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309동 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리뷰

Imageⓒ 네이버책 


약 1년 전 대학 내 시간강사의 삶을 다룬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나왔을 무렵인 2015년의 11월, 나는 학내 언론 기자로 활동하며 2016년 시행 예정을 앞두고 있었던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취재에 골몰하고 있었다. 대학생 기자라면 한 번 쯤은 쓰게 된다는 시간강사의 처우를 다룬 기사가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년간 몇 차례의 시행과 무산을 반복하던 '시간강사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이, 다가올 16년에도 또 다시 시행을 예정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정말이지 시행이 되나 싶었고(결국 무산되었다), 기존까지의 시간강사법 기사들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뭔가 다른 것을 구상하던 중, 실제로 시간강사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발행된 기사는 10쪽이 조금 안 되는, 누가 읽어줄지 모르겠는,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시간강사 분을 만나고 학교와 교육부를 털어내며 알게된 시간강사와 그 법을 둘러싼 모든 내막에 비하면 내 기사는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나의 삶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건

강사법을 취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나의 스승들에게 직접 연락해, 당신이 시간강사인지 아닌지를 물으며, 당신조차도 형용하기 어려운 그 문제에 대한 내밀한 속사정을 들려달라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안한 부탁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기자인 동시에 학생이었고, 나의 취재원은 교수인 동시에 나의 스승이기도 했기에. 다행히도 강의실에서는 아직까지 마주친 적 없었던 어느 교수님께서 선뜻 부탁을 들어줄 용의를 내비치셨다. 나는 취재를 하는 내내 자연스레 웃지도, 그렇다고 무엇 하나 자유롭게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이것저것 관련 자료까지 모아서 전해주신 교수님 덕분에 취재는 별 무리 없이,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더 도움을 받으며 끝났지만, 교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들은 실로 가만히 듣기에는 껄끄럽고도 학생인 나까지도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노동의 문제들. 그는 교수인 자신이 학생들에게 더 나은 사회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가르칠 때조차도 괴리감이 든다고 했다. 나의 삶조차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일주일에 네 시간 노동(강의)하고 월급을 받아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난한다. 강의 준비, 과제 첨삭, 개인 면담과 같이 드러나지 않는 노동의 시간이 오히려 더 길지만,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회성의 결여, 사회에서 함께 동시하고 있으나 동시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성의 비동시성, 이러한 외로움은 연애나 우정이나 가족애 같은 것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 '사회적'이지 못한 존재는, 외롭다."

- p. 66


16년 1월 뉴스에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당시 시행 예정이었던 시간강사법 개정안은 내용상 문제가 많았고, 실질적으로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그 무엇 하나 도움 되는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무산되는 것이 나았다고 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법이 시행되면 시간강사들의 밥그릇 싸움이 더욱 처절해지고, 시행되지 않는다면 이 곤혹한 현실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나는 어느 쪽도 선뜻 기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다시 흘렀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지방시를 쓰며 스스로의 삶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데 대해 놀랐고, 또한 절망했다. 사회인으로도, 노동자로도, 학생으로도, 나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규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나에게 대학은 신성하고 숭고한 공간이었다. 지성, 학문, 연구, 진리, 이러한 단어들의 총체였고, 나에게는 그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의 맨얼굴과 점차 마주하며, 그러한 환상은 무참히 깨어져 나갔다. 나는 그저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에 지나지 않았구나, 하는 처연한 자기 규정을 하게 됨과 동시에,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p. 15

최소한의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원생과 조교 그리고 강사의 삶 그 어디쯤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강사로서 일주일 중 이틀은 대학에서 수업을, 사흘은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저자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후 저자는 강사로서의 일을 그만두었다.) 건강보험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나를 보호해주는 공간이 대학이 아닌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대학이라는 구조 안에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대학원생과 조교 그리고 강사의 삶, 그 중간 어디쯤을 조명한다. 1부는 대학원생의 시간, 2부는 시간강사의 시간이라는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강사로서 강단에 서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부조리의 순간들을 담담한 문체로 적어내고 있다. 인권은 물론, 기본적인 삶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그 공간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읽는 사람마저 화가 나지만 정작 적는 이는 담담하기만 하다. 2부에서는 학문의 공간에서 저자가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로 공유하고 있다. 학생들과의 경험이 주된 내용이다.

저자 김민섭(실명)

Imageⓒ 인문학카페 36.5


"아직 인문학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좋다는 강좌를 들어보아도 저마다의 인문학이 다르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인문학이 무엇인지 물으면 내 첫 제자들과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마지막으로 강단에 서게 되었을 때, 그날의 일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나의 인문학을 대신하려 한다. 굳이 어려운 철학책을 애써 들추어보거나 하버드 교수의 강의록을 곁에 두지 않아도, 인문학은 언제나 내 주변의 평범한 집단 지성 안에 있음을 나는 믿는다."

- p. 151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으며, 내 주변을 노동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돌아보게 되었다. 학생이라면, 교수라면, 아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노동자로서의 우리네 삶을 과연 우리는 얼마큼이나 직시하고 있을까.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 단계라 불리는 대학이라는 공간마저도 거대한 구조적 결함을 가진 채 대학의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중에 우리 사회의 고장난 어느 한 부분만을 도려내 고친다는 게 과연 가능한지,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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