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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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 드 비강, <길 위의 소녀> 리뷰


  Image Ⓒ 김영사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통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전세 자금이나 결혼식 비용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여느 보통의 이성애 커플들에게,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커플들의 사랑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심각한 취업난에 학자금 대출을 갚을 일까지 더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보통의 20대 대학생들만을 비추는 기성 언론에게, 대학에 가지 않은 20대는 20대가 아닐 것이다. 재개발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부동산 투자자들에게는, 매일같이 높은 언덕을 오르지만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달동네 사람들의 삶은 안중에 없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결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삶. 공생과 연대를 말하는 교과서의 몇 줄로밖에 환원되지 않는, 잊혀지고 희끄무레해져서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눈 앞에 보이는 이들을 두고 눈감아 버리는 게 더 쉬운 일이라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문이 열리면서 차가운 바깥바람이 순식간에 현관까지 들이닥친다. 아빠가 얼른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아빠는 벌써 하나도 춥지 않다. 우리 가족은 등 따듯하게 지낸다. 노가 생각난다. 내가 모르는 그 어디에서, 어느 거리에서, 어떤 공기를 숨 쉬고 있을지 모르는 그 아이가.

- p. 85

사회는 이토록 발전했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델핀 드 비강의 <길 위의 소녀>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어린 여성 노숙자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그러나 현실감 있게 담아낸 성장소설이다. 아이큐가 160이 넘을 만큼 지적으로 조숙한 아이 '루'가 어느 날 거리에서 노숙하는 '노(No)'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장르의 모양을 하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서정적이거나 비현실적이지 않다. 13살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사회의 부조리함은, 주인공인 '루'에 비해 겨우 몇 살 많지만 오랜 시간 거리 생활을 한 '노'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대로 드러날 뿐이다. '노'의 도움을 받아 여성 노숙자의 삶을 주제로 한 발표를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끝마친 '루'는 이후에도 '노'를 계속해서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노숙자였던 '노'는 '루'의 집에서 생활하며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겨우겨우 돌아오려 한다. 하지만 중학교도 겨우 졸업한 노숙자 출신의 미성년 아이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사회에서 아주 비좁기만 하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노'는 이전의 방탕한 생활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주인공인 '루'는 '노'를 완전히 잃어버릴까봐 별다른 제지도 못한 채 그저 모든 걸 껴안으려 한다.


우리는 초음속 비행기를 띄우고 우주에 로켓도 발사한다. 머리칼 한 올이나 미세한 살갗 부스러기 하나로 범인을 잡아내고, 삼 주나 냉장고에 처박아두어도 주름 하나 잡히지 않고 싱싱하게 유지되는 토마토를 만들어내며, 손톱만 한 반도체 칩에 수십억 가지 정보를 저장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 p. 93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던 두 여자 아이의 첫 만남은 그 대조적인 출신만큼이나 초반에는 삐걱거린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서로를 있는 그대로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이 아이들의 모습보다 더 대조적이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싸늘한 사회의 시선이다. 모든 집이 거리 위의 노숙자들을 한 명씩만 도와주어도 '노'와 같은 아이들이 지금보다 조금은 줄어들거라 말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는, 때문에 더 진실되고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길 위의 소녀>는 아무도 주목하거나 관심 갖지 않는 이들에 대한 대변의 목소리다.


 ​film 'no et moi'

Image Ⓒ Zabou Breitman


책에는 주요한 순간들을 구분하는 장들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거나 상황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때로는 부로 나뉘어 그림에 붙은 제목처럼 '만남' '희망' '몰락' 하는 식으로 어떤 전망이 실린 제목이 붙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게 없다. 제목도 없고, 플래카드도 없고, 표지판도 없다. '위험하니 조심하시오' '붕괴사고 자주 일어나는 곳' '실망 임박'을 가르쳐 주는 표시는 전혀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옷 한 벌 걸쳤을 뿐이지 완전히 혼자요, 행여 그 옷이 완전히 누더기일지라도 별수 없다.

- p. 225



* 덧붙임

성장소설인 동시에 사회비판적인 면모가 곳곳에 잘 드러난다.

가끔씩, 날카로운 아이의 시선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끔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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