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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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온 메이어, <악마의 산> 리뷰

 Image Ⓒ 북 21

영화를 볼 때마다 언제나 속이 시원해지는 포인트는 주인공이 사회의 악의 무리들을 잡아다가 벌을 주고 세상의 끝까지 쫓아가 악을 완전히 소탕해버리는 장면일 것이다. 악을 처벌하고 선이 이기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항상 사람들로부터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다. 법을 다소 무시하고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나쁜 사람들의 재산을 훔쳐다가 착하고 약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의적 홍길동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사회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문제들을 개인이 직접 나서서 해결한다는 나름의 통쾌한 스토리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끊이지 않고 오르내려 왔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해결의 주체가 되는 그 개인이 의로움을 행하기 위해 기존에 마련되어 있는 법이나 질서를 무시한다는 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편이다. 다시 말해,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히어로 주인공일지라도, 도시 곳곳을 헤집어 놓으면서 죄 없는 사람들의 재산이나 물건들을 파괴해도 괜찮냐는 이야기다.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자의 충격적인 실체,
시신에 남은 단 하나의 표식은 아프리카 전통 창 ‘아세가이’의 상흔뿐!

디온 메이어의 추리소설 <악마의 산>은 바로 '악을 처벌하는 악'에 대한 작품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아동성폭행범들을 보이는 족족 살인하는 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불신과 비리로 점철된 허술한 사법체계에 넌더리가 난 시민들은 급기야 연쇄살인범을 옹호하고 지지하기까지 한다. 사회가 법적인 사각지대를 해결하기는 커녕 방치하고 있는 환경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살인'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탈출구를 택한 개인과 이를 쫓는 형사 '베니'라는 인물의 대립은 여태까지 보아 왔던 캐릭터들과는 달리 새롭다. 소수자 우대정책이라는 불합리한 사회시스템으로 인해 수년간 승진은 물론 변변찮은 대우도 받지 못한 채 미결 사건들을 처리해 온 형사 베니가 사건 해결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과정은 섬세한 동시에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악을 악으로 해결하려는 살인마의 스토리와, 가정을 포기하면서까지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 형사 베니의 이미지는 묘하게 겹친다. 그 가운데서 독자는 어느 무엇 하나 옳거나 그르다고 쉽사리 말할 수 없다.

“경찰에서 26년을 일했는데 남은 게 없습니다. 술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경위 신세를 못 벗어나는 게 술 때문인 줄 아십니까? 총경님도 아시잖아요. 이건 소수자 우대정책 때문입니다. 제 인생을 바쳐서 생고생을 했는데 돌아온 건 소수자 우대정책입니다. 이게 벌써 10년입니다. 차라리 디콕이나 렌스나 얀 브루크만처럼 때려치우는 게 나았어요. 그놈들은 경비 회사로 갈아타서 돈을 쓸어 담고 있다고요. BMW를 몰고 5시 땡 하면 집에 갑니다. 그런데 저는요? 미결 사건 몇 백 갭니다. 마누라한테는 쫓겨났고, 알코올중독도 왔습니다….

그래도 난 여기 있단 말입니다, 맷 총경님. 난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기운이 동나서 그리설은 차에 기대 머리를 푹 숙였다.


“난 아직 이 빌어먹을 놈의 경찰을 그만두지 않았단 말입니다.”


- p. 62


​* 덧붙임


​책이 꽤나 두껍다. 하지만 내용이 흥미진진하고 번역이 매끄러워 읽는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런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 국내 출간되길 바란다.

표지 그림은 생각만큼 잘 와닿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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