뿐이다. 그러니 출산 휴가 기간동안 내가 새롭게 경험한 세계는 그야말로 놀라운 지경이었다. 나보다 세달 먼저 출산한 친척의 집에 구비된 각종 교구들과 화려한 육아도구(?)들에 쓰나미처럼(달리 표현할 말이 없이 당시 내 심정이 그랬다.) 죄책감이 몰려웠다. 엄마가 직접 만든 모빌 하나에 좋다고 웃고있는 아이에게 어찌나 미안했던지... 모유 수유를 하면서, 수면 습관을 들이면서 아이는 그 모든 면에서 아주 잘 적응해갔고 충분히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음에도 확신없이 불안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옛날에는 틀린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자신의 육아 방식에 대해 적어도 '확신'이 있었다. 예를 들어, 회초리로 아이를 때리면서도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이 아이를 잘 가르쳐야 된다'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엄마들은 옛날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수많은 책과 정보를 통해 더 나은 육아 기술을 알고 또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육아 방식에 대한 확신이 없다. 아이를 대하는 매 순간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방법은 옳지만 확신이 없는 육아를 하는 요즘 엄마들과, 방법은 잘못됐지만 확신에 찬 육아를 했던 옛날 엄마들은 어떤 결과의 차이를 낳을까? 요즘 엄마들은 육아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많이 겪고 있고, 요즘 아이들 또한 옛날 아이들보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졌다.

다음은 아주 인상적이었던 대목이다. 저자는 자아의 기능을 깨우기 위해 자신을 자주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왜 그렇게 정체성의 통합을 힘들어하는 것일까? 이런 엄마들의 경우 대부분은 자아의 균형이 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뭔가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현실이 충돌할 때 자아가 균형을 맞추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으로 나는 이렇고 상황은 이렇고 이것은 할 수 있고 이것은 할 수 없고를 인정할 수 있도록 자아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 조율이 잘 되지 않는다. 본능적인 욕구와 현실의 조율 이것이 자아의 기능이다. 이것이 안 되면 정말 괴롭다. 보통 정체성 통합이 잘 안 되는 엄마들은 역할이 바뀌거나 추가되는 것에 굉장히 불안해한다. (중략) 사실 자아의 조절 기능이 좋을 경우, 역할이 바뀌거나 추가될 때 자연스럽게 자기 증력의 재배치가 일어난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노동력에 맞춰 어디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쏘당야 할지에 대한 배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잘 안되는 것이 바로 정체성의 혼란이다.

불안, 양육 스트레스, 성인 애착 유형 등을 체크해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서 문제를 인식하고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대해 아빠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을 비교해 제시해 공감을 자아냈는데, 배우자를 좀 더 이해하고 육아 동반자로 서로 협력하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아 유익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끊임없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육아란 자녀와 함께 부모들을 성장하게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를 키우며 내 부모를 이해하거나 내 어린시절의 결핍을 채워가고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내 상처를 치유해가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정체성에 대한 자각, 무의식 속에 감춰져있는 깊숙한 내면에 대한 자각, 불안에 대한 자각... '불안을 자각하지 않으면 대물림된다.'는 저자의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식으로 생각을 정리한다면 좀 더 육아가 수월해지고 일상이 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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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나라의 디자이너 여우 - 제1회 비룡소 논픽션상 수상작 지식 다다익선 13
이미영 글.그림 / 비룡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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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의 새로운 책 '동물 나라의 디자이너 여우'
표지를 보고는 그저 흔하디 흔한 창작 동화일줄만 알았다.
첫째 키울 때 모 전집이 인기였는데, 그 책 속의 주인공 대부분이 동물이었고 또 여우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
특히 여우의 웃는 눈이 그 책의 삽화를 떠올리게 해 첫 장을 넘기기 전 다소 식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목도 특별할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한장 한장 넘길수록 확실히 차별화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냥 여우가 아니라 제목 그대로 디.자.이.너 여우에 관한 스토리라는 점이 신선했다. ^^ 
 


