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걸스
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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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클라인, <더 걸스> 리뷰

 Image Ⓒ 북21

 유년시절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인도해주는 올바른 생활이 아닌, 평소 안 하던 비행을 일삼으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생각보다 크다는 데 있다. 곧이곧대로 수업을 듣고 착실하게 과제를 마치는 평탄한 삶보다는, 주어진 일상에서 엇나갈 수만 있다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멋져보이던 그 때를 생각해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나 자신이 때로는 초라하게만 느껴졌던 그 시절의 치기어린 마음은 10대의 나를 계속해서 초라하고 외롭게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저 아이들과 내가 조금이나마 같아질 수 있을까. 이유없는 작은 일탈도 우상처럼 보였던 당시를 기억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질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에마 클라인의 장편소설 <더 걸스>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외로움의 나날을 보내던 한 10대 소녀가, 온갖 비행을 저지르며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녀 무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비야." 나는 손을 내밀었다. 수전은 악수가 나쁜 일이란 것을 나에게 이해시키려는 듯 웃었다. 악수가 정상인들의 세상에서나 하는 무의미한 상징이란 것을. 나는 얼굴을 붉혔다. 평범한 예절과 형식을 전부 빼고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것들 대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침묵이 있었다. 나는 침묵을 메우려고 허둥댔다.

- p. 82

'우리.' 수전은 '우리'에 속했고, 나는 그녀가 느긋하게, 주차장 너머 목적지에 대해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 부러웠다. 공원에서 본 수전과 함께 있던 애들, 수전과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이. 수전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 p. 84

"그해 여름, 나는 열네 살이었고 수전은 열아홉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이 소녀 무리는 히피 그룹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대마초를 피우며 자유로운 복장으로 거리를 누비는 아이들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 소녀인 '이비'가 살아왔던 평탄하고 조금은 풍족한 삶과는 180도 다른 삶. 어쩌면 굉장히 위험하고 부도덕한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가족과도 별다른 정을 붙이지 못하고 외로움에 허덕이던 이비는,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닌 검은 머리의 '수전'이라는 여자아이를 따라 히피 소녀 그룹에 합류하게 된다. 자유롭고 때로는 방탕하며 세상의 다른 무엇도 걱정하지 않는 그들의 알 수 없는 여유에 이끌린 이비는 서툴게 그들과 동행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그룹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남게 된다. 방탕한 생활은 물론, 급기야는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이들을 보며 이비는 어린 마음에 더욱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책 <더 걸스>는 지금은 성인이 된 이비가, 당시 열네 살에 만났던 수전과 다른 히피 소녀들과의 삶을 회고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건 알았다. 최초의 섬광만을 흘긋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출구를 찾아헤맸다, 숨겨진 비빌 문이라도 찾으려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수전이 그 집단과 관계를 끊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수전은 연루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모든 미친 듯한 소망은 계속 똑같은 대답을 가져왔다. 수전은, 두말할 필요 없이, 그 일을 저질렀다.

- p. 366

 저자 Emma Cline 에마 클라인​

Image Ⓒ wmagazine

이비는 수전에게, 세상에게, 무언가 갈구했다.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그리고 아마 수전도, 그 소녀들도 모두 무언가를 갈구했다. 자기 인생을 내던질 만큼 무모하게도. 어른이 된 이비의 삶도, 환멸, 분노, 외로움이 가득한데, 어느 날 어린 시절의 자신 같은 소녀를 만나게 된다. (...) 인생의 여름을 지났지만 세상과 불화한 끝에,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던 불행의 덫을 밟아 그 여름이 남긴 상처를 안고 사는, 하지만 아마도 결국 세상과 화해하게 될 것 같은 한 여자의 이야기로.

- p. 398, <옮긴이의 말>


* 덧붙임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책 줄거리와 실제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줄거리가 허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조금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그렇게까지 유쾌하거나 감동적인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라 성장소설로 볼 수 있을지, 공감가지 않는다. 결국은 마약과 살인에 휘말린 비행청소년 집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든다.


솔직히 번역이 그렇게 매끄러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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