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비 <혼자를 기르는 법> 샘플북 서평단 작성입니다 :)

 

 

 Imageⓒ 창비 페이스북

 

 

얼마 전 SBS 스페셜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캥거루족'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캥거루족은 성인이 되어서도 금전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나이 든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방송을 골똘히 보고 있노라니 저 또한 캥거루족과 다름 없었습니다. 올해로 제 나이가 스물셋, 아직까지 물리적 독립은커녕 금전적인 독립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달 생활비를 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학기 중에는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습니다.

유독 우리 세대는 '독립'이라는 말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의 가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르는 엄청난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상대적으로 적은 전반적인 경제 침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20살 이전까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지나오는 우리들은 '독립'이라는 말, '자유'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이상한 건, 스무 살이 지나면 '독립'해야만 하는 겁니다. 물론 몸만 큰 자식들을 밖으로 내보내길 되려 무서워 하는 부모님들도 많습니다만, 다들 자꾸만 내 길을 알아서 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도 해본 적도, 허락해 준 적도 없는 그 일들을 혼자서 해내는 게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다그치기 시작하는 거죠. 이렇게 갑자기 성인 대접을 받기 시작한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모 눈에는 완전한 어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와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해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 거죠. 우리는 생각보다 '혼자를 기르는 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힘듦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엔...
특별한 드라마가 아녀서 위로받기도 힘들 거야.

그러니까... 투정은 나에게만..."



때문에 혼자보다는 여럿이 편하고, 여럿이 그렇다고 하면 내 생각은 금방 묻어버리는 편이 속 시원합니다. 이것저것 해야할 일은 산더미처럼 주어지는 와중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보폭을 맞추느라 나 혼자만의 감정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니까요.


 

김정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돌보는 일상을 짤막한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현재 Daum 웹툰에서 연재 중인 이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온 건데요. 짧으면 세 컷, 길면 여섯 컷 정도의 만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페이지들은 읽는 이에게는 공감과 웃음, 가끔은 짠한 감동을 전해줄 때가 많습니다. 다소 둥글고 친절한 어조의 독백으로 이뤄지던 각각의 장면들과 실제 만화 속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어긋날 때면 작은 폭소가 터지기도 합니다.


 

 

 

"야, 야 이 xx 새끼야!!!!!!"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는 '이시다'라는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만화는, 지방에서 상경해서 홀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겪는 일상과 그 안에서의 생각들이 주된 내용입니다. 야근을 하면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는 주인공, 세 아이를 키우며 고된 하루를 보내는 친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데려온 햄스터 한 마리와 동거하며 마주치는 일련의 이야기들. 내 삶을 살고 싶은 생각에 무리까지 해서 상경했지만, 가족들에게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대목에서는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나의 일상을 대입해서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스스로 혼자되길 결심하는 걸까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팝업창이 끊임없이 뜨는 사이트를
시작 페이지로 설정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정말 별것 아닌 것들이었지만,

저는 그냥... 어느 순간부터...
간단한 대답도 버거운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겐 상처일까요?"

 

 

"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열대어.
여행을 다녀와도 될 줄 알았던 거북이.
내가 먹던 간식을 나눠줘도 될 줄 알았던 병아리.
내 방식대로 같이 놀면 될 줄 알았던 강아지.

많은 실수들을 반복하면서 분명하게 배운 것은...
내 방식만으로는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는 것.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이제 혼자서 잘 할 수 있... (근데 도저히 보증금을 마련할 수가 없어요.)"

 

무엇 하나 쉬운 게 하나 없는 지난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다들 비슷한 걸 겪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책 <혼자를 기르는 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점점 쉬운 구석이 하나 없어 보일 만큼 척박해지고 있고, 결국 그 안에서 내 한 몸 둘 곳을 열심히 찾으며 돌아다니는 게 우리네 삶인 건 분명한데. 말로는 단순해 보이는 이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건 타인이 살고 있는 삶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내 안의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닐까요. 김정연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이었습니다.


 

 

* 아래는 현재 연재 중인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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