양장본으로 된 책의 형태를 봐서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책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70페이지에 달하고 글밥이 꽤 많아 초등 중학년 이상의 어린이에 적합한 책이다.
차례에 나오는 동물나라의 각종 동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세세하게 펼쳐진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여우는 동물 나라의 하나뿐인 디자이너로 동물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어준다.
동물들이 가진 어려움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해주는 해결사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둥지가 필요한 뱁새에게는 둥지를 만들어주고 - 스토리의 마지막에 이를 '건축 디자인'과 연결하여 설명을 해준다.
디자인에는 공간을 다루는 건축 디자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이 있기에,
각각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디자인의 여러 분야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디자인이란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생활 전반의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디자인과 발명을 통해 동물들의 약점이 극복될뿐만 아니라


생활이 편리해진다.

 

제품 디자인에서 의상 디자인..... 공공 디자인까지.
이 책을 읽고나면 아이들이 주변의 사물과 건물들 동네의 풍경을 돌아보며 다양한 디자인의 분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게 될 것 같다.


삽화 곳곳에 숨겨져있는 유명한 디자인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발명과 아이디어, 창조하는 행위를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동화책.
'동물나라의 디자이너 여우'만큼이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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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쉽다! 3 : 끝내주는 우리 몸 - 몸속 기관의 종류와 하는 일 과학은 쉽다! 3
김정훈 글, 김명진 그림 / 비룡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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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1,2학년때와 다르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늘어난다.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특히 사회와 과학을 어려워하는데,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니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것도 어릴 땐 그저 달달 외워야했으니 사회나 정치경제가 어렵게 느껴질만 하다.
초등학교 시절 여당/야당이 어찌나 헷갈리던지... 아빠한테 묻고 또 묻고 했던 것 같다.
야당이었던 당이 여당이 되고? 여당이었던 당이 야당이되고? ㅋㅋㅋ 어린 나에겐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그처럼 과학도 교과서를 처음 접한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기에,
아이에게 과학동화책 과학은 쉽다!를 권해주었다.  

 

아톰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 ^^
3권의 부제가 '끝내주는 우리 몸'인데,
표지 캐릭터의 표정이 "나 정말 끝내주지?"하는 것 같다. ㅎ

 

3권은 인체에 대해 알아보는 <생물> 영역을 다루고 있다.
몸을 이루는 세포에서부터 에너지와 운동, 감각과 기관에 대해 두루 다루어 인체에 대해 심도있게 탐구할 수 있다.  


세포에 대해서만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기본개념뿐만 아니라 분열, DNA 등 관련 내용을 두루 확장시켜 다루고 있어서
3-4학년 아이들부터 고학년까지 흥미를 갖고 읽을만 하다.
어려운 내용을 글로만 잔뜩 설명해놓으면 거부감을 갖게되니 중간중간 친근한 만화도 곁들여놓았다.



 

3학년이 되면 읽는 책의 글밥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데, 이때 너무 빽뺵하게 글자가 가득한 책을 주면 오히려 아이들이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어릴 적에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넘어갈 때, 동화책에서 위인전으로 넘어갈 때 독서에 대한 흥미가 뚝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나만 그랬던걸까? ^^;) 이 책은 장평이나 글자크기 문단 배치 등이 막 긴 책을 읽기 시작한 아이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있어 과학을 다루는 동화책임에도 큰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가 있다.
 

챕터의 마무리에는 스스로 테스트를 해볼 수 있도록 간단한 퀴즈가 제시된다.
알아본 내용에 대해 바로바로 체크를 해볼 수 있으니 학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과학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는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 적절한 책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일인 것 같다.
실험 실습을 직접해주면 더욱 좋겠지만 엄마로서 쉽지 않으니...^^;
이렇게 하나의 주제에 대해 심도깊게 탐구해볼 수 있는 책을 읽고 과학을 접하면
조금이나마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그리고 세세한 내용을 배울 수 있으니 
아이들이 내용을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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